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신작시】 달밭 무 외 9편 - 김영화

장소시학 승인 2023.04.03 18:22 | 최종 수정 2023.04.03 18:43 의견 0

신작시

 

달밭 무 외 9편

김 영 화

 

구불길 자갈길 들썩이다 닿는 달밭 먼당
골짝 아래 들은 물만 채워 싱거운 봄
달빛 흠씬 훔쳐야 꼬시지
별 무리 미타산 잔걸음 넘을 때 권혜 사람 
달그락 옆구리 도시락 챙겨 보탠다
반 고랭지
배추는 찬 이슬에 목이 자꾸 꺾이고
땅심보다 밥 심줄 더 질겨
봉두난발로 고래 소리 지르며 뛰던 맨 종아리 
움쑥불쑥 하루 다른 무가 제 맞춤 땅이다
농기계 곡괭이 더해 늘여도
고사리 뱀 머리수만 늘리는 숭시런 자갈 자갈밭
제 살붙이 도회지로 등 떠밀어 주저앉히고
이제는 고랑 없는 잡목만 우거져
고무레 긁은 듯 매끈한 길 객을 맞는다

 

유학사

익구실 지나 묵방 길 
을해년 초파일 왁자한 절집 마당에
갓 돌 지난 손주 업고 탑돌이 한다
법당 요사채 단청은 제 색을 잃고 창백하다

아버님 징용 끌려가시는 날  
집 마당에서 처음으로 안으셨다는 자식
대놓고 자식 어르기도 흉이라 
맘껏 쓰다듬지 못한 날들 명치에 꽂혔으리
아비 잃은 자식 여린 명줄 잇던 
극락전 치성 기도에 버선발이 닳고
애간장에 곡기마저 무른 밥으로만 넘기시던
어머님 무덤 떼잔디도 가로 누웠다

절집도 내리사랑이라
아들 내외 앞세워 
칠성각 바위굴 초 밝히고 돌계단 돌아오면
쑥떡 찰떡 봉지 건네는
비구니 
웃는 눈주름

 

백련사

웃골 고모님
무주상보시 공양주로 계시어
십 리 가례 더 지나 갑을 골짝
꾸불 산길 엄마 손목 잡고 오르면
초파일 전야 연등불 먼저 밝다
공무원 아들 둘 사업 너른 막내아들
울산 큰 회사 간부 안사람 고명딸 
모두 긴 불공 부처님 가피라 여겨
절집 대소사 너른 걸음에도
할아버님 제사 들면 
곱게 빗은 쪽머리 향내  
조곤조곤 꾸벅잠 깨우셨다
 
머리 안개 짙게 깔린 소망요양원
깊었던 눈매 아지랑이로 풀려
우리 올치 우리 동생 
그 목소리 길을 잃고
먼 허방 짚으신다

 

눌차

시간배 끊긴 선착장 더듬거리다 
물러난 등대 하얀 발 앞은
고장 난 배 쿨룩 기침 재우는 윤활유 
깡통 이리저리 쓸리고
시멘트벽 옆구리엔 짜장면 배달 번호 일필휘지로 날고
갈매기 대신 까마귀 떼 갯강구라도 찾는지
뱃전 기웃거리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그물코 당기는 어부 낯빛 붉다
바다를 가른 방조제 순한 물길
엎드린 듯 누운 제 이름 탓인지 
혹은 머뭇거리다가 똑 떨어진 내력 거슬러
공사 중인 집은 거침없이 바다로 향한다
줄지어 늘어선 운동기구들
가덕도로 해넘이 하면
임자 찾아 가끔 돌기나 하는지
갯바람에 한쪽 어깨마다 녹물이 번진다

 

미아 찾기

누나 아버지가 자주 보여
자꾸 생각하니까 꿈에 나타나시지
난 아무 꿈도 안 꿔

끼룩끼룩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 얼룩말
화면 속 세렝게티 초원이 울고 있다
며칠 주린 다리 꺾이자 몰려드는 하이에나 떼
카메라 눈 새끼 찾던 어미 비추고 
연극같이 벌떡 일어나 젖 무는 새끼

의령 대목장 송아지 키워 나온 우시장
모처럼 쥔 지폐 다발에 손 놓친 막내
미친 듯이 장바닥 훑어도 안 보여
가슴 쥐어뜯으며 삼거리까지 오니 
저만치 가고 있더라고 잊을 만하면 되뇌시던 아버지

오십에 제 짝없이
“난 생물 만지는 일이 좋아 누나”


시퍼런 손가락
서성이며 서걱거리는 가을
젖은 낙엽은 
또 멀미다

 

우연이 아니라고

최정례 시 병점을 읽은 이튿날
화성시 병점동 주소 둔 묘적부를 보았네
4년 전 사망한 이의 연고자 서류가 하필 책상에 
마치 조간신문에 툭 양각된 듯
시인의 부고 기사를 보았던 날처럼
왈칵 쏟은 옷가지 속 양말 한 짝 찾아 뒤지듯 
낯설었던 병점
쉬었다 가는 역이라 떡 팔다 생겼다는 이름 
경부선 닿지 않는 공원묘원 사무실에서 맞닥뜨린
곱씹어 삼키다 때로 우물거리다가
줄행랑치던 말꼬리가 여기 왜 섰냐고 

 

초란

마트 매대 가공 시간이 칸칸이 포개져 있다
나고 온 곳 까발려진 번호표 
어린 것들에 대한 수치가 먼저인지 
바닥 드러난 속내인지 

1 방사 
2 축사내 평사 9 
3 개선 케이지 13
4 기존 케이지 20

복지는 떨어진 복권처럼 나뒹굴고 
조작된 배란 
어린 어미 첫 해산을 꾸러미로 들고 온 날
끝자리 4번
파먹고 파먹다 끝내 적출될 자궁
토막토막 새벽 배송으로 당도한 신선식품

 

출렁이는 라면

이른 새벽 해변 가까이
조업 중인 어선
중늙은이 빼고 피부색 검다
남해도 서해안도 아닌 삼척 바다
제자리 돌며 긴 갈고리 던져 넣고
그물을 건져 올린다
한쪽으로 쏠려 기울어진 뱃전 
뺨 위태롭게 갈기는 파도
도무지 짐작 안 가는 작업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인당수가 여기쯤인가도 싶어
혼곤해지는데
죽비처럼 조약돌이 얼비친다
세상에 돌잡이도 하나 중얼거리며
혼자 모래밭에 나앉았는데
실눈 뜨고 보니 바지락이 반들반들 
소쿠리 낱낱 가득하다
새참인지 선 채로 봉지 뜯어 젓가락질 
바쁜 이국 선원 둘

농어촌 가려운 일손 라면 국물에 말아
동화되어 가는지
두고 왔을 가족이라도 떠오른 걸까
때마침 뒷걸음질 치는 파도 

 

저동항

 1
선창가 너머 고갯마루 언덕에는 
울릉도 저동 도동 사람 껴묻은 공동묘지
척박한 화산섬 비석 아래 
삶도 죽음도 겹으로 푸는 것인지
동해에서 나가 동해로 되밀려왔을 갈퀴손도
붉은 천에 싸인 애장도 전호꽃 융단이 어루만지고
밤 마실이 섬 객사길 보랏빛 붓꽃 무리 안색이 짙다

 2
저물녘 오징어 배 밧줄 우는 소리 
까무룩 오렌지색 기름띠 위에 잠든 갈매기 부표 
한동안 씨가 말랐다는 오징어 
이웃 나라 방사에
울타리 너 내 없는 바다라 이곳까지 닿는 사연
깊이 알 것 없이 이른 해 불쑥 맞는 새벽
좌판 아낙은 오토바이 손님 손사래에도
오징어 배를 덤으로 딴다

 3
다시 밤바다 
서로 닿을 듯 가득 핀 어화들
가늠할 수 없는 고요
빈 선착장 
고기잡이 풍랑 맞은 아버지 기다리다 돌이 된
촛대바위 딸
망향봉 소나무 병풍도 모처럼 쉬이 잠들고
행남등대 홀로 환하다 

 

스투키는 죄가 없다

스투키 새끼가 어미를 쓰러트렸다
창가 햇볕 바람 넉넉한 자리 차지하고
무더위에 제 새끼 소독소독 낳아
척박한 태생쯤 다발성 촉수로 덮는다
바깥은 마스크가 일상이라 안 사정은 데면데면
그저 지루한 여름 떠밀고 싶었던가
어미 몸 진물 빨려 허리까지 꺾이고야 알아챘다
식물도 동물도 반려시대
엮고 허물기도 사람이 변덕이라 
첫눈에 반해 데려왔던
그러다 홀로 녹았을 
비좁은 화분 왕성한 먹성은 
패륜으로 막을 내렸다

 

김영화 시인

김영화

시인. 의령 출신. 6인 공동시집 『양파집』(2020)과 계간 『여기』 시 신인상(2021)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함. 시집으로 『꼬뚜레 이사』(2022)를 냄. 
san5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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