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1) 집 안에 부처가 있고 일상 속에 진리가 있다

허섭 승인 2021.01.20 19:35 | 최종 수정 2021.01.22 10:32 의견 0
겸재 정선 - 인왕제색도

021 - 집 안에 부처가 있고 일상 속에 진리가 있다

집안에 참 부처가 있고, 일상 속에 참다운 도리가 있으니,
사람이 능히 성실한 마음과 온화한 기운, 즐거운 표정과 자상한 말씨로써

부모 형제를 하나가 되게 하고 마음과 뜻이 서로 통하게 한다면
(부처 앞에) 숨을 고르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만 배나 나을 것이다.

  • 個(개) / 種(종) : 하나의 / 일종의
  • 愉色(유색) : 즐거운 표정. 愉는 ‘기쁘다, 부드럽다’ 의 뜻.
  • 婉言(완언) : 완곡(婉曲)한 말. 婉은 ‘유순하다’ 의 뜻.
  • 形骸(형해) : 몸과 육체
  • 兩釋(양석) : 둘이 하나가 됨을 말함.
  • 勝於(승어) ~ : ‘ ~ 보다 낫다’ 는 문장 구문.
  • 調息觀心(조식관심) : 불교의 참선법(參禪法)을, 선도(仙道)의 양생법(養生法)을 이름.
판교 정섭(板橋 鄭燮, 청, 1693-1765) - 난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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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제1장에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率性之謂道(솔성지위도)、​修道之謂教(수도지위교). 道也者(도야자),不可須臾離也(불가수유리야) ​可離非道也(가리비도야). 是故(시고) 君子(군자)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 莫見乎隱(막현호은) 莫顯乎微(막현호미)故君子愼其獨也(고군자신기독야).

하늘이 명하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도라는 것은 잠시(須臾)라도 떠남이 불가하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못하는 바에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못하는 바에 두려워한다. 숨어 있는 것보다 드러나는 것은 없으며, 미미한 것보다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다.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 후집 제35장 참조

平常心是道 - 불교에서 말하는 도심(道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의 마음이 곧 도(道)라는 가르침.

한 승려가 도일선사(道一禪師)에게 어떤 것이 도인가를 물었을 때 ‘평상심이 곧 도’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세상 사람은 도라고 하면 특별한 것 또는 보통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기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란 바로 범부가 일상 생활하는 그 마음을 여의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마음에 번뇌가 없고, 일상생활의 하나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도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상심시도’를 매우 중요시하여 도의 궁극적인 경지와 수행의 과정을 이 평상심에 두고 있다.

‘평상심(平常心)’ 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가 처음 말한 것이지만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을 거쳐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에 이르러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여기에 그들의 만남을 소개하고자 한다.

남악에서 회양(懷讓)대사가 제자를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마조대사가 찾아가서 열심히 좌선 수행을 하였다. 이를 보고 회양대사가 물었다. “스님은 무엇을 하려고 좌선을 합니까?” 마조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이 되려고요.”그러자 회양대사가 기왓장을 가지고 와서 마조대사가 보는 곳에서 갈기 시작했다. 마조대사가 물었다. “기왓장은 갈아서 무엇을 하실 겁니까?”“거울을 만들려고요.”“기왓장을 간다고 거울이 될 리가 있겠습니까?”“기왓장을 간다고 거울을 만들 수 없듯이 좌선으로 부처 될 리 없네.” 마조대사가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수레가 앞으로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아니면 소를 때려야 하겠는가? 선(禪)이란 결코 앉아 있는 것이 아니며, 앉아서 부처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부처님을 죽이는 행위와 다름없네." 이 말을 듣고 마조대사가 크게 깨달았다.

평상시의 마음이 바로 도다(平常心是道). 평상시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그것은 일부러 꾸미지 않고, 사량분별심으로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것만을 좋아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은 마음을 가리킨다. - 『마조도일선사어록』에서

조주(趙州)스님은 20세 무렵에 스승인 남전선사(南泉禪師남천)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평상의 마음이 도이다.”“그래도 닦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도는 알고 모르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조주는 이 말 끝에 깊은 뜻을 단박에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 오도송을 읊조리며 쓸데없는 번뇌 망상을 쉬었다.

春有百花秋有月 (춘유백화추유월) 봄에는 꽃들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이 밝다
夏有凉風冬有雪 (하유량풍동유설) 여름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린다
若無閑事掛心頭 (양무한사괘심두)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便是人間好時節 (변시인간호시절) 이것이 바로 우리 세상의 좋은 시절이라네

 

▶하느님과 화목하려면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
- 마태복음 5장 23-24절 (개역개정)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아내들은 관세음보살이다 - 도무지

‘굳이 절에 와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을 찾지 말고 내 집 안에 있는 부처와 관세음보살을 찾아 경배하시오.’ - 성철 스님께서는 평소 애정 문제로 갈등을 빚어 번뇌를 토로하는 보살과 처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마다 배우자를 향해 백배(百拜)를 올리라고 권고하셨는데, 그토록 미워 죽겠다는 대상을 향해 백배를 올리라니 처음에는 장난으로 상대를 놀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는데 차츰 모든 것이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로 귀착하면서 상대를 용서하게 되었고, 무턱대고 백배를 받던 상대방도 자연히 맞절을 하며 회개하게 되니 상대방도 나도 모두가 저절로 거룩한 존재로 변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부처(佛性)를 깨닫는 과정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집에 있는 부처님 - 이철수 판화

▶이철수 「산 부처님」 - 대종경 연작 판화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107쪽에서

< 대종경 교의품 15 >

대종사 봉래정사(蓬萊精舍)에 계실 때에 하루는 어떤 노인 부부가 지나가다 말하기를, 자기들의 자부(子婦)가 성질이 불순하여 불효가 막심하므로 실상사(實相寺) 부처님께 불공이나 올려볼까 하고 가는 중이라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어찌 등상불에게는 불공할 줄을 알면서 산 부처에게는 불공할 줄 모르는가”. 그 부부가 여쭙기를 “산 부처가 어디 계시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집에 있는 자부가 곧 산 부처이니,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 거기에 먼저 불공을 드려봄이 어떠하겠는가”. 그들이 다시 여쭙기를, “어떻게 불공을 드리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불공할 비용으로 자부의 뜻에 맞을 물건도 사다주며 자부를 오직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주라. 그리하면 그대들의 정성에 따라 불공한 효과가 나타나리라”. 그들이 집에 돌아가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몇 달 안에 효부가 되는지라 그들이 다시 와서 무수히 감사 올리거늘, 대종사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불공(實地佛供)이니라”.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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