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21) 사랑과 미움
조송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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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2 05:39 | 최종 수정 2021.12.2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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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그것과 반대되는, 그리고 억제되어야 할 그 감정보다 더 강력한 어떤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면, 억제될 수도 없고, 제거될 수도 없다.”
사랑과 미움의 정념은 그 뿌리가 같다. 하여 사랑과 미움의 감정은 쉬이 서로 넘나든다. 사랑에서 시작해 미움으로 끝나는 인간관계를 스스로 경험하기도 하고 목격하기도 한다. 이것이 모순일까? 어떻게 어제 사랑했다고 하면서 오늘 미워할 수 있을까?
앞의 인용문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나오는 말이다. 사랑의 아픔을 제압할 수 있는 감정은 미움밖에 없는 것 아닐까? 물론 미워함은 성숙한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애당초 사랑이란 정념도 미숙한 감정이 아니던가! 미움이란 상대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사랑의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보호 본능’의 발로이다. 어제의 사랑 감정이 진정이 아니었다는 각성이 들면, 미워하는 게 아니라 무관심해진다.
熱無過婬(열무과음) 뜨겁기는 애욕보다 더한 것이 없고
毒無過怒(독무과노) 독하기는 성냄보다 더한 것이 없다.
苦無過身(고무과신) 괴롭기는 몸보다 더한 것이 없고
樂無過滅(낙무과멸) 즐겁기는 적멸보다 더한 것이 없다.
『법구경』의 「안녕품」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삶에서 한때이든 지속적이든 간에 사랑보다 더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정념이 있을까? 그러나 그 뜨거움이 사랑의 성취로서 식혀지는 경우는 드물다. 강력한 정념의 불길은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죄다 불살라버린다. 그러므로 살아남기 위해 미워해야 한다. 하여 우리의 삶은 누구를 사랑하며 불타고, 미움으로 그 불길을 잡고, 또 누구의 사랑을 갈구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건 아닐는지.
사랑과 미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사랑을 하는 한 미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니 마음의 평화, 안식은 없다. 이 사랑과 미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즐겁기는 적멸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곧, 모든 정념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이 ‘꺼진 재’가 되도록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뭇등걸이나 돌덩이가 아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에 저만치 비껴 서있는 수행자일 수도 없다.
바닷가에 서 있다. 파도가 밀려온다. 그 파도를 잡아두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파도는 부셔지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또 밀려오고 또 사라진다. 아무리 잡아두려 해도 보람 없는 일이다. 파도의 오고감은 본시 덧없다. 우리가 이 덧없음을 직시한다면, 파도를 붙잡아두려는 헛수고로 몸과 마음을 괴롭히진 않을 것이다. 그냥 모래밭에 퍼질러 앉아 파도가 밀려오든 밀려가든 그대로 놔둘 뿐이다.
사랑의 파도가 밀려온다. 즐겁다. 그러나 덧없다. 사랑의 파도가 밀려간다. 미워한다. 이 또한 덧없다. 마음의 바닷가에 수많은 사랑의 파도가 밀려오고, 미움의 파도가 밀려간다. 덧없다. 그러나 덧없는 삶에서 그래도 사는가시피 살 수 있는 것은, 사랑과 미움의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감에 있지는 않을는지. 하여 굳이 마음을 ‘꺼진 재’로 만들 필요야 있겠는가.
<작가/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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