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 사장(대표이사)이 60대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일주일 휴가를 받았다. 휴가 첫날은 모처럼 친구들과 1차·2차·3차를 거치며 진탕 마셨다. 이튿날 느지막이 일어나 뜨뜻한 물에 몸을 푹 담갔다가, 해장국을 먹고 푹 쉬었다. 사흘째는 종일 안절부절못했다. 일하지 못하는 고통에 진종일 시달렸다. 회사일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괴롭고 긴 하루를 보내고는 나흘째는 작심하고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야 말았다. 몇 년 전 읽은 글의 내용이다. 죽어라 열심히 일했다는 자랑인지, ‘일하지 않을 능력’이 없음에 대한 회한인지 잘 모른다. 어느 쪽에 방점이 있을까?
몇 해 전 왕래가 뜸하던 친구가 찾아왔다. 빈손도 아니었다. 생뚱맞게 화장지 한 묶음을 대청마루에 부려놓았다. 단위농협 전무 출신이다. 조합장 선거에 출마한단다. 그러니 좀 도와 달란다. “30년 넘게 일했는데, 지겹지도 않나? 이제 쉬면서 노년 좀 즐기지 그래? 물러나서도 나부대는 건 민폐라고는 생각 안 해 봤어?” “친구야, 네가 일을 안 하니 몰라! 아참 미안, 네가 생판 노는 건 아니지. 여하튼 일하던 사람이 일 안 하는 고통이 얼마니 괴로운지 너는 모를 거다.” 그러나 말 뱉는 입과는 달리 그의 눈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퇴직하고 나니 존재감이 떨어져 미치겠다.’
우리는 어쩜 어느 한 순간이라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동물이다. 물론 움직이니까 동물이다. 하지만 이는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과 같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지, 이성적으로만 행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행동의 대부분은 감정이 결정한다. 판단이라는 것도 감정을 합리화하는 도구로서 이성을 사용한 결과일 뿐이다. 동물도 움직이기 위해서는 안 움직이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장자는 ‘좌망’(坐忘. Sitting in the forgetfulness)이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머릿속도 다 비우고, 제발 멍청히 좀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
군수 후보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방정부 고위 공무원 출신도 있고, 도의원도 있고, 성공한 토건업자도 있다. 적격 여부를 떠나, 도의원이나 토건업자의 욕망은 이해가 간다. 정치인이고, 명예에 배고픈 부자이니까. 마는, 고위 공무원 출신의 출마 저의에는 의문이 간다. 명예야 지방정부 국장이나 군수나 그게 그거다. 그러니 존재감, 영향력의 지속을 위한 수단으로 군수 직을 희망하는 게 아닐까? 자기 존재확인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지 못하고 외부의 타이틀에 연연한다. ‘일하지 않을 능력’이 부족한 권력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필부는 아닐는지.
개에게 사과를 준 윤석열 후보를 생각한다. 그는 검찰총장 재직 때 ‘직무 범위를 벗어난 부당행위’로 ‘직무정지’란 징계처분을 받았다. 국가형벌권을 집행하는 최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를 벗어난 행위를 했다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직무범위도 모르는, 혹은 직무범위를 무시하는 공무원은 동장과 면장은 물론 통장이나 이장의 자격에도 못 미친다. 아니나 다를까, 대선 출마 후 보인 무지막지한 언행에는 그의 인간 본바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12월 15일에는 ‘무지·무식 어록’에 하나를 더 보탰다. “시간강사라고 하는 것은 전공 이런 것을 봐서 공개 채용하는 게 아니다.”
2019년 196개 대학에서 비전임교원(겸임, 초빙을 포함한 시간강사)이 맡는 강의비율은 33%를 넘는다. 대학교육을 떠받치는 큰 기둥 중의 하나이다. 그들 대부분이 박사 학위 소지자이다. 곧,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도 거의 10년 이상을 더 공부한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교육 담당자를 공개채용도 하지 않고 ‘지인 찬스’를 통해 알음알음 연줄로 뽑는다?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대학교육에 무식하든지, 혹은 자신의 삶은 뒷배나 돈 혹은 권력으로 좌지우지해 왔다는 방증이다. 둘 다를 증명한다고 봄이 적확할 것 같다.
대통령이 반드시 모든 분야에 능통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특정부분에 무식하면,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겸손의 미덕이라도 갖춰야 한다. 남의 머리를 이용하려 해도,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머리는 있어야 한다. 사법시험을 통과해 검사를 했으니, 머리는 좋은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오해의 여지가 많다. 우선 임관 후 어떤 학습을 얼마나 했느냐가 문제다. 홍준표 의원의 말마따나 검사의 일은 대통령 직무의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통령의 직무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하고 얄팍한 게 아니다. 하 세월의 학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9수까지 뒷받침 받을 정도의 가정환경에서 5만여 명의 대학 시간강사가 법학을 전공했다면, 그들에게 사시는 은산철벽이 아닐 것이다. 사법시험은 뇌력腦力 측정의 잣대로서 별 신통치 못하다. 무식하니 아만에 가득 찬 고집불통, 그리고 건들거리는 골목대장 품새, 그가 대통령이란 칼을 쥐게 되면, 그 칼을 어떻게 휘두를까?
<작가 / 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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