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진 요즈음은 <어깨동무>가 사라진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옛날의 축제나 굿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세시풍속, 즉 학교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나 차전놀이, 기마전등의 입장에 잠시 어깨동무형태의 자세나 행진을 볼 수 있지만 게임이 끝나 한쪽이 이기면 저도 모르게 북을 둥둥 울리며 도약을 하는데 그 때 열심히 싸웠던 선두의 주전요원이나 옆에 있는 전우들끼리 몇 명씩 어깨동무형태로 빙빙돌며 “...야야, 야야, 꽃가지를 꺾어들고 소 멕이는 아가씨야...” <아리랑목동>을 부르면서 젊음을 발산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 이릴 적 추억인데 해마다 8월15일 광복절이 되면 면사무소소재지 작하마을 <중남국민학교>에서 <8.15기념14개 마을 부락대항 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마산이니 가천이니 방기니 수남이니 마을이 크고 100석지기 농가나 과수원이 많은 부촌에는 선수들의 유니폼과 축구화를 갖추고 며칠이나 연습을 하며 당일날 수많은 주민들이 각각 마을 풍물패를 앞세워 입장하면 국민학교 울타리에 몇 개의 노점이 들어설 정도로 면단위의 큰 행사였습니다.
우리마을 평리(버든)은 면소재지에서 제일 먼 언양권(학교도언양초등을 다녔음)으로 마을자체가 빈촌이라 축구공하나를 살 형편이 안 되어 매번 당시의 중고등학생에 이제 군에서 갓 제대한 젊은이들이 출전하고 마을이장이 자동으로 감독에 코치와 주무를 다 했는데 유니폼이 없어 각양각색의 옷에 러닝의 등에만 각자 숫자를 새긴 우리 선수는 단 한 게임을 이기거나 골을 넣는 경우가 좀체 없었습니다. 보통 한 7:0으로 깨어진 우리의 선수단은 그야말로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면서 방금 우리를 이긴 마을에서 농기를 펄펄 휘날리며 풍악을 놀면 신이 난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목동>을 부르는 것을 한참 구경하다 마을이장이 사주는 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10리길을 걸어왔는데 제 어릴 때 5, 6회, 40대에 한 번 그 대회를 갔지만 여지껏 우리 마을이 이겼다는 게임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 <어깨동무>를 잘 활용한 예,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두통베개>입니다. <두통베개>는 지금의 기다란 쿠션 정도의 길이에 속을 단단하게 채운 둥근 베개로 화촉동방의 신랑각시가 나란히 배고 자는 배개입니다. 부부의 금슬을 위해 양가 모서리에는 언제나 암수 한 쌍의 닭이 병아리를 너덧 마리 거느린 수를 붙였으며 베개 모에도 장미나 모란을 수놓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두통베개>가 매우 유용한 것은 대부분 중매로 만나 아직 제대로 신랑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지 못한 각시가 일단 자리에 누우면 자동적으로 어깨동무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초저녁에 처가집안 청년들과 꽤나 오래 술을 마셔 얼큰히 취한 신랑이 지금 문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 기다리면 문구멍을 뚫을 기세에 고무되어 바로 옆, 숨소리와 머리냄새가 훤한 새 각시의 고개를 들고 족두리를 벗기고 속적삼, 겉적삼을 벗겨내리고... 뭐 그러다 보면 새 아기도 태어나고 그 아기가 자라면 또 그런 <두통베개>를 만들어 새 가정을 이루고... 요즘 같은 인구감소의 시대에 꼭 부활시켜야할 침구 같기도 합니다.
그 소중한 <두통베개>가 사라져 그런지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자녀가 없는 가정과 섹스리스의 가정을 발견하곤 합니다. 가뜩이나 만혼을 하는데다 천천히 신혼을 즐긴다는 것이 평생 아이가 안 생겨 다 늦어 병원에 찾아가 인공수정으로 쌍둥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흔이 넘어도 직장에 자리를 잡지 못한 셀러리맨이 한두 번 술에 젖어 거실이나 서재에 뻗어버리다 어느 날 문득 아내와 합방한지 한참이 되고 그러다 권태기가 오고 갱년기가 오고...
우리처럼 한 일흔쯤 되는 부부는 그 <두통베개>란 소리만 들어도 몹시 그립고 가슴이 뛰게 됩니다. 내게도 사실은 부부가 서로 살 냄새와 땀 냄새, 머리냄새를 맡으며 정을 나누던 그런 젊은 밤이 많았는데 어느 새 머나먼 행성이 되어 서로 마주 보기만 하는고 다가설 염을 못 내는 부부...
그런데 지난 연말 제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무릎이 약해져 앉고 일어서기가 힘들어 침대를 한 사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저는 왼쪽에 침대에, 아내는 오른쪽 파우치란 좀 좁은 소파 겸 침대에 누워 자는데 파우치가 좁은 감이 있어 요즘 아내가 거실바닥으로 내려오니 졸지에 한 50cm를 사아에 두고 나란히 누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아내와 시간을 같이 보내기 위해 요일에 관계없이 하루 한 차례 꼭 KBS의 연속극을 한 차례씩 보는데 어는 순간 카, 소리가 나면서 아내가 가볍게 코를 골다가 잠이 들면 슬며시 이불을 덮어주곤 합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오줌이 마렵든지 등이 뜨겁든지 뭔가 좀 불편한 시간에는 갑자기 후, 하는 아내의 숨소리에 안심을 하면서 다시 잠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은 화장실에 갔던 아내가 살며시 제 이마를 만져보고 이불을 덮어주는데 이미 잠이 깨어있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맛을 즐길 때도 있습니다. 침대를 하나 사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마치 새로 <두통베개>를 베는 것처럼 서로가 친숙함을 느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두통베개>, 그 참 훌륭한 발명품인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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