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동방의 아침,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코로나19의 괴 바이러스가 침략한 지 1년여(餘). 그간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죽어가고 비말(飛沫)로 전염되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착용에서 일부업종의 영업제한 또 학교수업, 종교활동 등 밀폐공간의 집회금지에 이제는 경보단계 2.5나 3.0까지 발표되어 저녁 9시 이후 영업금지, 결혼식과 장례식의 인원제한, 심지어 가족모임까지 인원수가 제한되어 식당이나 카페 등 각종 접객업소는 물론 집안제사까지 다섯 명이상 모일 수 없는 암담한 세월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확진자와 미확진자, 방역영웅 같은 새로운 단어들이 국민생활에 많이 파고들었지만 그 중에서 좀 특이한 유행어가 3밀(密), 즉 밀집(密集), 밀접(密接), 밀폐(密閉)의 3밀이라는 기피사항입니다. 즉 코로나19의 번짐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광화문시위 같은 대규모의 군중, 즉 밀집이 없어야 하고 다음 지하다방이나 노래방, 헬스장등 밀폐된 공간에 서로 가까이 있는 밀접을 피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3말, 밀접, 밀폐, 밀접이란 낱말을 곰곰 음미해보면 밀집은 자신도 모르게 무작위로 모인 대규모의 군중을 뜻 하는 바 한 개인이 직접 좌우하는 단어도, 개인이 혼자 이룰 수 있는 단어도 아닙니다. 그래서 남은 두 단어, 밀접과 밀폐, 즉 “밀접, 밀폐, 밀접, 밀폐....”
길게 이어가다 어느 순간
“밀폐, 밀집, 밀폐, 밀집....”을 이어가면 자기도 모르게 “밀폐, 밀접, 밀폐, 밀접, 밀애, 밀폐, 밀접, 밀애...”
엉뚱하게도 밀애(密愛)라는 낯간지러운 단어, 젊은이라면 금방 등이 후끈 달아오르는 달콤한 단어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시대는 밀집, 밀접, 밀폐의 3밀을 피해야 되는 시대가 틀림없지만 그 간지러운 단어 밀애를 되도록 장려해야 되는 묘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이야기냐고요? 너무 흥분하지 말고 제 이야기를 찬찬히 좀 들어보세요.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국란, 홍경래난이나 동학란이 일어났다 수습된 후 너무나 급격히 피폐해진 농토와 줄어든 인구(특히 노동력의 주체인 젊은 사내)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군주가 선정을 베풀어도 좀체 인구가 붓지 않고 해마다 흉년이 들어 굶어죽은 시체가 금수강산을 뒤엎었답니다. 그런데 그 전쟁(옛날에는 난리라 불렀음)의 상처가 회복되는 것은 전쟁이 끝난 뒤 한 30년 가까이 다시 인구가 회복되고 묵었던 논밭이 일구어져 곡식이 자라면서 수많은 농촌인구가 밥을 안 굶고 나라의 창고에도 세곡이 가득히 들어찬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 수많은 아들과 아이아비들이 전쟁에 나가 죽거나 길이나 집에서 참살되어 남녀 성비가 거의 4:6, 성인만 치면 3:7로 기울 때 아비가 살아온 가정에 새 아기가 태어나고 그새 여드름이 돋고 턱수염이 자라난 사내가 이웃처녀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기도 했지만 그 참,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외딴집에 아이 둘이 딸린 과부에게 전쟁 중에 아내가 죽은 농부, 아니면 아직도 장가를 못간 서른이 넘은 떠꺼머리총각이 담을 넘고 들어가 뜻밖의 아이가 태어나면 전쟁이란 특수상황을 고려, 그 모든 새 생명에 면죄부를 주어 한 30년 뒤면 점차 회복하기 시작한 인구가 한 20, 30년만 더 지나면 전쟁 전으로 원상회복한다니 그 참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입니다.
이번의 코로나19의 기습도 우리가 최근에 겪은 난리 한국전쟁(6.25)에 못지않게 국민의 생활에 최악의 피해를 입히고 이대로 간다면 남북을 통틀어 근 백만 명의 확진에 몇 만 명의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옛날보다 산업구조와 국민들의 교육과 의식수준이 많이 달라 그렇게 쉽게 산업시설과 시스템이 회복되고 아이들이 대량으로 태어나 인구가 늘어갈 형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학교급식,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급식만 중단해도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키우는 수많은 농부들과 납품업자가 도산을 하고 어린이집의 보모와 방과 후 선생님도 실직을 하고 재래시장의 상인이나 골목상권에까지 찬바람을 몰고 옵니다.
거기다 지난 2020년은 단군조선의 고조선 건국 이래 처음으로 출생자가 사망자보다 적어 공식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해로 약 3만 명의 인구가 줄었답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냐 하면 우리가 지금 아무리 산업발전과 후세교육, 무역신장과 국부창출에 힘써도 이렇게 한 20, 30년이 지나면 아동, 그러니까 학생의 감소로 지방의 모든 대학교가 문을 닫고 적어도 백 년 후에는 서울에도 국립대 한 서넛이 남는답니다. 그리고 지금 김해공항이 맞느냐, 밀양이나 가덕도신공항이 옳으니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지만 한 200년 후면 그 커다란 기반시설이 칡넝쿨과 아카시아가 우거진 가시밭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가 있고 서기 2500년에는 서울에서 다시 어린애 우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인구증가는 전 국민이 직접 몸으로 참여해야하는 가강 원시적인 과업입니다. 지금 다들 코로나19와 먹고사는 일에 정신이 없지만 그렇게 한 3, 4년 아무 생각없이 생업에만 종사하다 정작 코로나19사태가 수습되었을 때 인구가 100만, 200만 명이 줄어(지금은 아무도 결혼을 하거나 애를 낳을 형편이 안 되어) 인구의 하향곡선이 다시 돌아서지 않는다면 인구감소가 코로나19도다 더 끔찍한 재난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불경기로 회사가 쉬어 원룸에서 따로 따로 방콕을 하는 처녀총각이 이럴 때일수록 더욱 용기를 내어 밀회를 하고(여기에서 밀애는 단순한 도덕적인 몰래 만남이 아니라 조용한 시간과 밀폐된 공간에서의 자연스런 성애(性愛)를 말합니다.) 시장 한가운데 튀김집 둘 째 딸은 손님이 없이 무료한 오전을 보내느니 시장입구 청년창업자 혼자 쓸쓸히 음악을 듣는 카페로 들어가 가장 으쓱한 테이블에서 데이트를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오래 되어도 아이가 안 생기는 집도 이럴 때 새삼 용기를 내어 또 한 번 시도해도 좋고...
포토 에세이가 시작된 지 1200회가 넘었는데 마초할배가 오늘 가장 민망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이는 실제로 이 나라와 민족이 앞으로 영원히 지속되느냐 마느냐 절체절명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인간만사가 다 그렇듯 사랑도 몸과 마음이 풀려야 이루어질 일, 새로운 3밀, 밀애가 너무 무거우신 커플은 우선 조용한 공간에서 다만 밀감이라도 하나씩 까먹고 밀크라도 한 잔씩 하면서 3밀+신3밀이 되면 또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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