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크기를 1광년[약 10조 km]이라고 하면/ 태양은 직경 14cm짜리 멜론/ 거기서 15m 걸어가면/ 직경 1.3mm 좁쌀 한 알/ 그게 지구란다. 그 좁쌀에서 3.8cm 떨어진 곳에/ 직경 0.35mm 티끌 같은 한 점/ 그게 달이란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 가려면 950m쯤은 걸어가야 돼/ 태양과 지구는 15m 거리/ 1200m쯤 가다보면 태양계도 끝이 보인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켄타우르스 자리의 알파성/ 1.3mm 지구에서 4000km 떨어진 곳에 있는 별.
그 별빛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별 볼 일없는 우리 인간이 말이다/ 아니 그 별이 지금 우리를 보고 있다. 진짜 별을 보고 살자/ 인생 백년을 살지 말고/ 45억 년의 지구/ 50억 년의 태양을 살자. 200억 년 전 초고온 초고압 불덩어리 빅뱅의 우주/ 한 점 소우주로 살자/ 1광년의 한 해 한 해를 살자.’
예전에 과학책을 보고 우주의 신비를 느끼면서, 어느 새해를 맞아 ‘우주의 크기를 1광년이라고 하면’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 본 적이 있다. 무한한 우주에 지구는 ‘좁쌀 한 알’,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티끌 한 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하루하루 살다보면 이러한 유한성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끝없는 욕망만 드러나는 일상을 느낄 수 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해’이라고 한다. 사주학에서 계수癸水는 물로서 검은색이고, 묘목卯木은 토끼띠를 나타내기에, 계묘를 검은 토끼라고 한다. 사주학에서 계수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물로 생명체를 살리는 근원이기에 계묘년 검은 토끼는 식신[食神, 먹을 복], 천을귀인[天乙貴人, 조력자], 장생[長生, 건강하게 오래 삶]을 의미한다. 토끼는 작지만 귀엽고 활동력과 먹성이 좋고, 나대기도 하지만 겁이 많다. 그래서 계묘년 토끼는 일을 크게 벌이거나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자기 분수를 알고 적정선에서 실제적인 일을 하면서 실용적인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시사뉴스, 2022년 12월 2일].
옛사람들은 토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국립민속박물관이 토끼를 소재로 한 장식품, 그림, 인형 등 70여 점을 모은 특별전 ‘새해, 토끼 왔네!’를 2022년 12월 14일부터 2023년 3월 6일까지 선보인다. 우리나라에 본래 살던 토끼는 산토끼로, 회색이나 갈색 털을 갖고 있었다. 흰색 털의 토끼는 색소가 결핍되거나 20세기 들어 수입된 종이었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1643∼1715]은 “토끼는 1천 년을 사는데 5백 년이 되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며 흰 토기에 장수의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회화인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는 토끼와 모란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부부간의 애정과 화목을 상징한다. 옛사람들은 토끼를 꾀 많고 영민한 동물로 묘사했다. 토끼의 생태를 다룬 동화, 교과서에 실린 '수궁가', 캐릭터 '마시마로' 등에서 토끼의 ‘변화무쌍’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연합뉴스, 2022년 12월 9일].
2023년 검은 토끼해 한해도 가정이나 나라나 무탈하길 빈다. 그런데 앞으로 50년, 100년 뒤 우리의 후손들도 이 땅에서 여느 해처럼 무탈한 새해 소망을 빌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가 계속 된다면 과학자들은 앞으로 100년 뒤 지구의 종말을 경고한다. 하나뿐인 지구의 현재 1℃에 가까이 오른 평균온도가 21세기말까지 1.5℃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2030년을 목표로 화성 유인 탐사를 추진하고, 아폴로11호 이후 50여 년 만에 마네킹을 실은 아르테미스 1호가 2022년 11월 달나라 탐사를 재개했다. 미 스페이스X CEO인 일론 머스크가 2021년 우주여행의 새 길을 열었고, 2022년 8월 우리나라도 첫 달 궤도선 ‘다누리’를 발사하는 등 지금 인류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 찾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설혹 이러한 행성을 찾았다고 한들 지구의 보통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이 점에서 태양에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아주 적당한 행성은 지구뿐이다. 물과 공기, 온도, 습도, 영양분, 쉴 곳, 햇빛을 골고루 갖춘 우리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안성맞춤 집인 ‘하나뿐인 지구’는 제임스 러브록이 말한 하나의 거대한 생물체로서의 ‘가이아Gaia’이기도 하다. 이 가이아에 인류를 포함해 3000만종의 생명체가 현재 살고 있다.
이러한 지구를 살리자는 취지로 제정한 세계 기념일이 매년 4월 22일 ‘지구의 날’[The Earth Day]이다. ‘지구의 날 네트워크’[https://www.earthday.org]는 ‘우리 행성에 투자하라’[Invest in Our Planet]고 외치며, ‘대담하게 행동하고, 널리 혁신하고, 공평하게 실행하자’[act boldly, innovate broadly, and implement equitably]고 제안한다. 그리고 지구의 날 실천 사항으로 △탄소발자국 줄이기를 위해 자가용 대신 카풀이나 대중교통, 자전거를 이용하기 △옷장을 새로 정리하거나 쇼핑습관을 바꾸기 △육식에서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기[탄소배출량의 1/4~1/3이 육류산업과 관련. 전 세계가 2050년까지 채식 전환하면 배출량 60% 감소 가능, BBC 보도]를 강조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 ‘지구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때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예로부터 지구나 땅을 ‘어머니 대지’[Mother Earth]라고 불렀다. 우리나라도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도 ‘천지부모’天地父母를 강조했다. 해월 선생은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니, 천지부모는 일체니라.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지금 사람들은 다만 부모 포태의 이치만 알고 천지포태의 이치와 기운을 알 지 못하느니라.”라고 일갈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환경사상에 고수레[고시레], 까치밥, 콩세알 이야기도 같은 생각이다.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내거나 야외 나들이를 갈 때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 던지는 일은 자연에 이를 고하는 행위이고, 까치밥은 감나무에 열린 홍시를 다 따지 않고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놓는 것이다. 조상들은 콩을 심을 때 세알씩 심은 까닭은 하나는 날짐승이, 또 하나는 땅벌레가 먹고, 나머지 하나를 우리 인간이 먹는다는 마음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는 지구시민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보여준다. 1854년 미국 제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가 인디언 추장 시애틀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했을 때 그가 내놓은 답이다.
‘위대하고 훌륭한 백인 추장[프랭클린 피어스]이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고 제의했다.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듯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우리가 땅을 당신에게 판다면, 기억하라. 공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공기는 모든 목숨 있는 것들에게 정신을 나눠준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쉬게 해 준 바람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둬갔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도 당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칠 건가? 땅이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땅에 일이 생기면 땅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생긴다. 우리는 안다. 땅은 사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모든 사물은 우리 몸을 연결하는 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생명체의 공존이 절실한데 산업혁명 이래 인류는 이러한 자연생태계의 질서를 거슬리고 있다. 2022년 1월에 열반한 베트남 선승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1926-2022] 스님의 ‘공존’이란 글이 새해엔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종이 한 장 속에 햇빛이 담겨 있고 그 속에 우리가 있다는 글이다. 나 우리 모두가 자연 속에 하나임을 느끼게 하는 명상의 시이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이 없이는 비가 없으며/ 비가 없이는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없이는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종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구름이 필수적입니다.// 만일 구름이 이곳에 없으면 이 종이도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름과 종이가 서로 공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종이 안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햇빛을 보게 됩니다.// 햇빛이 그 안에 없다면 숲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햇빛이 이 종이 안에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종이와 햇빛은 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바라보면 우리는 그 나무를 베어 그것이 종이가 되도록/ 제재소로 운반해 간 나무꾼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밀가루를 봅니다.// 그 나무꾼이 빵을 매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빵을 만드는 밀가루를 이 종이 안에서 봅니다.// 그리고 그 나무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안에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바라볼 때 이 모두가 없이는/ 이 한 장의 종이가 존재할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더욱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들이 그 안에 있음을 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우리가 그 종이를 보고 있을 때 그 종이는 우리 지각의 일부인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이 종이와 함께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 나무꾼, 햇빛 등/ 종이 아닌 요소가 없이는 종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얇은 종이 안에서/ 그것은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공존’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쯤은 태양의 빛에 우리의 마음을 맞춰 보자.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햇빛이 나면 햇빛이 나는 대로 감사하는 기쁜 그런 하루를 살자. 순간을 알아차리는 삶을 살아야겠다.
2023년 토끼해, 나의 행복론은 뭘까?
나는 언제인가부터 ‘일십백천만 행복론’이란 나름의 행복론을 갖게 됐다. 20여 년 전 사석에서 시민운동가인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힌트를 얻어 그 뒤 나의 개똥철학으로 삼게 됐고, 틈틈이 주변 사람에게 행복론을 ‘전도’한다. 올 한 해 나의 일상생활의 실천사항이기도 하다.
일(1). 하루에 한 번쯤 크게 웃자. 엔돌핀을 생산하는 묘약인 웃음. 유머나 개그도 좀 챙겨놓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재미난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 언제든지 기꺼이 웃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갖자.
십(10). 하루에 열 곡 정도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자. 외롭고 괴로울 때 노래는 진정제 역할도 한다고 하지 않은가. 나의 애창곡 리스트도 한 번 만들어보자.
백(100). 하루에 나의 글 100자 정도는 쓰자. 일상을 글로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자생존. 즉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천(1000). 하루에 남의 글 천자 정도는 읽자. 독서는 지식과 지혜를 가져다준다.
만(10000). 만은 무엇일까. 하루에 적어도 만보는 걷자는 것이다. 가능하면 가까운 거리는 걷자. 이러한 행복론을 실천하면 올 한 해도 절로 즐겁고, 건강한 생태적인 삶에 조금은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후위기에 대한 국가나 개인의 인식과 실천, 제도 보완 등 발 빠른 대응이 없다면 50년 후 지구의 미래, 인류의 미래는 없다. 지구와 우리는 한 몸이다. 내가 곧 지구다. 그래서 2023년 새해 소망엔 한 가지 항목을 더 보탠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국태민안國泰民安에다 지구평화地球平和를!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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