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童話) 살으리랏다」 ... (12)객지생활 10계명
말년일기 제1213호(2021.1.12)
이득수
승인
2021.01.11 21:35 | 최종 수정 2021.01.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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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2년 전의 이야깁니다. 제 아들 정석이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는데 한 번도 부모를 떠나보지 않은 아이라 시골사람들은 세워놓고 코 베어 간다는 서울깍쟁이들 틈에 어떻게 적응할까 고민하다 아래와 같이 객지생활10계명을 작성해 자신이 거주하는 방의 벽에 붙여놓고 아침저녁 읽어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과 같이 서울로 공부하러 간 친구는 물론 서울서 사귄 새 친구들이 하숙방에 와 보고 재미있다고 깔깔 웃다가 모두들 한 장씩 복사해가는 바람에 졸지에 신촌의 대학가 일대의 대학생들 방을 무슨 인기연예인 브로마이드처럼 유행이 되어 휩쓴 적이 있어 우리 아이를 보고 <아버님말씀이 거룩한 아이>라고 친구들이 불렀답니다.
객지생활 십계명
1.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이다. 무조건 조심하라.
2. 위험에 처하거나 집단행동을 할 때 당황하지 말고 되도록 선봉에 서지 말라.
3. 언제라도 부모와 통할 수 있는 연락망을 구축하라.
4. 절대로 밥을 굶지 말고 삼시세끼를 다 챙겨 먹으라.
5. 컨디션이 나쁘면 미리 약방에 가서 약을 사 먹으라.
6. 옷은 둔하더라도 약간 덥게 입어라.
7. 연탄을 때 방에서 잘 때는 춥더라도 문을 열고 자라.
8. 지하실이나 2,3층의 식당이나 다방에 들어갈 땐 반드시 출입문 가까이 앉아라.
9. 여자를 만남에 정중하고 신중히 하라.
10. 어떤 경우라도 비상금을 떨어지게 하지 말라. 생명의 위험이 닥치든 운명적 사랑이 닥치든 반드시 비상금이 있어야만 타개할 수 있다.
그 후 아이가 어학연수를 떠나고 직장에 다니며 원룸에 살면서 가마득히 잊은 그 <십계명>이 아들이 결혼해 신접살림을 차리면서 며느리에게 발견되어 신기하다고 했지만 특히 바깥사돈이 그걸 보고
“우리 이서방이 이렇게 귀한 아들이었구나! 사돈어른이 정말 아들사랑이 지극한 분이구나.” 하고 감탄하다 한번은 집안일로 저와 만나 밥을 먹다 특별히 그 이야기를 하며 그런 귀한 아들을 주어 고맙다고 치하하기도 했습니다.
재작년에 아들이 인도의 뉴델리로 떠나면서 또 한 번 <객지생활10계명>이야기가 나왔지만 당시 마흔이 넘은 아들이 이제 자기는 굳이 그런 것이 없어도 어디서든 잘 살 수 있다고 손사래를 치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19가 생긴 이후 아들은 한 번도 나오지 못해 벌써 얼굴본지가 1년 가까이 되고 한국으로 피신 나왔던 며느리와 손녀들로 다시 외국인학교의 수업일수를 채운다고 다시 인도로 떠났는데 이번에는 손녀용 <코로나19예방 10계명>을 만들어 주려고 생각하다 이젠 그런 일도 저는 뒤로 물러서고 제 아비에게 맡겨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었습니다.
아들이 처음 인도로 떠날 때 이렇게 교통이 좋은 세상에 설마 자주 오겠지 하고 웃으며 보낸 후 딱 한번 한 일주일 한국에 왔다간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어 과연 제가 이 오래 된 지병과 신종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다 견뎌낼지, 그래서 10명의 내 식솔을 한자리에 다 모을 날이 올 수나 있을까 걱정이지만 아이들이나 저나 저 <10계명>을 떠올리며 모든 위기를 다 잘 넘길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심심풀이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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