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15) 아편전쟁과 토착왜구

조송원 기자 승인 2021.11.23 11:12 | 최종 수정 2021.11.25 10:37 의견 0

오늘날 시각에서는 이상해 보이지만, 근대 초기에는 민간회사가 병사뿐 아니라 장군과 제독을 고용하고, 대포와 함선을 구매하고, 심지어는 체제를 갖춘 기성품 군대도 고용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당연시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를 200년 가까이 통치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1800년이 되어서야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떠맡았다. 인도를 정복한 것도 영국 정부가 아니라 영국 동인도회사의 용병들이었다.

청나라와 무역을 독점한 주체도 영국 정부가 아니라 영국의 동인도회사였다. 이 회사는 인도를 정복하는 데 막대한 부채를 졌다. 이 부채를 영국의 자본과 인도의 면화와 청의 은銀을 이용한 삼각무역을 통해서 돌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자 영국 시장은 침체되었고, 청은 가정에서 면화를 생산하게 되면서 인도 면화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이리하여 동인도회사는 막대한 적자를 보게 되었다. 더욱이 중국의 차茶가 선풍적 인기를 끌어, 영국 가정은 월수입 중 5%를 차를 구매하는 데 쓸 정도였다. 그러자 영국이 한 해에 중국에 지출되는 은은 무려 2만8000t에 달했다. 막대한 무역 역조인 것이다.

아편 채취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아편 무역이다. 동인도회사와 잡다한 영국 사업가들은 인도의 벵골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수입하여 청으로 수출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1830년대 말 당연히 중국 정부는 마약거래를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영국의 마약 카르텔은 법을 완전히 무시했다. 중국 당국은 배에 실려 있는 마약을 압류해 파괴했다.

마약카르텔은 영국 정부와 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각료와 의원들이 마약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정부에게 행동에 나서라고는 압력을 넣었다. 이에 따라 1840년 영국은 ‘자유무역’이라는 명목으로 중국에게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아편전쟁의 발발한 것이다. 이 전쟁의 전개양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어 생략한다. 다만, 중국이 최신식 영국군함의 대포에 대응한, 참담한 방식에 대한 에피소드는 짚어야겠다.

교전 중에 청국과 영국은 종전 조건에 대한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청 조정의 대표로서는 임칙서에서 기선으로, 그 다음에는 정역장군(靖逆將軍) 혁산(奕山, 강희제의 6대손)이 맡게 되었다. 그는 영국군을 주술로써 대응하려 했다. 영국군의 포격이 너무나 정확한 것은 적진에 영묘한 신통력을 가진 주술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신통력을 없애기 방법을 강구했다. 곧, 근처의 민가에서 부인의 변기를 모아 뚜껑을 열어 주둥이를 모두 영국 군함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효험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남경조약으로 이 전쟁은 결말이 났다. 중국은 영국 마약상의 활동을 제약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당국이 불태운 마약 값도 물어줬다. 홍콩까지 넘겨주었다. 그 결과 19세기 말 중국 인구의 10분의 1에 이르는 약 4천만 명이 마약 중독자가 되었다.

이 ‘더럽고 추악한 전쟁’에 대한 서양의 역사 서술이 궁금했다. 1960년 미국에서 출간한 크레인 브린튼 외 2인이 공저한 『세계문화사』(1963, 을유출판사 번역)에는 아편전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영국은 1841년 불유쾌한 것이기는 하나 결코 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아편전쟁」을 감행하여 외국인을 봉쇄하려는 중국의 기도를 파괴하는 데 중요한 일보를 내디뎠다. 이 전쟁은 당시 영국상인들과 이해관계가 큰 아편무역을 중국이 통제하려고 기도할 때 발생했다. 1842년 남경조약에서 영국은 홍콩을 획득하고, 광동과 상해를 포함하는 5개 항구의 개항을 보장받았다”.(밑줄은 필자)

존 그렌 빌은 1980년 영국에서 『20세기 세계사』를 출간했다. 1994년 이 책을 미국 하버대 출판부에서 출판했다. 혹 역사 서술에 진전이 있을까 싶어 이 책을 구입했다. 아편전쟁에 대한 기술은 짤막했다. 그 부분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서양은 중국에서 무역할 기회를 발견하고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영국은 「아편전쟁(1839-42)」을 일으켰고 중국은 영토(홍콩)를 할양했고 영국에 강제로 문호를 개방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 국민 4천만 명이나 마약중독자를 만든 아편전쟁에 대해 어떤 반성이나 역사해석은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 우리 학계 일부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일제의 한반도 병탄을 미화하기까지 한다. 윤석열은 지난 8월 4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관계의 왜곡이며 원전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폭로한 발언이다. ‘대통령으로서 준비는커녕 기본 자질이 안 돼 있는 것’(원희룡)이며, ‘일본 총리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정세균)고 할 정도로 일본 극우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2019년 일본이 수출규제를 감행했을 때, 우리의 일부 보수 정치인과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그들의 속마음은 문재인이 아베에게 머리를 조아려 일본에 굴복하라는 거였다. 그들이 일본을 사랑해서일까? 아니다. 개혁이 두려운 것이고, ‘지금 이대로’ 부당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소위 ‘잘 먹고 잘 살고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토착왜구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보장된다면 일본 극우와도 기꺼이 손을 잡는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를 참칭한 수구세력일 뿐이다. 국민이나 국익을 위한답시고 어떤 이데올로기로 포장했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이익’뿐이다.

이번 대선의 후보 중에 토착왜구의 선봉이 눈에 어른거린다.

<작가/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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