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특집 : 의령 장소시】 성당고개 외 4편 - 구자순

장소시학 승인 2023.03.11 10:32 | 최종 수정 2023.03.13 10:58 의견 0

장소시

 

성당고개 외 4편

구 자 순

 

쇳소리 카랑카랑 등 말아 콕콕 쪼아대도 속엣 불 자지를 않아 호미 던져두고 넘어가는 고개 그 너머 고파 보였겠지 경자 언니는 얼굴 보이기만 하면 짬뽕 한 그릇 시키주까 하고 선걸음에 국물까지 다 마시고는 뒤도 안 보고 걸어 넘어가는 사십 분 

해거름 김장밭 땀 발발 
불은 젖 울음 흐르고
축대 높은 고함 
밥내 늦은 걸음 때린다


어버이날

요양병원 외할머니 헐거워진 입술 초장 뚝뚝 
한 도시락 갈라주고 남은 회는 냉장고에 넣어 둬라 하신다 
동생 용돈 챙겨드린다

강 건너 신산 본가 아버지는 오비로 허기를 채우시고
머릿수건 쓴 할머니 스친 듯
텃밭 취 머구 돈나물 뜯고 
소풀 뜯고
다섯 명 가서 네 상 받은 점심 밥값 동생 옥이가 낸다 

진양호 발치 친정집에서 참기름 깨소금 받아 나설 때
봉투 두 개 챙기는   
아버지 둘째 딸 옥이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견딘다  

패밀리 이름뿐인 패밀리에서 화이트 한 병 산다 
집 밑 강가에서 홀짝이다 
남강에 화이트를 풀고 내가 들어간다 
전화가 몸살을 앓는다  
19도를 만나면 깜빡깜빡 필름은 19센티 늘어지다가 찌익 찍


니가

촌에 딱 맞춤이다 해서 내 안에 대단한 게 있는 줄 알았다 빛과 소금같이 불쏘시개처럼 비새는 판잣집도 오손 도손 하는 
뿌리가 궁금해졌지 밀집모자 검정 고무신으로 담벼락에 기대섰는데 저물녘이 참 농사꾼으로 만들었다 맞춤이었다
마산에서 성당 마을까지 하루 두 번 들고나는 완행버스 주말마다 타고
밥하고 빨래하고 
모 심고 콩 타작하는 거
배웠다

니 같은 딸년 꼭 둘은 하시던 아부지 옴마 등 돌려 뻘구데기 동네를 치마 움켜잡고 까치발 했다 
 
방아 찧는 거 마구 치는 거 
비탈밭 멍에 매는 거 
강 이불 빨래 이는 거
해도 늘지를 않아
왜 나였느냐
밥 먹을 때 촌스럽더라고
탈탈 털지 않고 잘 먹더라고

그런 날 툇마루 기댄 달은 비 샌 벽지였다 


남강

큰비 내리면 하류동네는 사람살이도 하류가 된다
젖먹이를 맡겨 두고 배 얻어 타 미나리 오전 일을 마친다
젖이 흘러 점심 배에 몸을 싣는다  
4월 바람이 수박 하우스를 들어버리기도 해서
다시 건너가야 하는
성당 나루 남은 배 한 척 

큰물 지나는 강에 배 띄울 때는
성당둑 머리까지 가로 가로 간댕이를 짚고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버티며 한참을 치고 올라가 포물선을 그리며 노를 밀고 댕기며 저어야 한다
말뚝 줄 풀자
바로 떠내려간다 짚을 틈도 없이 어찌나 빠르고 힘이 쎈지 버틸 수가 없다

간댕이로 버티면 간댕이를 노로 버티면 노를 잡아먹는 
그 물은 잡식성이었다

낙동강으로 멀리는 부산으로 아니면 마산교 다리발까지 떠내려 간다
방법이 없다
배를 거머쥐고 앉는다 강에 왼손 집어넣는다 손바닥으로 젓는다 손가락 붙인다  
허연 거품으로 달려가는
강을 
찰박찰박 친다
가로 나가기 시작한다


15분 전

슬금슬금 기어와 밭 밑둥 갉는다 물러지는 수박 하우스 꼬르륵 거품 게어내면 남강 막사 살림살이나 수박 뜬 길 달리게 된다 두류산 쏟아지는 비 예보에 양수기 총출동 들이 들들들들들 한다 삽 골골 물꼬 막는다 모래포대 잠 쫓고 고랑에 물 들어서면 바가지로 퍼낸다 고함소리 터지면 나래비 트랙터 경운기 양수기 트륵트륵 탈탈탈 기어 올라간다
헤엄 칠 줄도 모르고 등 돌려 다른 삶도 생각할 수 없는
혼인 살이는 목까지 차올라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게 된다
그럴 때는
끌고라도 올라가야 한다 

구자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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