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내게 남은 판수를?>이란 제목으로 부지불식간에 지나가버린 우리 삶의 즐거운 일, 즉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치고 노래방에 놀러다니던 이야기. 그 일상(日常)처럼벌어지던 한 판이 어느 듯 끝판을 지나 다시 벌일 수 없는 판(板)의 비정함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미련이 많은 종(種)인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면 한 판을 더 벌일까,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이 판을 길게길게 끌고 갈까 하는 이야기 판의 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우리가 점잖은 고등관과 사모님으로 만나는 <청우회>가 열리면 그야말로 정부미답게 한 두 시간 시간을 정해놓고 전체적으로 따는 사람이 절반을 반납, 잃은 사람이 되가져가는 별 제미는 없지만 그야말로 질서 정연한 고스톱을 즐기는데 그 중 부인 한 사람이 고스톱은 일종의 노름이라 점잖은 분들이 할 일이 아니니 그저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 정도로 짧게 게임을 마치라는 뜻으로
“자. 이제 딱 30분만.”
해서 마칠 때가 되면 저처럼 아쉬움이 남은 사람이
“너무 오래만이니까 딱 먹기 세 판만 더.!”
하고 판수들 늘이는데 국민학교동창게임에는 조경제라는 친구는 저보다 더 고스톱을 즐겨
“그 먹기 세 판도 3점은 빼고 5점 이상으로 세 판!”
별별 이유로 판수를 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처럼 나이 들어 현실의 즐거움보다 지나간 날을 추억하는 일이 많아진 사람들은 그렇게 좀 억지스럽더라도 정든 친구들과 만남과 여러가지 게임, 사춘기적 문득 스쳐지나가던 또래 이성에게서 느끼던 그 황홀한 환상과 아직도 코끝에 맴도는 향기, 뭐 그런 것을 한두 판 더 늘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겠습니다.
여러분모두 아마 지금도 연애하던 시절의 가슴 울리던 만남과 그날의 음악과 들길에서 풍기던 꽃향기와 헤어지던 골목입구의 감미로운 음악의 여운(餘韻)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많이 젊던 시절, 술을 안 먹고 일찍 들어오면 어서 두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세수를 하고 들어오는 아내를 흘낏거리던 기억, 아주 편하고 당당하게 일상으로 즐겁던 그 하느님의 선물 성희(性戲)가 어느 새 회수가 틀어지고 판수가 뜸해져 이제는 다시는 판을 펼 엄두를 못 내고 그저 두 아이의 아비와 어미로 40년 넘게 동고동락한 전우애로서 마주 쳐다보는 이 허전함, 판수가 다 사라진 상실감을 어디다 비교할 수 있을까요?
사진 속의 담금주들은 제가 명촌리로 귀촌했을 때 네 명의 생질들이 인사차 한두 병 들고 오던 담금주로 대부분 간월산 깊은 계곡에서 딴 백수오, 말굽버섯, 개머루 같은 천연재료인데 그 중에는 가을에서 겨울까지 심마니처럼 영남알프스를 구석구석 누비는 생질의 친구가 특별히 가져온 것도 있습니다. 명촌리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데크에 얼씬거리던 마초가 잠이 든 숲속의 조그만 오두막을 앞쪽의 솔밭과 뒤쪽의 대밭에서 거친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마초할배는 언양장 그릇집에서 산 작은 국자를 <술국자>삼아 자 담금주들을 소주컵으로 한두 잔 따라 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제 40년 공직생활의 스트레스와 주독(酒毒), 근간 집을 지으면서 받은 무한대의 스트레스에 지친 제가 급성 간암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약 한달 만에 돌아왔을 때입니다. 거실 뒷벽에 나란히 놓인 저 담금주 병들을 보고 아내는 쳐다보기도 질린다며 당장 갖다 버리자고 했습니다만 저는 (암도 5년을 생존하면 통계적 완치로 친다고 했는데 내 어떻게든 다시 저 담금주를 친구들과 마실 날을 기다리고 살아남으리...)
술병으로 골병이 든 사람이 아직도 술병에 대한 미련이 남아 창고 깊숙이 그 술을 묻고 하루하루를 견디다 마침내 5년이 육박, 얼마 전 명촌별서를 방문한 한 애주가가 맛을 보고 간 적이 있습니다. 이미 술판의 기회가 다 끝난 술꾼, 단 한 판의 술판도 남아있지 않은 백수광인(白鬚狂人, 이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 나오는 노인의 호칭)에게 저 담금주 병들은 무슨 의미가 될까요?
원래의 제 계획은 제가 5년 생존에 성공하는 날 가까운 지인들 여남은 명을 불러 한쪽에는 술판도 벌이고 한 쪽에는 고스톱판도 벌이다 판이 무르익으면 한두 명 기타를 칠 줄 아는 내방객의 반주로 등말리 달빛음악회를 한 번 열까 했는데 코로나19가 그 모든 꿈을 앗아가 자식도 일부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만 있다면 그리고 무엇인가 추억할 수 있다면 판수는 법조문처럼 엄숙한 것이 아니라 아직 남은 꿈의 부스러기나 여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집안일이라도 5인이상이 모일 수 없는 이 시절, 단 한두 명이라도 다정한 글벗, 옛날의 술벗, 고스톱의 광을 팔아주던 다정한 친구들이 제 집을 방문하면 비록 급하게 안주가 마련 안 되어 김장김치를 썰고 누님집 청계와 오골계 달걀을 지져 한두 잔 저 담금주를 대접하며 제가 으뜸술꾼이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들을 보낸 뒤 모처럼 서정시를 한 편 구상해보겠습니다. 생각할수록 이제 조금 밖에 남지 않은 나의 판(板)수, 그 마지막 한두 판을 함께할 친구와 지인 포토에세이 독자들과의 아주 적은 판수를 기다려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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