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31)암 투병 5년, 간암 완치 판정

말년일기 제1232호(2021.1.31)

이득수 승인 2021.01.30 20:19 | 최종 수정 2021.02.02 01:59 의견 0
사진1. 5년간을 살아남은 자와 5년간을 간병한 자, 아내의 젊은 날
젊은 시절 아내와 필자

며칠 전 울주군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 항암기간이 5년에 도달해 법적 또는 통계적 완치기준을 마감, 건강공단에서 95%지급하던 의료비를 일반인과 똑 같이 환원한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제 몸은 아직 만신창이이지만 보험측면에서는 완치라는 것입니다. 대신 아직도 치료가 종결되지 않은 사람은 의료기간에서 재신청해서 다시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고...

창망 중에 병을 얻어 대수술을 하고 퇴원했을 때 제 막내누님이 아내를 보더니

“우짜겠노? 월깨야, 인자 우리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자.”

하고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고(그건 언양바닥5남매에서 저를 포기한 것) 제 보다 열 살이 많은 막대자영은 젊은 사람이 예의도 없이 자영보다 먼저 병을 앓는다고 힐책을 하면서도 눈빛에 애련함이 가득했는데 그 자영이 돌아가신지 벌써 3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가까운 친지 하나가 암 종류별 5개년 생존확률 중 제가 걸린 간암이 맨 아래서 두 번째로 생존율이 약 9%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퇴원당시 집도의의 말대로 아무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많이 자고 부지런히 산책하며 컨디션을 조절해 좋을 때 하루 세 번 정도 대하소설 <신불산>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제 거실에 아직도 남아있는 담금주 5병(대부분 이웃의 생질들이 선물로 준 것임)을 창고 깊숙이 감추며 
(내 이제 다시 술을 먹기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5년을 버텨 정든 친구들과 5년 생존의 건배를 들어야지.)

정말 어림없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후 갈비뼈에 전이가 되어 갈비뼈 3개를 떼 내는 수술을 하자 1차 집도의 최 박사가 
(뭐 수술은 간단합니다. 간혹 갈비뼈를 자르고도 괜찮은 수도 있고.)

볼펜을 뱅뱅 돌리며 저와 눈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 액면대로 잘만 하면 나는 또 살 수 있구나 생각했는데 백병원에 근무하는 지인의 사위가 제 가슴사진을 보고 

“이 아저씨는 이제 큰일 났습니다.”

단정하고 다시는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아내와 아이들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까지 갈비뼈를 떼어내고도 살아있는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아무튼 그 후로도 수시로 이젠 파국(破局)이라는 진단과 함께 방사선치료1회, 약물과 주사로 3년을 버티는 사이 이제 건강보험 적용약품이 안 되어 월 300만원이 들어가는 고가의 주사와 신약까지 모두 고갈, 더는 현대의학에서 어떤 조력도 받을 수 없이 치료효과보다 부작용이 심한 마지막 약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무려 5년 동안 이런저런 항암부작용을 벗어나니 우선은 밥도 좀 먹히고 잠도 좀 자고 얼굴도 다시 멀쩡해졌습니다. 비로소 현대의학의 범위에서 벗어난 자유인(自由人)인이 되었지만 이제 나 혼자 늙은 낙타처럼 여생이란 사막을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사진2. 지난 5년간 명촌리의 들길을 함께 한 자, 마초의 근황.       
지난 5년간 명촌리의 들길을 함께 한 자, 마초의 근황.       

그 후 저는 온몸에 간암이 전이되면 약3%만 생존한다는 확률도 알아내었습니다. 그 생존자에 속하는 저는 고3 입시생으로 치면 항암내신 1등급을 받은 셈이라 어쩌면 여태 살아있는 것도 대단한 성공에 축복이라 나름대로 자부심을 세워 앞으로는 더 의연히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다 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누구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겠지만 저도 참 많은 번민을 했고 어쨌거나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심지어 상태가 많이 나쁠 때 제 식솔 다 거느리고 제주도에 이별여행을 다녀온 지가 3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해양문학상>의 대상도 받고 포토에세이집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를 펴내고 대하소설 <신불산>도 완료하고 교정 중에 있으니 역시 살아남은 자의 보너스를 엄청 받은 것 같습니다. 처음 수술을 하고 나서 주박사가 길어야 한 6개월에서 1년을 산다고 더는 어떤 일도 벌이지 말고 마무리를 잘 하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는데 그렇다면 저는 노련한 외과의가 단정한 단절을 생사의 절벽을 넘어 2017년에서 2020년까지 4년간의 보너스를 받았고 지금도 매일아침 축복 속에 눈을 뜨는 셈입니다.

남아있는 시간만큼은 그냥 무심히 마초를 벗하여 명촌리 들길이나 슬슬 걸어 다니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언젠가 결정적 순간이 오면 내신1등급의 자존심을 살려 험한 모습 안보이고 담담하게 맞아야 될 텐데 그게 실제로 잘 될지 걱정입니다. 한편으로 돌아가신 제 큰누님이 간암이 결려 이제 곧 죽는다고 우리 6남매가 1박2일 쫑파티를 하고나서 누님이 3년이나 더 빈집을 지키며 산 것으로 보아 제게도 아직 한두 해 유예기간이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생태리듬의 변화 없이 <신불산>교정도 박차를 가하고 <포토에세이>도 꾸준히 써나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애써 보관한 담금주는 요즘 코로나19로 어떤 행사나 만남도 불가한 만큼, 우연히 또는 특별히 한두 명 방문하시는 분이 있으면 시식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5년 내내 간병해준 아내와 가족들, 교회와 성당과 절에 갈 때마다, 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날마다 제 건강을 빌어준 10여명의 친지와 독자여러분, 특히 <미인천하>동아리에도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저는 참으로 행운이 많은 사람인 것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