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특집 : 의령 장소시】 촌 1 외 5편 - 조순

장소시학 승인 2023.03.03 16:02 | 최종 수정 2023.03.04 11:38 의견 0

의령 장소시

 

1 외 5편

조  순

 

달력에 가을이 왔기에
갑자기 흙내가 부르길래
버스로 세 시간의 고향길을 갔다

일정때 뚫린 길
사철 연막 치는
먼짓길을 차는 달리고 있다
논두렁 풀섶 길을 덮는
황금 물결을
어린 꿈 속 길을 
찾아 갔으나 그리도 많던
메뚜기 한 마리도 반기지 않았다

붓도랑 맑은 물에
해를 빠뜨리던
미꾸라지 붕어 새끼
피라미 한마리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밀서리 콩서리
콩잎 타는 연기
그림처럼 솟고
동심은 타는데
어린 그 냄새는 없었다

숨어버린 흙내
밭언덕 논두렁
남밭 돌감나무 밑에도
뒷간의 구린내도
어린 촌 냄새는 없었다

수입쌀 장리 먹고
야구하는 브라운관이
촌방을 쳐들어온 날로
초가 삼간 흙내는
마을을 떠나고
옛날로 숨어버려

스레트 지붕 위의
박이
식은 땀을 흘리면서
미끄럼을 타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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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촌』, 태화출판사, 1983, 12-13쪽. 

 

촌 2

불현듯
고향이 날 부르기에
버스 타고
산이 하늘 노릇하는 마을로 갔다

귀신같은 큰 집 툇마루
놀 속에 놀고 계시던
하얀 노인네들 내 고함 소리를
먼 암산 바라보듯 듣고 계셨다
버림 받은 노인네들
도시에서 쫓겨
지금은 헌옷처럼 편안한 고향 집에서
적막도 비어 있는
햇살을 받고 계셨다

문전 옥답 넘기고
눈물 팔아 공부시켜 장가 보낸 자식들
도시에게 다 빼앗기고
외톨박이 밤인양
밥에 뉘처럼 내뱉기어 주소도 없었다
하얀 노인네들이 모여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해도 잊어버린 마을
산이 하늘 노릇하는 마을
귀신같은 큰 집 툇마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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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촌』, 16-18쪽. 

 

아버지의 환후

돌배꽃도 이울고
이지러진 보리밭
풋보리도 울고 있습니다

시름하는 강물 따라
피라미도 여위고 있습니다.
전쟁이 쉬던 날
귀환하든 아들을 대하고도
단풍잎 하나 지지 않던 아버지

지금은 
모질게 앓으시고
헛소리도 하시는
가쁜 숨소리
내 장차 속 돌로 굳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항아리도 비었고
학도 날지 않았습니다.
소쩍새만 간간이 피를 토하고 있습니다

못난 자식들
남루한 지도처럼 둘러앉아서
아버지의 고르지 못한 숨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자식들 위한 아픔
한의 평생 그 역사를 쌓으신 아버지

햇빛이 고개를 돌리는
서창西窓을 보시고
검은 그림자가 자리를 펴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또 어디로 팡개쳐져야 합니까
아버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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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촌』, 36-39쪽.  

 

덕다리를 지나면서

진주에서 대곡大谷 설매리雪梅里를 지나
의령 땅 화정면 덕다리
지금은 상정리上井里로 정기 버스가 통한다
우리 어릴 적 고향길은
덕다리에서 내려 3 마장을 걸었다
그때 덕다리에 내리면 풀잎도 부끄러워
내 친구 강성률姜聲律을 찾아
사막의 갈증을 축이고
달빛을 앓는 고향을 갔었다
아낙의 허벅지같은 산자락
시달린 세월 누운 듯 서 있는
노송 숲 틈에
솟을 대문 어깨 위로
강 참봉姜參奉 기침 소리 기왓장 이끼로 돋아
범백凡百이 소문난 집 앞을
실개천이 속삭이듯 흐르고 있다
내 친구 자당 님 청아한 창락 부인
햇살같은 목소리
여름에도 엿유와 맑은 술로
사랑을 지키던 덕다리 그 집
우리는 맥貘
괴테의 성을 헐고
귀를 벤 반 고호의 수염을 깎고
골키에 빠졌던 시절

구름도 쉬고 있는
덕다리 그 집 앞 소나무 그늘에는
낯선 아이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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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눈물 씻은 눈으로』, 38-39쪽.

 

어디로 갈까

바람도 밀어내고
구름도 오지 말라
비를 뿌리고
산도 돌아앉는 고향의 몸짓

아무것도 옛것은 없었고
사람들은 낯이 설고
냉수도 목구멍을 거역하는
고향 물은 아니었다

어머니 산소로 가는 길에
할미꽃도 고개 돌리고
산새들도 겁을 내어 울다가 그친다

한잔의 막걸리로 시름을 달래는데
주막집 삽살개가 한사코
나를 쫓아낸다

비를 맞으면서 막차를 탔다
아파트 창들은 굳게 닫혀
바람도 들어갈 구멍이 없었다

아 나는 또 어디로 갈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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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작은 행복』, 우리문학사, 1994, 26쪽. 

 

푸르름
- 오당과 미강6)

하늘은 공허가 가득 차서
가슴이 푸르고
땅은 꿈이 깊어서 푸르다

산은 뼈까지 푸르러 솟았고
들은 의지가 겸손해서 푸르고
강은 영원히 흘러서 푸르다

남강의 푸른 꿈에 씻긴
의령 상정에는
오당과 미강의 푸르름이 흐르고 있었다

오당은 면암 최익현을 따라
의병도 하고
왜정 34년을 세금 한푼 안 물었고
그때의 신문지도 원수의 종이라고
뒤도 닦지 않았다
파리장서 앞장 선
푸른 대나무였다

미강은 3 ․ 1운동
태극기 그려서 불 붙였고
평생 의관을 정제하여
선비의 길 푸르게 닦았다
오당이 물에 놀면 미강은 물이었고
오당이 산행하면 미강은 산이었다
숙질간의 한 나무에
사제의 꽃 피었고
오당과 미강의 푸른빛이
산과 들에 출렁이고 있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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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오당은 조순의 증종조부 조재학, 미강은 조순의 조부 조문현이다. (엮은이 주)
7)『작은 행복』, 127-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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