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특집 : 의로운 향 의로울 향, 의령】 곽재우 - 윤세평

장소시학 승인 2023.03.01 11:27 | 최종 수정 2023.03.03 16:25 의견 0

[붙임2]

 

곽재우

윤세평

 

 

경상도 의령 사람* 곽재우는* 곽월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뛰여나고 도량이 넓어서 하는 짓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커서 살림을 시작하면서 집에다* 식객을 많이 두어 그 가운데는 기운 센 장사며 말 우에 서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며 각양 각색의 인재들이 많았다.

이때 왜적이 처들어와 경상도 일대를 풀베듯 하는데 관원들이 먼저 도망하기만 힘쓰므로 인심을 크게 잃고 또 량곡을 징발하여 가므로 백성들의 원망이 날로 높아갔다.

곽재우는 경상도 여러 고을이 함락된 소식을 들고 동리 사람들을 모아 의논하기를

“이제 왜적이 몰아 들어오니 우리의 부모 처자가 장차 적의 수중에 사로 잡힐지라 어찌 우리가 가만이 앉아서 죽음만 기다리리요? 지금 우리 동리에 싸움 하염직한 젊은이들이 수백 명이나 있으니 모름지기 일심으로 협력하여* 정진 나루를 지키면 능히 우리 향토를 지키리로다”

하고 먼저 자기 집 재산을 흩어서 군사를 모으고 처자들의 의복까지 내여서 군사들의 처자에게 나눠 주었다. 장사 심대승 등 10여 명이 곽재우의 손을 붙잡고 생사를 같이 할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곽재우는 이렇게 모은 의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의령과 초계 고을에 들어가 군기를 끄내고 또 강령 첨사 정흥남을 군관으로 삼아 군사를 조련하고 기강에 나아가 배에 실은* 세미 1천 석을 실어다 군량미로 쓰고 또한 사창의 창곡을 내여 기민을 주니 군사들의 기운이 더욱 왕성하여 갔다.

곽재우 군사를 정제한 후에 정탐을 보내여 적세를 탐지하니* 왜장 안국사가 군사 수 천 명을 거느리고 밥을 타서 정진 나루를 건너 의령 고을을 치고져 하여 낮에 미리 정진강의 깊고 옅은 곳을 살핀 후에 옅은 여울 목에다* 표목을 세우게 하였다.

이를 탐지한 곽재우는 군사를 가만이 보내여 왜적이 세워둔 표목을 옮겨다 깊은 골목에다 고쳐 세우고 좌우에다 복병을 시켜 대기하였더니 과연 안국사의 군사의 군사 밤에 정진강을 건느려다가 모두 깊은 물에 빠져 크게 혼란에 빠졌다. 이때 곽재우의 군사 일제히 내달아 왜적을 즉치니 안국사 무수한 군사를 죽이고 대패하여 물러갔다.

곽재우 군사를 모아 의논하되

“왜적이 비록 패하여 물러갔으나 명일 반드시 또 몰아 올 것이니 방심하지 말라”

하고 용정 수십 명을 뽑아 좌편 산’골에 매복시키고 기다리게 하였다.

이튿날 왜장 안국사는 낮에 정진강을 건너 바로 곽재우의 진을 향하여 몰려왔다. 그러나 곽재우는 진문을 굳이 닫고 조금도 요동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안국사 그의 부하를 시켜서 싸움을 걸고져 욕설을 퍼부어 마지 않았다.

곽재우는 석양이 되어서야 겨우 진문을 열고 왜적과의 싸움을 걸고 거짓 패하는 체하여 달아났다. 안국사의 군사 급히 곽재우의 군사를 뒤따르니 곽재우 돌아서며 왜적과 싸우다가 또 패하는 체 하여 달아났다. 이렇게 하기를 10여 차나 거듭하니 벌써 50리나 와서 곽재우가 미리 복병시켜 두었던 산’골에까지 이르렀다. 곽재우를 쫓던 왜적이 산’골에 들어섰을 때 문득 수풀 사이로부터 난데없는 함성이 일어나며 좌우에서 복병이 내달아 급히 치니 안국사의 군사 불의의 습격을 만나 크게 패하고 안국사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물러가서 다시는 의령 고을을 침범할 뜻을 두지 못하였다.

곽재우의 의병 부대가 거둔 승리는 백성들의 용기를 더욱 북돋아 주었으며 의령 초계뿐만 이니라 삼가, 협천 고을에서도 군사들이 모여 와서 수만 명의 대부대를 이루고 백성들은 평일과 같이 농사를 지으며 군량미를 조달하였다. 

왜적이 그 후 정진강을 오래 건너오지 못하고 적은 군사를 자주 보내여 곽재우의 군세를 탐지하고져 한대 곽재우 왜적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왜병만 보면 곧추 달려가 즉치니 왜적이 크게 겁을 먹고 또 곽재우는 어느 때나 붉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니며 ‘천강 흥의 장군」’(하늘에서 내린 붉은 옷을 입은 장수)이라고 크게 써 붙이니 왜적이 신장이라 하고 붉은 옷을 입은 것만 보면 모두 놀래여 달아났다.

곽재우는 정진강을 굳게 지켜 강가에다 붉은 기와 흰 기를 꽂고 또 짚으로 만든 관혁을 두수히 세워 군세를 보이고 원근의 배를 모아다 전서으로 사용하고 수군 3천으로 지키게 하였다.

또한 라팔 잘 부는 군사들에게 붉은 옷을 입히여 산 우의 사면에 벌려 세우고 왜적이 요동하는 기색만 보이면 라팔을 불게 하니 라팔 소리와 함께 언덕 밑에 숨었던 복병이 내달아 치군하였다.

이에 왜적이 곽재우의 군세가 얼마나 되는지를 종시 알지 못하고 붉은 옷 입은 사람이 보이고 라팔 소리만 나면 줄달음질을 쳐서 달아났다.

곽재우의 수군이 정진강을 굳게 지키여 왜적의 배가 락동강을 건너 다니지 못하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경상도에는 적의 통로가 막히고 말았다.

정유년(1597년) 가을 왜적이 두 번째 쳐들어 왔을 때이다. 곽재우는 방어사가 되어 창령 화왕산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왜장 하라북의 대부대가 물밀 듯이 들어왔다.

곽재우의 군사는 왜적의 수효가 너무도 많음을 보고 모두 겁을 먹게 되고 퇴각하기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곽재우는 왜적이 산성에 박두한 것을 보고도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만일 왜적이 진정으로 병술을 안다면 어찌 경솔하게 이곳을 침범하리요?”

하고 웃으며 성을 굳게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곽재우는 왜적이 산성에 다달으자 비장 안택형을 시켜서 붉은 옷을 입고 조수 밀리듯 몰려 오는 적병을 향하여 큰 소리로 웨치게 하였다.

“너이들은 감히 어데 들어오느뇨?”

그의 고함 소리는 앞뒤 좌우에 있는 산을 흔들어 봉우리마다 같은 소리가 울려 왔다.

왜적은 신병이 내려왔는가 의심하여 놀래여 물려간 뒤 다른 고을을 쳐들어 갔어도 종사 하왕산성은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원주) 

ㆍ곽재우 : 임진 조국 전쟁 시기 의병장으로서 가장 뛰어난 전략가의 한 사람이다. 또한 량반 통치 계급 내부의 당파 싸움을 논죄한 한 사람이며 나중에 혐의를 받아 역적으로 까지 멀리여 투옥되었으나 석방되어 세상을 숨어 지냈다.
ㆍ곽월 : 일찍이 감사를 지냈다. 곽재우는 그의 셋째 아들이다.
ㆍ식객 : 량반 관료나 부자집들에서 밥을 거저 먹이고 두었던 사람을 말함.
ㆍ정진 나루 : 락동강의 본 줄기와 진주 쪽에서 흐르는 남강의 합치는 데를 기강이라 부르고 거기에 정진 나루가 있다.
ㆍ세미 : 나라에 납세하는 곡식.
ㆍ왜장 안국사 : 안국사는 왜장의 한사람으로 승려 출신이다.
ㆍ표목 : 표 말뚝.
ㆍ왜장 하라북 : 1597년 왜적이 두 번째 조선에 상륙시킨 부대의 장수의 한 사람.

- 윤세평, 『임진록』, 민주청년사, 1955.

 

※ 『장소시학』은 본지와 콘텐츠 제휴매체입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