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좁은 국토를 수많은 묘지가 점령해 점점 생활용지가 부족한 점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생 시를 써온 한 시인으로서 제 사후에 아주 작은 무덤, 비록 평장(平葬)으로 하더라도 작은 시비를 하나 세우고 싶은 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가 문단에 등단하던 90년대에는 고향의 우리 부락 공도묘지가 두 곳에나 있어 내 전대 우리 아버님까지 마을 상포계(喪布契) 계원이라 제 죽으면 아무 애로사항 없이 작은 시비 하나를 세울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기 2천년이 넘어서면서 우리마을일대가 <고속철업무부지>로 지정되어 강제이주 되고 언양에서 제일의 고층아파트촌이 되는 바람에 우리 가족의 마지막 자랑거리이자 긍지인 다섯 기의 <진장산소>가 내년까지 헐리게 되었으니 이미 큰 병에 걸린 저에게는 여간 타격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묘지터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생겼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시든, 수필이, 무어든 제게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가장 <이득수>다운 글이 한 편도 없다는 점입니다. 곰곰 생각하면 제가 제일 잘 쓰는 분야가 서정시와 수필이라 제 누님들의 이야기라든지 농촌의 자연이나 시골마을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 더러 있는데 명색시인이라면 시비에 시를 적어야 하는데 그 대표시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제가 시를 쓰고 시집을 낸 이후 시인이라는 직업과 가수, 또 작사가와 자주 비교를 해보게 되는데 단 한곡의 대표곡이 있는 가수라도 그는 동시대인들에게 가슴을 적시는 어떤 서정의 고리(작사)민중의 검증을 받은 사람인데 비해 우리나라에 수도 없이 많은 시인들, 그 중에서 나태주의 <들꽃>의 오래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같은 절창 하나를 남겨 국민들에게 애송되는 가사나 시가 하나도 없는 시인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우리가 함부로 딴따라라고 부르는 가수도 알고 보면 작사, 작곡까지 겸한 아주 치열한 뮤지션에다 그 가사에 범접할 수 없는 철학성이 담긴 경우가 많은데 문단에 나가 수많은 시인들을 만나보면 과연 <시(詩)>라는 인류 최대의 예술혼에 천착하는 자로서 사서삼경이나 서양철학, 하다 못 해 그리스신화나 기본 동화책을 알뜰히 읽은 사람, 글 앞에서 스스로 외경(畏敬)심을 느끼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어떤 시인과의 대화에서는 기본상식이나 맞춤법에 대한 오류를 흔히 발견하게 됩니다. 도대체 이 많은 규격미달의 시인들은 과연 누구의 작품들인지...
그래서 저는 제 시비에 새길 명문(銘文)은 물론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나의 시나 문장, 무슨 대화의 기록이라도 없나 늘 찾아보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맹탕에 가까워 그만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초 <KBS 전국노래자랑>을 볼 때였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진행이 힘들어 한국가수협회에서 늙고 젊은 가스 한 40명을 동원 2회에 걸쳐 노래자랑을 하는데 역시나 9순의 송해선생님이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특별이 박재란이나 자니윤, 김용만 같은 원로가수들도 서너 명 끼어 넣었는데 한 번은 옛날 국극(國劇)스타인 한복 입은 할머니 양옆에 한때 코미디언으로 잠깐 활동한 키가 크고 어쩐지 좀 멋쩍어 보이는 인상의 방일수씨(베트민턴 선수 방수현의 아버지로 더 유명함)가 같은 또래의 노인과 만담을 하는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한참하다
“당신, 우리나라에 바다가 몇 갠줄 알아.”
“그야. 셋. 동해, 남해, 서해지.”
“아니야. 동해, 남해, 서해에...”
뜸을 들여 출연자와 사회자들까지 바짝 다가서며 관심을 가지는데
“송해지. 송해바다.”
하자 출연자들이 모두 쿡쿡 웃고 송해 선생님도 아주 흔쾌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듯 머리가 띵했습니다. 사실 그 말은 2001년 새로 뽑힌 구청장이 자신의 홍보를 위해 문화관광과장인 저에게 전 구청장이 있던 10년 전의 전국노래자랑을 또 유치하라고 해서(사실은 2,30년에 한 번도 어려움) 제가 송해선생님이 리허설을 하는 정읍체육관까지 가서 6.25피난살이를 부산에서 하며 외로울 때 늘 송도바다를 찾았다는 이야기(10년 전 노래자랑전날 술대접을 하다 들었음.)을 떠오르게 손 편지를 써 특별히 유치에 성공을 하고 리허설 하루 전날 송도해수욕장에서 송해선생과 악단장, 우리 구청의 소문난 술꾼인 부구청장과 과장인 저, 담당자의 셋이 송도의 횟집에서 2:3의 술 시합을 벌일 때였습니다. 먼저 담당 정주사가 자기 행정수쳡을 펴들고
“송해선생님, 사실 고흥에 계시는 저희 어머님이 선생님의 골수팬인데 지금 척추수술을 하고 병상에 누워계십니다. 여기 선생님의 사인 하나만...” 하자
“모친 이름이 무어지요?” 물어 아주 친절하게 격려사연을 적고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술잔이 연속 왔다갔다 다섯 다 어지간히 취해서 제가 문득 묻기로
“송해선생님, 우리 나라에 바다가 몇 인지 아십니까?”
“아, 그야 동해, 남해, 서해 셋이지.”
“아닙니다. 넷입니다.” “그럼 황해를 말하는 모양이군. 그렇지만 그건 서해의 별칭이고.”
“아닙니다. 서해, 남해, 동해, 그리고...”
“그리고?”
“바로 송해입니다. 송해!” 하는 순간
“어, 우리 과장님 좀 봐. 이러다가 우리과장님 구청장도 하고 남겠네. 내 이름이 송해는 맞지만 그게 동해, 남해, 서해 급의 송해라고 불러준 것은 과장님이 처음이네. 자 그럼 과장님 성함은...”
하고 아주 흔쾌히 웃으며 악수를 해주었는데 송해선생님이 그 말이 맘에 들어 서울의 사석에서 더러 반복한 모양입니다만 무명시인 저로서는 단 한번 제가 뱉은 말 한마디가 사회적 통용성을 가지고 돌고돌아 무려 20년 만에 제게 다시 돌아온 기적인 것입니다.
... 그렇다고 제 묘비명에 그런 농담을 쓸 수도 없는 일, 저는 더 진심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지요.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지만 유일하게 내입에서 벗어나 세상을 떠다니는 말 한마디. 여러분도 가끔 떠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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