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17)서부극에 빠지다3(충무동 육교의 핸드프린팅)

말년일기 제1218호(2021.1.17)

이득수 승인 2021.01.16 16:51 | 최종 수정 2021.05.01 21:31 의견 0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광장'의 핸트프린팅. [ 메주아재 tv 캡쳐]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광장'의 핸트프린팅. [ 메주아재 tv 캡쳐]

아주 짧은 기간인 2년 가까이 제가 부산중구청에 근무한 사실을 아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때 지방자치의 새 시대를 맞아 부산시와 그 중심인 중구청은 지역을 알리고 선거직 단체장의 표를 모으기 위해 자갈치축제에 전력을 다 하다 보다 국제적이고 규모가 큰 <부산국제영화제>를 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도 서구청 맞은 편 충무동육교입구에서 부산극장까지 이어지는 부평동극장가(보통 남포동으로 알고 있음)이 부산 극장문화의 중심이라 중구청에서는 평소 수많은 인파와 포장마차와 불량식품으로 넘치는 피프(부산국제영화제)거리의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가장 큰 행정의 과제였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피프담당관긴급회의가 열려 환경정비담당 총무과 도로담당 건설과, 식품담당위생과, 실무담당 지역경제과장까지 구청장 주관으로 환경정비실적과 대책회의에 몰두했습니다. 당시 저는 민방위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부평동깡통시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한 서른 채의 건물이 불타고 이재민(罹災民)20여 세대가 발생하여 오로지 화재 후 잔재처리와 재건축, 이재민관리에 몰두해 피파업무와는 관련이 없었지만 하도 동료들이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에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국제적영화제라는 것은 파리나 바로셀로나 또는 이스탄불이나 뉴욕, 또 LA의 허리우드처럼 다소 소란하게 북적거리며 온갖 유형의d행인들이 돌아다니는 인종(人種)시장이 되어 저마다 복장과 외모를 자랑하는 거리, 가장 이국적이면서 가장 편안한 거리, 마치 알랭들롱이 길가에 세워둔 펀치측정기를 쳐보고 얼굴을 찌푸린다든지 김밥이나 어묵, 오징어다리 같은 노점식품에 배가 부른데다 막걸리까지 한 잔 걸친 소피마르소가 어둑한 전봇대 밑에서 치마를 들고 볼일을 보는 것 같은 무질서 속의 질서를 패턴으로 해야 진정한 현대적인 첨단 영화제가 될 것입니다.”

했더니 그게 구청장 귀에 들어가 다음 날 회의에서 

“돗데기시장처럼 복잡하고 정신없는 분위기가 더 영화적이고 문화적이라는 시인과장님의 말씀은 다음 영화제 때 반드시 한 번 반영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전에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된 일이 있습니다.

그 후 다시 서구청으로 돌아가 모진 정치바람에 휘말려 외톨이로 버림받은 사무관이던 시절 몇 명의 제 심복직원들과 충무동육교를 건너 피파광장을 한참 걸어 당시 처음으로 핸드프린팅을 한 두 개 설치한 극장가의 포장마차나 큰 길을 건너 자갈치골목의 곰장어로 술을 마시면 불빛이 물에 어릴 밤바다가 얼마나 황홀하게도 외롭고 서럽든지...

그 후 인기정년퇴직을 한 뒤 미국서부를 여행하며 LA의 친구 집에 며칠을 묵으며 자체로 커다란 도시나 황야 같은 영화촬영세트장은 물론, 디즈니 랜드외 배버리힐스를 구경하고 LA에서도 비로소 시내라고 부르는 허리우드거리를 일행들과 방문해 영화의 거리입구에 새겨진 수많은 청동(靑銅)제 핸드프린팅을 구경하는데 입구에 맨 처음 설치된 것이 그레고리 팩이었고 <로마의 휴일>의 상대역 오드리 헵번의 핸드프린팅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술자리의 동료들이 외로움이 가득 고였을 것이라는 필자의 손금
술자리의 동료들이 외로움이 가득 고였을 것이라는 필자의 손금

그렇게 4년 동안 동서양에 아프리카와 호주까지 한 20여 개국을 여행하고 아내는 갓 태어난 늦둥이 외손주 현서를 보고 저는 대하소설에 집중하면서 몇 해를 보내던 시절 모처럼 <독수리5형제>라는 제가 문화관광과장으로 가장 열심히 일하던 심복들과 서구청 앞에서 만나 충무동육교를 건너 피파광장을 한참 걸어 자갈치 곰장어 집으로 건너가는데 그 때는 Pusan의 피프도 Busan의 비프로 이름이 바뀐 데다 수영강가에 지은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영화상영과 행사마저 대부분 해운대로 옮겨가 인적도 많지 않은 쓸쓸한 광장의 희미한 가로등이 세월의 허무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윽고 곰장어  집에서 소주를 마시다

“내가 진짜 허리우드에서 그레고리 팩의 핸드프린팅을 보니 참 멋지던데 이제 졸지에 도시의 뒷골목이 된 충무동영화가의 핸드프린팅은 마치 김밥장사나 암표장사 같은 남루한 도시인의 손금만 같아.”

했더니 직원하나가 

“해만 설핏 넘어가고 소주 한 잔만 자시면 눈에 우수가 가득한 우리 국장님의 손금은 무엇으로 보일까요?”

물어 한참을 생각하던 제가

“그건 아마 기나긴 외로움의 손금일 거야.”

하고 소주잔을 털어 넣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외롭고 힘든 시절에 쓴 충무동 육교가란 시 한편을 올립니다.

충무동 陸橋가 / 이득수
                         
밤안개 젖어오는 흐린 밤이면
충무동 육교 가를 서성거린다.

祝祭도 끝나고 필름도 멎은
피프廣場 포장마차 不夜城 되면
흐린 하늘 스크린에 리어카 뮤직
이 거리의 사람모두 主人公 되어 
남루한 삶 한 컷 한 컷 映畵를 찍고
고단한 웅얼거림 臺詞를 외는

(저 광장 바닥가득 각진 銅版엔
화려한 톱스타의 핸드 프린팅
이 골목 어정대는 취객과 걸인
웅크린 어깻죽지 가난한 손금...)

<사공의 뱃노래>나 <동백아가씨> 
흘러간 트로트에 가슴이 뛰는
내게 아직 여린 心性 남은 것일까
슬픈 노래 만나러 불빛 만나러
저이들도 이 거리로 나오는 걸까.

비 오는 밤엔 쓸쓸한 밤엔 
충무동 육교 가를 서성거린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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