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8) 세상을 덮고도 남을 공로도‘자랑할 긍(矜)’자 한 글자를 당할 수 없고, 하늘을 가릴 만한 잘못도‘뉘우칠 회(悔)’자 한 글자를 당할 수 없

허섭 승인 2021.01.18 00:37 | 최종 수정 2021.01.19 12:07 의견 0
겸재 정선 - 인왕제색도

018 - 세상을 덮고도 남을 공로도‘자랑할 긍(矜)’자 한 글자를 당할 수 없고, 하늘을 가릴 만한 잘못도‘뉘우칠 회(悔)’자 한 글자를 당할 수 없다

세상을 덮을 만한 공로도
‘자랑할 矜’자 한 글자를 당할 수 없고, (자랑 앞에서는 물거품이 되고)

하늘을 가릴 만한 잘못도
‘뉘우칠 悔’자 한 글자를 당할 수 없다. (회개 앞에서는 봄눈 녹듯 없어진다)

  • 蓋世功勞(개세공로) : 온 세상을 뒤덮을 만큼 큰 공로. 蓋는 ‘덮다’ 의 뜻.
  • 當不得(당부득) : 감당해 낼 수 없다.
  • 不得(부득) : ~하지 못하다, ~할 수 없다 (can not)
  • 矜(긍) : 자랑하다, 으스대다, 뽐내다.
  • 彌天罪過(미천죄과) : 하늘에 가득 찰 만큼 큰 잘못(죄). 彌는 ‘널리 퍼지다’ 의 뜻.
  • 悔(회) : 뉘우치다, 참회하다, 회개(悔改)하다.
  • * 본문 중의 悔를 ‘지나간 일을 두고 아쉬워하다’ 의미로 ‘후회하다’ 로 옮기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세심하게 밝히지 못한 번역이다. 마땅히 회개(悔改)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종교적 영성으로 보자면 ‘지금가지 살아온 과거와 결별하고 새롭게 태어남’ 을 의미하는 것이다.
판교 정섭(板橋 鄭燮, 청, 1693-1765) - 주석도

◆번역자의 말

옛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랑하는 것을 늘 경계하였습니다. 심지어 귀신까지 시기 질투한다고 생각했기에 귀한 자식일수록 오히려 이름을 천하게 지어 부르기도 했습니다. 경사스런 일이 있어도 항시 ‘호사다마(好事多魔)’ 라고 조심조심 하였습니다.

채근담에서도 ‘귀신이 해코지하는 것’ 을 두려워하는 구절(전집 제20장 참조)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항상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겸양의 삶을 최고의 처세로 여겼던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랑이 심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성향이기에 특히 이 구절은 새겨둘 충분한 가치가 있는 문장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고집스러워지는 것은 자기가 살아온 삶을 스스로 부정하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가 살아온 삶과 경험이 절대적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나 젊은 세대들의 말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지나온 삶이 언제나 반듯했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인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부정하기 싫어서 그것을 부정하면 마치 자기 존재가 갑자기 사라질 것만 같아서 감히 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반성(反省)과 회개(悔改)는 조금 차원이 다른 것이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에 있어서는 다 같은 일입니다. 회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에 스스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늙으면 몸이 굳어지고 죽으면 완전히 뻣뻣해집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이들 몸처럼 말랑말랑 한 것을 말합니다. 고집은 우리 몸을 굳어지게 합니다. 고집을 버리고 매일 매일 자신을 죽이는 연습을 하며 말랑말랑 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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