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특집 : 의령 장소시】 한우산 외 4편 - 김영화

장소시학 승인 2023.03.10 15:25 | 최종 수정 2023.03.11 10:47 의견 0

장소시

 

한우산 외 4편

김 영 화

 

바람 많아 바람개비 산 꼬리 잡고
쇠목재 넘어 시집 온 쇠목 아지메 
저 무전다리까지 웅웅 우는 구월
억새 길 굽어보는 소나무는 곱사등
살 오른 뱀 느릿느릿 바위틈 휘돌아 가면
침목 계단 아래 물봉선 빼꼼 고개 내민다


저마다 봄

삼월 끝날 버들강아지 실눈 껌뻑이고
대곡천 도랑도랑 양 갈래로 머리 풀고
제비꽃 민들레는 땅따먹기 놀이 
복사꽃 오므린 입 삐죽 
보리밭 마늘밭 가장자리 고사리 기지개 켜는데
언덕 비알 외늙은이 가랑가랑 쇠스랑 긁는다
퇴각하던 인민군 서넛 묻어줬다던  
적포나루 쪽 밭고랑에도
양수기로 퍼 올린 논물 찰랑거리고
해마다 큰물 들면 옥수수대 하나 못 건지던 들
경지정리로 멀끔한 사각 도형 옥토 씨 받을 태세다
거뭇거뭇 살찐 독수리 열댓 마리
액비 뿌린 논 죽은 송아지 살점인지
식탐으로 해 넘는 줄 모르는데 
성마른 고라니 한 마리
재빠르게 논 질러 둑방 차고 오른다 


남산

한 무리 사람들이 잘 깎은 고분을 앞질렀다 속 빈 널방 차고 끼었을 유물 도굴로 사라지고 딸린 무덤 껴묻거리 토기만 건졌다는 표지판 덩그렇다 때 이른 찬 서리에 널길 드나들 듯 발자국 어지럽게 패인 흔적들 멧돼지 사신인가 시나브로 꺼풀 벗다 보면 한갓진 풍경이다 의병축전 열리면 차전놀이 농악대 가장행렬에 구슬 족두리 쓰고 뒤따르던 어린 날 물멀미로 지켜보았을 산 묻힌 함성들 어린 편백 계획 산림으로 자라는 둘레길 오래 앓던 친구는 동구길 들 듯 날쌔게 오르내리던 중턱에서 읍내 향해 깊은 잠 들었다 심리학은 밤새 새로 난 길 같아서 어디서 머물고 있을지 알 길 없고 남산은 아직 어둔 눈 있어 대숲 저물도록 옆구리 긁적인다 

 

서원 가는 길

지정 오천리 
기강서원보다 먼저 맞는 집
한지 문풍지 창살에 녹슨 문고리 배목 
굳게 잠근 새 자물통이 무색하게 살림살이 마루에서 축담까지 어지럽다
쫓기듯 부려놓은 짐일까 원목 옷장 서랍장이 한 벌
책장은 빛바랜 가화만사성 액자 아래까지 닿아 있다
어지럽게 뒤섞인 물장화 노란 운반상자, 기둥에 매달린 흙 바지
오전 오후 다른 시계가 나란하다
경청 창업신화 진로백서 대박나는 땅 투자법에서 say no까지 
널 뛰듯 치고 빠지는 대박 신화를 꿈 꿨던 걸까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 이운용 장군 혼이 이웃 서원에서
혀를 끌끌 찰까 영문을 모를까 찾는 후손은 대개 성공한 이들이니
세속적으로 혹은 공식적으로 


의령 장날

포장상자 덮개 아래
토끼 다섯 마리 한 곳에 머리 박고
오렌지 하우스 문패 단
누렁이 넷 흰둥이 둘 서로 팔베개
뚫린 쇠창살에 장닭 세 마리 
엉덩이 들고 먹이 쪼고
중병아리 스물 마리쯤 눈 뜨고 졸고
토종 오리 십여 마리 목 쳐들고
그 옆에 슬리퍼에 엑스 자 다리 꼬고 
부채질 새 빗자루로 연신 비질하는 내외
모두 나른한
유월도 오후 두 시
이별이 무사히 건너가고 있다
오늘도 

김영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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