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추천시인 수상소감】 날씨를 쓰지 말고 비를 살아라 - 정유미

장소시학 승인 2023.02.07 17:39 | 최종 수정 2023.02.07 17:54 의견 0

수상 소감
 

날씨를 쓰지 말고 비를 살아라


정 유 미

 

지금을 쓰란 거죠? 딴소리 말고
근데 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로터리가 빙빙 CU 세워 물어볼까
우체국 새마을금고 빵 굽는 마을
누구지 누구였더라
이 손 이 브레이크 이 이 악셀
브레이크는 오른 왼 
아 밟은 발이 브레이크지
생각났습니다 
주유소 가던 길이었어요
기름이 하루는 뚝 떨어져 도로 위에 섰어요
큰길이었으면 아악 
구급차 두 대 버스가 한 대 승용차 줄줄줄
구름이 바람이 멈춰요
나 어디 여긴 누구
지금은 써질까요?
화면이다. 허옇다. 저기 알알이 박아넣을 나여. 

고단하던 스물아홉 사월이었다. 축협 뒤편 전통 찻집 ‘아랫목’에 들었다. 김숙희 시인의 「점등산 이야기」 시화가 걸려있던 합천문학회 아지트 아랫목, 얼마 후 찻집 주인이자 시인으로부터 회원 가입 권유를 받았고 별 고민 없이 회원이 되어 첫 습작시를 『합천문학』 5호에 실었다. 이듬해 6호는 그런대로 써보았는데 이후로는 연간지 마감을 앞두고서야 후다닥 써내고 다시 보지 않는 짓을 거푸 했다. 왜 그랬는지 묻지 마라. 회원이라 의무라 내야 한다니 내고 살아야 해서 살았다.

회원 15년 차 가을에 경남문협이 주관하는 ‘2011경남문학 공모전’에 시 「부드러움에 대하여」가 당선되었다. 문학판에 내밀만한 명함 한 장 없이 사무국장 업무 보던 차에 등단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고 공모전을 두드린 성과였다. 심사평에서 성급한 마무리를 말하며 그해 도착한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약하고 그나마 정유미가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뒤를 볼 만한 사람이다 싶어 선택했으니 열심히 정진 하라는 당부를 보던 기억. 뜨겁게 부끄러웠다. 

「드문드문 당신」과 「떠도는 집」은 등단 직후 쓴 작품인데 2012년 『경남문학』 봄호에 ‘지난 계절 다시 읽고 싶은 시’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칭찬해 주길래 혹해서 좀 쓰는 줄 알았다. 흉낸지 내가 들어 있기나 한 건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나 또한 질문하지 않았다. 

11년간 실무자로 크작은 행사에 매달려 왔는데 2019년 문협 정기총회에서 일이 좀 있었다. 길 가다 난데없이 뺨을 얻어맞은 듯 억울하고 아팠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똑띠 시 만나라고 생긴 일 같아서 되려 고맙다. 그로부터 얼마 후 후배가 마산 경남대학교에 시 강좌가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 했다. 여러 개설된 시 강좌 중 나을 거 같다고 했다.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엉뚱 소리 말고 너의 유치와 너의 딛고 있는 삶과 땅을 쓰는 그것이 시라고 하셨다. 고향을 내 것으로 만들라고 하셨다. 내 것이 세면 세계가 흔들린다. 독서 체험을 이겨내야 한다고도 하셨다. 많이 보고 천천히 몸속 기억을 내 말씨로 생활로 만들어야 된다고 하셨다. 작가적 태도를 갖춘 제대로 된 작가 만나기 어렵더라. 고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다. 
뿌리 박힌 게으름과 거친 습관을 어쩌지 못해 수업 오가며 2년을 빌빌거렸다. 지지부진 늘어져 있던 글 고치기 백 번 요청에 혼돈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으나 거울을 보면 어떤 날은 유난히 맑은 얼굴도 있었다. 내 시에 피가 돌고 살이 해를 먹어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림자도 생겼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 자라고 있구나 싶어 좋았다. 

작년에 『장소시학』 창간호가 나왔다. 의령 구자순 시인이 창간호 신인 추천을 받았다. 언젠가 열심히 쓰는 날에 좋은 시로 재등단을 하리란 생각이 있었는데 『장소시학』 창간호를 보자마자 내 시의 진짜 시작은 여기다 싶었다. 엉뚱 소리 않고 두 다리로 세차게 뛰보고 싶었다. 의논드렸다. 이미 문학사회에 이름 알려진 사람이 그러는 이유가 뭐냐 물으셨다. 그땐 남들처럼 등단이란 절차였다면 지금은 시를 쓰고 싶고 경남시인회에 폐가 되지 않는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생각해 보자고 하시곤 답을 안 주셔서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두어 달 지난 어느 날 준비해 보라고 하셨다. 기쁜데 기뻐할 수가 없었다. 노트 속 시들이 기울기울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낯선 그림 앞에 멈추게 된다. 마음의 천만 갈피와 다 하지 못한 울음을 시로 그려가고 싶다. 시야 온나 시 말고 몸에 몸 으으.

 

정유미 해적이

1968년 (1살) 부산시 영도구 신선 1가 323번지에서 태어나다. 아버지 정재환, 어머니 조복선. 양력으로 69년 1월 21일, 음력으로는 68년 12월 4일인데 아버지께서 음양력을 뒤섞어 68년 1월            21일로 출생신고 하시다. 부모님이 가장 좋았던 시절에 태어났고 위로 오빠와 세 딸 중 첫째 딸이다.
1973년 (6살) 부산 영도초등학교를 양력으로 치면 6살에 입학. 아버지께서 또래보다 적은 나이에 제법 숫자며 글자를 익힌다고 기특해 하시다. 
1976년 (9살) 서울 금화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외가인 율곡면 와리로 내려와 합천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다. 이듬해 봄 율곡초등학교 4학년으로 전학하다. 
1980년 (13살) 여동생 둘과 생선 장사 가신 엄마 마중 다니며 중학생(합천여자중학교)이 되다. 
1981년 (14살) 늦여름에 남동생 태희 저세상 떠나다.
1983년 (16살) 고등학교 보내준다고 해서 따라간 외사촌 언니의 부산 섬유공장. 한 달 만에 울면서 집에 돌아오다. 
1984년 (17살) 대구 상서여상 입학. 이현동 언덕배기 경한상사에서 3교대 근무하며 학교와 일터를 오가다.
1985년 (18살) 추석 열흘 지난 새벽 4시, 아버지 돌아가시다. 장지는 율곡 와리.
1987년 (20살) 대구 明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경리업무 보며 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공부는 뒷전이던 날에 선배 따라 『시와 반시』 문학동아리에 놀러 갔다가 알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히다. 시집을 사기 시작하고 시를 필사하며 손끝으로 시를 만나다. 
1996년 (29살) 합천문학회 입회. 김숙희 시인을 만나 습작을 시작하다.  
2007년 (40살) 합천문협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다 .(11년간)
2011년 (44살) 경남문협 주관 ‘2011 『경남문학』 신인상 공모전’ 시 부문에 시 「부드러움에 대하여」 당선. 경남문학관 시상식장에 리영성, 손국복 시인 동행. 남편 박인욱과 딸 율이의 축하를            받으며 당선의 기쁨을 만끽하다. 
2016년 (49살) 합천예총 사무국장으로 일하다.(2년간)
2019년 (51살)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봄학기 시창작 등록하다. 합천에서 마산으로 새벽마다 시외버스와 택시로 이동하며 좌절과 용기를 오가는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다. 
2021년 (54살) 시인이란 말이 부끄럽기 짝이 없던 날들에 좋은 시 쓸 수 있기를 열망하다. 학기 중 매주 목요일은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오전에는 ‘시창작’과 오후에는 ‘지역과문학실천’            두 강좌를 오가며 시를 놀다. 
2022년 (55살)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87학번으로 재입학. 높은 학점 받고 등록금 전액 면제에 즐거워하다. 8월, 남편 박인욱과 손자를 기다리는 나이가 아름다워 가끔 웃다.

 

※ 『장소시학』은 본지와 콘텐츠 제휴매체입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