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특집 : 의로운 향 의로울 향, 의령】 홍의장군 곽재우 - 아을파(亞乙巴)

장소시학 승인 2023.02.27 11:11 | 최종 수정 2023.03.02 09:35 의견 0

[붙임 1]

 

홍의장군 곽재우

아을파(亞乙巴)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고 하여 임진왜란 당시 적군이 그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하던 의병대장義兵大將이 있으니 그 이름 곽재우郭在祐는 경상남도 의령宜寧 사람이다.

곽재우는 원래 사람됨이 호협하여 의협심이 많고 담이 크고 뜻이 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과거를 해서 벼슬할 생각도 아니하고 나이 사십이 넘도록 의령에서 고기를 낚으며 세월을 보내니 별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임진년을 당해 왜적이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침범해오자 평시에는 벼슬 윤탐하여 높은 자리나 엿보고 백성의 질고도 돌아보지 않으며 뽐내기만 하고 있던 조정 신하를 위시하여 수령방백들이 다투어 성과 진을 내버리고 목숨을 구하여 도망하는 것을 보고 분연히 일어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왜적이 강토를 침범하여 국가가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우리가 어찌 안연히 가만히 앉아 죽기를 기대리겠는가 우리 마을의 장정이 수백이나 되니 우리가 합심하여 정진鼎津에 웅거해서 대항하면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자기 집 재물을 다 흘어 군사를 모집하고 옷을 벗어 전사를 입히며 자기 처자의 옷을 벗겨 전사의 처자를 입히며 장정을 사방에 모집하니 심대승沈大升 등 십여 명이 감격하여 울면서 죽기로써 나라를 지키자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그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리어 그의 이 행동을 보고 미쳤다고 비방하기까지 하였다.

이때 왜병이 의령 삼가三嘉 합천陜川 세 고을을 함락시키자 그들의 사는 곳이 위태하게 되었다 곽재우는 장정 십여 명을 몰고 적군의 진지로 말을 달려 습격하자 적군은 당치 못하고 달아났다. 곽재우는 정진 함안咸安을 추격하여 적군을 파하고 오십여 명의 적군의 머리를 베었다.

이것을 보고 많은 장정들이 곽재우에게로 모여와 군사가 되었다.

곽재우는 싸울 때 몸에 붉은 옷을 입고 싸왔으므로 그를 이름하여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고 하였으며 이 붉은 옷을 입고 비호와 같이 적군이 많던 적던 두려워하지 않고 적 진중에 돌입하여 분전함으로 적군은 그가 나타나면 두려워 피해 달아났다.

곽재우는 모인 장정 오십여 명을 격려하여 모두 죽기로써 적병을 물리치기를 맹세케 하고 소를 잡아 그들을 한바탕 먹인 후 초계草溪 곡창의 곡식을 취하여 군량을 삼고 적과 싸울 준비를 공고히 하니 좋지 않은 자들은 그를 도적이라고까지 비방하였고 그때 산중에 피해 들어왔던 우병사右兵使 조대곤은 곽재우가 기병하였다는 말을 듣고 토적土賊이라고 해서 체포령을 내려 그를 잡으려고 하자 이 말을 듣고 모인 장정들이 의심하고 두려워 헤어지려고 하였다. 재우는 할 수 없이 분한 눈물을 머금고 두류산頭流山(지리산)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하는데 마침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이 내려왔다가 그 이름을 듣고 격려하여 군사를 일으켜 싸우라고 권고하자 곽재우는 다시 용기를 얻어 의병을 모집하니 애국심에 불타는 인민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그 수가 천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이때 적군이 호남을 전취한다고 선전하며 날로 군사를 끌고 서쪽으로 진출하여 그 선봉이 정진鼎津에 이르러 곽재우 군과 수십 리 상지에 대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에 진흙 구렁이 가로놓여 적은 이를 건너지 못하고 가만히 먼저 사람을 보내어 마른 땅을 가리어 거기다 나무를 깎아 꽂아 표를 해놓게 그곳을 건널 작정이었다. 그러나 곽재우는 미리 이것을 탐지해 알고 밤중에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적군이 표해 세운 나무들을 뽑아 진흙 구렁에다 꽂아놓고 그 근처에 복병을 하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과연 적군의 선봉 부대가 이곳을 건너게 되었다.

그들은 나무로 표 한데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모두 안심하고 나무 깎아 꽂은 곳으로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쑥쑥 진흙 구렁으로 빠져가지고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혼란을 일으켰을 때 이쪽 복병이 일시에 소리 지르고 내달아 닥치는 대로 그들을 활로 쏘고 칼로 베어 섬멸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적의 대군이 뒤쫓아 이르렀다 재우는 적은 군사를 가지고 많은 적군을 막아내기 어려웠으므로 군사 중에서 튼튼하고 날랜 장수 십여 명을 뽑아 자기와 같이 모두 붉은 옷을 입히고 흰 말을 태운 후 적의 진영의 좌우 쪽으로 육박해 들어가서 적을 유인해 내게 하였다.

적군은 홍의장군이 나타난 것을 보고 곧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왔다. 그리하여 산골짜구니 까지 들어와 가지고는 홀연 홍의장군의 간 곳을 잃고 찾으려고 어리둥절할 때 앞 언덕을 바라보니 거기는 수십 명의 장사가 다 홍의를 입고 백마를 타고 있으므로 놀라고 이상히 여겨 다시 추격을 하다가 보니 많은 홍의장군의 자취는 볼 수 없고 북과 나팔 소리만 들려왔다 이상히 여겨 바라보니 앞산에 기치가 가득히 펄럭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적군은 더울 놀래고 어찌 된 영문을 몰라 더 나가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고 서 있었다. 이때 재우는 미리 준비하였던 강한 쇠뇌를 나뭇새로 대고 일제히 쏘게 하자 많은 적군은 혼이나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재우는 군사를 몰아 일시에 추격하여 적군을 태파하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뒤로 적이 오면 싸우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를 보았다.

재우의 탄 흰 말은 마치 나르는 것 같이 빨라 타고 달릴 때는 적군이 총과 화살을 비 퍼붓듯 하여도 맞지 않아 적군은 곽재우를 신장이라고까지 하여 홍의장군의 이름은 그들에게 아주 무섭고 기이한 존재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곽재우가 말 위에서 북을 치며 태연한 기색으로 서서히 가되 적군들이 감히 그에게 달려들지 못했고 어떤 때는 피리를 불어 적병을 미혹시키고 하여도 적군은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곽재우는 자기 군영으로부터 멀리 적이 있는 데까지 척후를 늘어놓다 적군이 백 리 밖에 이르렀을 때에는 진중에서 이를 미리 알고 예비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군이 많은 군사를 가지고 쳐들어 올 때는 산 수풀 속 여기저기 의병疑兵을 베풀어 군사가 많은 것 같이 보이게 하고 각처에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 기세를 올리며 또 밤에는 적에게서 잘 바라보이는 산 위에서 다섯 머리를 가진 횃불을 들게 하여 사면에서 함성을 지르고 상응하게 하니 마치 굉장한 수의 군사가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쳐들어왔던 적이 겁을 내고 그냥 도망해 버리었다.

또 재우는 그의 수하 군사가 적의 포위를 만났을 때는 먼 곳이라도 반드시 달려가 구해내 가지고 왔으며 이렇게 하여 그 군사의 상함이 적었고 또 군졸들이 감복하여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으므로 이것이 그로 하여금 늘 승리를 거두게 한 원인이 되었다.

곽재우는 다시 널리 군사를 모집하여 그 수를 늘여가지고 일곱 둔屯을 만들어 왼쪽은 낙동강으로 오른쪽은 정진에 이르기까지 육십여 리 사이에 두고 자기는 그 가운데 있어 가지고 전군을 통솔하였다.

초유사 김성일이 삼가三嘉의 군사로 재우에게 속하게 하니 재우 두 고을 군사를 거느리게 되어 윤탁尹鐸으로 대신 장수代將를 삼고 전 부사 오운吳雲으로 군사 모집하는 관원을 시켜 시골 부자들로 하여금 쌀과 소를 내게 하여 군사들을 먹이니 그 때문의 군중에 환성이 높아지고 군사들의 기운이 올라갔다. 그리하여 곽재우는 의령 삼가 합천 세 고을을 적의 손으로부터 회복하여 놓으니 백성들이 다시 전과 같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경상우도의 적군이 물러가게 되었다.

임진 6월에 적군의 18척이 가야伽倻로 간다고 떠들어 놓고는 돌연 정진으로 들어오자 재우가 이것을 막아 물리쳤다. 적군은 다시 군사를 더해 가지고 령산靈山 창령昌寧으로 해서 장차 기강岐江을 건너려고 하자 재우는 그리로 달려가 강 건너에 진세를 베풀었다.

적군은 강 건너편에 군사의 대오가 정숙하고 진세가 엄정한 것을 바라보고는

“이 필연코 정진의 홍의장군일 것이라”

하고 드디어 강을 연해 피해 달아났다 재우는 강을 격해 가만히 적군의 가는 곳을 따라 가다가 성주星州 안언安彦역에 이르러서 돌연 불의에 내달아 적을 습격하여 혼란에 빠뜨렸다.

이때 경상감사 김수金晬가 군사를 이끌고 적을 치려 경성으로 가다가 용인에서 실수하여 크게 패하여 가지고 본도로 돌아왔다. 이것을 보고 곽재우는

“김수가 적을 치러갔다가 적을 보기도 전에 먼저 도망하여 오니 먼저 이 따위를 처 없애버리리라”

하고 분개하여 군사를 옮겨 김수를 치려고 하니 김성일이 책망하여 그만 두게 하였다. 그러나 곽재우는 격문을 발하여 김수의 패군한 죄와 국가의 위급함을 구하지 못한 죄 일곱 가지를 들고

“내 마땅히 네 머리를 베어 신인의 분을 풀리라”

하니 이것을 보고 분히 여겨 도리어 곽재우를 도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조정에 참소하여 곽재우가 모반한다고 하자 조정에서는 재우를 의심하여 잡아 올리려고 하였다.

이것을 김성일이 조정에 가서 변명하여 일이 무사하게 되었다.

왜병이 현풍玄風 창령昌寧 령산靈山에 크게 둔쳐 가지고 아래로는 김해에 통하고 위로는 성주星州를 접하여 그 세가 대단하였다.

재우는 강 건너에 진을 연하고 있어 이를 제압하였으며 나중에는 강을 건너 적을 치고저 하여 정병 수백을 뽑아가지고 강을 건너 곧 현풍 성의에 이르러 싸움을 돋우니 적벽이 정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아니하였다.

재우는 밤에 군사를 시켜 비파산琵琶山에 올라가 일시에 소리를 치고 총을 놓아 사방이 진동케 하고 횃불을 들어 그것이 십 리에 뻗치게 하였다가 일시에 불을 꺼 마치 사람이 없는 듯이 하고 다시 성 뒤 높은 곳에 올라가 이렇게 횃불을 들어 성 안이 환하게 비치도록 한 후에는 여러 사람을 시켜 소리를 합하여 일시에 큰 소리로

“홍의장군이 내일 아침에 성을 무찌를 터이니 후회하지 말라”

하고 외쳤다.

이렇게 소리를 치고 한바탕 소동을 하고는 일시에 불을 끄고 물러가니 적들이 놀라고 겁내어 그날 밤으로 성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창령의 적군도 현풍의 적군이 물러갔다고 말을 듣고 군사를 거두어 물러갔다.

그러나 오직 령산의 적군만은 강한 것을 믿고 물러가지 아니하므로 곽재우는 김성일에게 청하여 제 고을 군병을 더 발하여 령산성 외로 진격하게 하였더니 별장 윤탁이 싸우지 아니하고 물러났다.

그것을 재우는 다시 군사를 거두어 산으로 올라가 가지고 비장 주몽룡朱夢龍을 시켜 가지고 말을 타고 내달아 적진을 충격하게 하여 여러 번 거듭하자 적이 견디다 못하여 그대로 물러났고 다시 크게 사흘을 싸우자 적군은 지탱치 못하고 밤에 모두 도망가 버리었다.

이리하여 창령 일로에 적의 그림자가 없어져 버리었고 경상우도가 다 평정되었으나 다만 밀양 대구로 하여 안동 성안이 적의 왕래하는 길이 되어 있었다.

왜적이 물러간 뒤에 곽재우는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쥐를 잡기 위함이라 이제 적이 물러갔으니 내 할 일 없다”

하고 그는 산으로 들어가서 벽곡 생식을 하고 나오지 아니하였다.

조정에서는 여러 번 그를 불러내어 벼슬을 시키려고 하였으나 그는 별로 거기 뜻을 두지 아니하고 비파산에 들어가 숨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가 도술을 배워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는 조정에 벼슬하는 것을 귀찮게 여겼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조정이 부패하여 당파 싸움이나 하고 서로 모함해서 죄 없는 사람을 몰아 죽이는 것을 보고 거기 증오를 느끼고 환로에 나서지 아니한 것이었다.

더구나 김덕령金德齡이 같은 애국적 장수가 아무 죄 없이 몰려 죽는 것을 보고는 더욱 그런 맘을 굳게 하였던 것이다.

- 『태풍』 1월호, 태풍출판사, 194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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