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19)딸과 간식

말년일기 제1120호(2021.1.19)

이득수 승인 2021.01.18 15:34 | 최종 수정 2021.01.22 16:04 의견 0
사진1.어느 해 추석날 아이들과 놀아주는 우리 떨(소파왼쪽) 
어느 해 추석날 아이들과 놀아주는 우리딸(소파 왼쪽) 

포토 에세이 글감이 없을지 휴대폰의 사진갤러리를 검색하다 문득 <딸과 간식>이란 제목이 떠올랐습니다(아주 오래 전에 읽은 박범신의 <칼과 이슬>에서 연상된 듯합니다).

그러고 나니 제가 병이 난 이후로 나무 많은 간식으로 살아간다는 생각, 간식으로 연명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잘 먹는 아이에 무엇이든지 눈에 뜨이면 바로 먹는 꼬마이지 무엇을 가려서 먹는다든지 감추어놓았다가 나중에 먹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한창 자라던 시절이라 늘 배가 고팠고 늘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식습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평소에 술을 즐겨 반찬보다는 좋은 술안주를 찾고 언제 어디선가 좋은 술안줏감이 보이면 반드시 술을 마시는 식, 세상의 음식이란 밥과 술과 안주의 3등분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치부하고 과자니 아이스크림 우유제품을 입에 잘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술을 자주 먹고 다양한 안주를 먹다보니 크게 건강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사람이 병이 나고 보니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아내가 어디서 무엇이 간암에 좋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낯선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지락과 다슬기, 재첩이 들어간 음식인데 그건 몸이 성할 때도 술안주 또는 해장용으로 자주 먹던 음식인데 귀촌하고는 구경을 못 하다가 다시 먹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한 20명의 생질과 수많은 조카들이 있는데 명절에 외삼촌을 보러오면 대체로 홍삼제품을 많이 가져와 과자처럼 씹어 먹는 것, 팩에 들어 마시는 것, 또 현탁액이라 빨아먹는 것도 있고 딸이 뼈에 좋다는 달팽이엑기스도 몇 번 사오곤 했는데 달팽이자체가 사람 몸에 많이 이(利)한 느낌이 듭니다. 

또 집에서 간식사마 먹을 수 있는 유제품으로 마시는 비피더스 우유와 떠먹는 요구르트에 먹기 좋게 사각으로 잘라 포장한 치즈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군것질감으로 먹던 각종 비스킷 종류와 읍내의 양과점에서 사다놓는 기다란 바게뜨빵 종류는 저녁 10시경 잠들기 전 마지막 간식으로 먹습니다. 

사진2.간식용 유제품
간식용 유제품

거기다 암환자는 커피보다는 쌍화차나 생강차를 마셔 체온을 높게 유지해야 된다고 해서 쌍화차, 생강차에 율무, 호두, 아몬드가 들어간 건강차를 끓여 1L 한 병에 6만 원을 하는 생강엑기스를 타다 마시니 추위도 안타고 좋은 것 같아 꾸준히 먹다보니 이제 쌍화차마니아가 되었습니다. 거기다 황창현 신부의 우튜브를 보는 아내가 청국장가루가 좋다고 해서 그 걸 쌍화차를 탈 때 한 스푼씩 넣기도 합니다. 

또 요즘 코로나19로 만나고 헤어지고 방문하는 일이 없어지자 심심해도 너무 심심해진 제 아내와 셋째누님둘이 장날이 되면 어떻게든 장에 가서 제가 좋아하는 찰떡, 아내가 좋아하는 찜떡, 누님이 좋아하는 가래떡도 사오고 제가 즐기는 족발도 사는데 언양장날 단 두 곳에서 파는 족발은 맛도 좋고 양도 많지만 하루에 두서너 번 족발을 쪄내는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답니다. 거기에 또 과일이 있는데 산책을 나가거나 잠자기 전 출출할 때 손쉽게 먹기에는 바나나만큼 손쉬운 게 없지만 한 송이에 보통 열너덧 개나 되는 열매를 저 혼자 2/3쯤 먹기도 전에 남은 놈이 새까맣게 변하면 아내가 알아서 새것으로 사다 걸어주고 밀감도 한 상자씩 사다 놓아 수시로 입가심으로 먹습니다.

그리고 가장 비싼 간식은 가끔 단백질을 먹어야 된다고 부산의 딸이 쇠고기를 사다 냉동실에 보관하는데 아주 연한 살코기를 일주일에 한두 번 먹는데 돈10만 원이 든다고 하는데 그걸 프라이팬에 구워 저를 먹으라고 접시에 통째로 담아주면 어쩐지 잘 넘어가지 않고 한 댓 점 이상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몸이 무거워 고기만 구우면 아내더러 몇 점만 먹어보라, 이건 당신 약이니 혼자 먹어라, 싸우기 마련인데 마침 누님이 당도하는 날이면 무어든 맛이 있으면 단숨에 먹고 맛이 없으면 절대로 안 먹는 누님이 숨도 안 쉬고 단숨에 다 먹어버리면 우리내외는 그걸 두고 무슨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냥 입맛만 다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의 제목을 굳이 <딸과 간식>으로 올린 데는 쇠고기 외에도 검은콩 두유에 달팽이엑기스, 빨아먹는 홍삼, 또 종합견과세트와 컨디션이 나쁜 날 기분전환용의 <영진구론산바몬드>에 쌍화차까지 모바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딸애가 택배로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약을 끊어 하루 세끼 식사를 성인의 한 절반 정도를 하고 새벽에 저혈당이 와서 저녁 10시 넘어 주로 빵이나 떡, 과일 등으로 마지막 간식을 하는데 중간중잔 유제품과 과일을 먹는 것까지 치면 하루에 한 대여섯 번은 무얼 먹어도 먹는 셈입니다. 

   3.장날 아내가 사온 도토리묵에 바나나와 옥수수 
  장날 아내가 사온 도토리묵에 바나나와 옥수수 

어느 집 딸이나 병든 아비가 있으면 다들 잘 하겠지만 제 딸 슬비가 제게 열심히 잘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의 동기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어려운 공무원생활에도 딸의 의견을 물어 인문학(행정학)을 시키고 인문학도는 알바를 하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에 이롭다고 알바 한 번 안 시키고 대학을 마친 점 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갑자기 복부에 출혈이 있어 지혈도 안 되고 수술도 안 되어 응급실의 의사가 서울의 아들을 불러 유언이나 하라는 그 절박한 순간에 잠깐 의식이 돌아온 제가 딸에게

“딸아, 아빠가 이렇게 가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너에게 좀 더 잘 해줄 수도 있었는데...”

하고 다시 의식을 잃어버리자 너무나 안타까워 우리 아빠 살려내라고 길길이 뛰며 울던 게 특별히 아빠가 애련한 동기일 것입니다.

제가 인문학과 독서를 권장해서 그런지 그 아이는 어디에 가도 잘 어울리고 집단의 리더가 되는데다 생활력이 좋은 건지 모험으로 시작한 왕만두장사가 꾸준히 잘 되어 코로나19로 모두가 죽을상인데도 꾸준히 매상이 유지되는 것이 나름 단골과 마니아가 잘 관리되는 모양, 하나뿐인 딸의 밥걱정이 없다는 것은 병든 아비에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너무나 고마운 일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제 병원비로 많이 주기로 하지만. 이렇게 매번 간식비로 보태니 아무튼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 딸, 늘 고맙고 사랑한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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