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29)우리에게 길이 남아 있을까?

말년일기 제1230호(2021.1.29)

이득수 승인 2021.01.28 18:09 | 최종 수정 2021.01.30 21:47 의견 0
Meindert Hobbem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호베마 -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 길(The Avenue at Middelharnis) [Meindert Hobbem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위 사진을 좀 보십시오. 서양화의 발전사에 있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그림으로 도로의 양쪽을 두 줄로 나란히 뻗어가는 나무들 뒤 오른 쪽에는 집이 있고 왼쪽에는 목초용사일리지나 벽난로의 굴뚝같은 구조물이 보이지만 어쩐지 반듯하거나 따뜻하거나 사람이 산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구성을 보아도 한가운데로 양분되어 갈수록 키가 작아지는 나무들과 좁아지는 전면, 얼핏 보면 대칭법, 원근법, 황금비율등 회화의 기본을 잘 구성한 것 같지만 저 흐린 하는과 흩어진 구름과 가장 절망적인 색깔, 회갈색의 들판과 얼자주 구름에 가려 얼룩덜룩한 햇빛의 파편들...

한 마디로 저 그림은 2020년 코로나19에 시달리는 우리네 삶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정부와 방역시책과 재난기금, 아직 우리가 살아갈 뭔가가 남아있는 것 같지만 이웃도 가족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아무리 다정한 사람이라도 다가갈 수도 없고 늘 마스크를 끼어야 하니 다정한 누구에겐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시대, 무엇보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식탁에서 빕을 먹는 저녁이 없는 시대, 일상이 무너진 나라. 휘황한 네온은 아니더라도 조그만 촛불하나를 밝히고 서로 손뼉치고 웃을 수도 없는 나라, 봄이 사라지고 겨울겨울겨울에 또 겨울이 이어지는 나라, 그래도 위정자들은 우리에게 그냥 웅크리고 참으라고만 합니다.

그냥 웅크리기만 하는 누님이나 아내와 달리 저는 제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불안, 이제 더는 약도 치료도 없다는데 나는 이제 어떻게 되고 언제쯤까지 나의 달력을 넘길 수 있을까의 참으로 찝찝한 불안과 씨름해야 합니다. 거기다 다정한 친구들의 발길도 뚝 끊어지고, 아내도 지쳐 말수가 적어지고...

엊그제는 그래도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백병원에 가서 채혈을 하고 가슴사진을 찍고 일반환자들이 무시무시한 지옥처럼 생각하는 암센터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는데 전광판에는 코로나예방수칙 사이사이에 암환자는 그저 진통제를 열심히 먹으면 식욕도 생기고 생활도 밝아지고 가족이나 주변과 인간관계가 좋아진다고, 내가 당신에게 약을 주고, 주사를 주고 마침내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푸른 신호등은 하나도 없어 그냥 진통제나 많이 먹으라, 요즘 진통제는 아무리 먹어도 중독이 생기지 않는다는 전광판, 마치 한참이나 노랑색 신호등이 떠다 다시 붉은 신호등으로 바뀌고 다시 노란 신호등과 붉은 신호등, 결코 초록신호등이 없는 그런 단절(斷絶)음만 저 깊은 의식속의 까마귀떼가 우는 소리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의사선생님은 역시 별 뾰족한 대책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요 근래 아프기 시작한 몇 곳을 이야기 하자 그건 우리가 찾는 아이(암)이 아니라거나 전에 가져간 비상약 진통제는 아직 많이 남았느냐, 동문서답이지만 우문현답에 가까운 대책을 내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대하소설을 쓴다는 늙은 환자하나를 위해 참으로 오랜 기간 애를 썼는데 그리고 제 에세이를 읽은 간호사도 눈물이 글썽하며 저를 참으로 많이 챙겼는데 이제 의사선생님도 간호사도, 환자인 저도 간병인인 아내도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입디다.
 (그간 참으로 고생 했다고, 그래도 참으로 사랑했다고...)

진료를 마치고 수납을 하고 저는 병원약국에 약을 타러가고 아내는 경외 주차장에 자동차를 뽑아 단골추어탕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약을 타고 전에 늘 다니던 건물 사이의 통로를 걷는데 이상하게 행인이 하나도 없어 무질서하게 쌓은 박스들이 길을 반쯤이나 가로 막아 조심스레 걸어 계단을 오르니 이번에는 통행을 금지한다는 입간판이 서 있었습니다. 이 병원에 출입한지 만5년, 서툰 관리원만큼 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저는 

'옳지 저 옆 칸이 은행이고 은행 옆에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지.'

하고 부지런히 걸어갔지만 맨 끝에는 코로나19로 동행을 금지한다는 안내판 옆 두개의 손잡이에 쇠사슬이 쳐져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길은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돌아선 저는 젊은 검사원들이 체온을 재어보자며 늘 통행인을 괴롭히는 현관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도 절망과 실망밖에 없을 것이라며 아주 천천히 걷는데 문득 전화벨이 울리며
“왜 그리 늦어요? 추어탕이 식으니 빨리 와요.”

아내의 포근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지. 들깨가루가 많이 들어간 부드러운 추어탕에 아주 작은 국수다발 하나를 넣고, 그리고 천천히 입속 가득히 퍼지는 부드러움, 살아있음을 즐겨야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하나의 항구와 등대(燈臺), 아내가 있는 곳으로 저는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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