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한 살의 동화(童話)」 ... (13)당뇨 칩과 로또복권

말년일기 제1214호(2021.1.13)

이득수 승인 2021.01.12 20:05 | 최종 수정 2021.05.01 21:40 의견 0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찾게 되는 당뇨측정세트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찾게 되는 당뇨측정세트

장날이 낀 어느 아침 이었습니다.  아내와 마주보고 식사를 하는데 문득
 
“아, 당신 머리숱이 다시 올라오네. 그것도 새까만 머리숱이 몇 올!”

짐짓 감탄을 하는 아내가 기어이 거울을 보고 오라고 해서 숟가락을 놓고 세면장에 가서 보니 왼쪽 이마위에 과연 새까만 머리 숱 여남은 개가 저들끼리 엉겨서 올라오고 있었읍니다.

“다믄 백발이라도 그게 머리에 가득했을 때가 좋았는데 그게 한 8할쯤 빠지고 검은 머리 몇 개 난 게 뭐가 특별해.”
“아니야. 우리 젊은 시절 나는 당신의 검고 빳빳하며 빈틈없이 조밀한 머리숱이 늘 신기했어. 어쩌다 이발을 하고 포마드기름을 바른 날은 옆에 누우면 포마드 향기가 나고...”

하는 것이 눈만 마주쳐도 전기가 통하던 신혼시절이 생각난 모양이었습니다.

점심 때가 될 때쯤 언양 5일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요즘 밥맛이 떨어져 지져먹는 살찐 갈치와 반쯤 마른 명태도 사도 졸여먹기 위해섭니다. 가는 길엔 의료기가게를 찾아 당뇨 칩을 샀습니다. 제가 암환자로 밝혀지고 나서 의료기 상에 올 때마다 하는 고민, 오늘도 당뇨칩(50개)들이 두 개를 사나, 세 개를 사나 고민하는  것입니다. 두 통을 산다면 한 백일 이후에 내가 계속 살아있을지 자신이 없는 경우고 3통을 사면 150일 쯤 더 연명하는 자신이 생길 때입니다. 오늘은 아침의 검은 머리숱 몇 올을 떠올리며 3통을 샀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수술을 받고 아내가 저를 보고 너무 상태가 안 좋아 재발이나 전이에 또 중풍이나 치매우려가 많아 단 6개월이나 1년도 살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전해주어 그 때는 몹시 추은 한 겨울인데도 두꺼운 파커 하나 사자는 걸 곧 죽을 사람이 왜 사냐고 버티고 당뇨 칩도 한 통씩만 샀는데 당시에 연산동 서재에 있는 수천 권의 도서를 보고 내가 죽으면 저 많은 책을 다 어찌하랴 통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럭저럭 한해, 또 한해를 넘기고 3년차가 되면서 옷과 신발도 사고 당뇨 칩도 세 통씩 사고 아내의 요청으로 사랑하는 마초에게도 간식을 사다 먹이기로 했는데 닭고기, 오리고기, 쇠고기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간식 대여섯 봉지와 햄처럼 생긴 강아지통조림 한 다섯 통을 사면 요금이 4만~5만 원에 한 서너 달 정도 먹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 같고 아내와 가족이 좋아할 것 같아서 입니다.
 
그리고 또 구물구물 시간이 흘러 저는 너무 비싸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약과 주사를 두 종류나 맞아도 부작용만 심해 모든 투약을 일단 끊으니 오히려 지내기도 좋고 밥맛도 조듬 졸아오고 있습니다. 근대에서 심하게 기합을 받을 때나 영창세 잡혀있을 때 병사들은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며 하루하루 다가오는 제대날자를 기다렸는데 저도  어느 새 5년 법정완치기일이 가까웠습니다. 

 사진2. 좀 체로 걸리지 않는 백일몽(白日夢) 로또복권
좀체 걸리지 않는 백일몽(白日夢) 로또복권

전쟁이나 지진의 폐허 속에서도 셈이 솟고 꽃이 피고 여인은 아이를 낳는다더니 그 여섯 번의 절망 속에서 저는 날마다 산책을 하고 글을 써 대하소설 <신불산>도 마무리 하고 포토에세이를 천회 넘게 써 에세이 집<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옛 말에 과부가 <간다간다 하면서 가지 않고 성(姓)이 다른 아이 셋을 낳고 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 근 5년 나름대로 별별 일을 다 한 것입니다.

나간 김에 외식을 하기로 하고 저는 <삼선짜장>이란 좀 비싸고 특별한 미식을 택하고 아내는 그냥 짜장면을 먹었는데 식전에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를 너무 좋아해 1인당 2개씩 네게 중 제가 하나를 양보해 아내가 세 개를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단골 복권가게에 들려 5천 원짜리 로또 한 장을 샀습니다. 50대가 좀 넘어 선 아내가
“나는 언제 남처럼 월세 받는 상가건물을 지녀볼 수 있을까?”

하는 말을 듣고 일주에 로또 한 장씩을 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고 20년이 다 되도록 5천 원짜리 5등을 일 년에 서너 번, 2만 원 짜리 4등을 딱 한 번 했지만 아직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언양은 무슨 이유론지 로또 판매점이 점점 줄어들어 골목골목을 한참 돌아 겨우 찾아가도 문이 닫혔을 때가 열렸을 때 보다 더 많아 한 달 네 번의 토요일중 로또복권당첨을 확인하는 일은 한드 번도 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그 상가전물의 꿈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서가 아니라 내 아내가 그 오래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체가 아내의 꿈과 정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년 전 제가 첫수술을 하고 퇴원을 할 때 담당의사는 아무음식을 가리지 말고 고루 먹으라고 했고 아내에게는 6개월 내로 중풍이나 치매가 와 1년을 넘기기 어려우니 어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거나 먹으라는 말을 액면대로 믿고(사실 음식을 가릴 필요도 없는 상태의 건강이지만) 부지런히 식사와 산책과 글쓰기를 거르지 않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차마 바른 말을 하지 못 한 것이 5년이나 살아오게 된 모양입니다.

내년이나 내 후년에 아들이 돌아오면 요즘 재개발붐으로 꽤나 값이 오르고 있는 부산의 아파트를 팔아 아들딸과 아내에게 나누어 주고 제 병원비로 조금 비축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 몫도 일부 떼어주던 무엇이던 자기도 투자를 한번 해보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병원에 가서 만약 결과가 무던히 나오면 이제 당뇨 칩을 한번에 4통을 사서 200일에 대한 기대를 하고 되든 말든 로또 복권도 꾸준히 살 것입니다.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표시, 당첨날 일주일을 가슴조이며 기다리는 작은 설렘 아직도 남아있는 작은 희망이 되어줄 테니까요.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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