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아이돌의 얼굴이 모두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예능 프로그램도 재미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하니 자연스레 최근 등장하는 아이돌은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도 그렇게 ‘꼰대’가 되어 가는 걸 받아들인다. 그런 내가 트렌드를 이끄는 걸그룹 뉴진스에 꽂힐 줄이야 상상할 수 없었다.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뉴진스의 음악은 레트로 감성에 젖게 한다고 한다. 1990년대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분위기, 춤을 보면 일견 타당한 주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걸그룹 뉴진스는 레트로 콘셉트만으론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 더 있어 보인다. 특히 MZ세대와 30~40대가 고루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렇다.
특히 내가 뉴진스에 주목한 부분은 ‘춤’이다. 그들의 춤은 기존 걸그룹의 칼군무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의 춤은 조금씩 엇박자를 타며 리듬을 타고 넘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뻣뻣한 ‘너’도 따라 할 수 있다고 꼬시는 듯한 그런 흥겨움을 느낀다. 물론 각 잡힌 군무도 멋지지만, 그런 춤은 흥겨움이 덜하다. 그러니까 칼군무의 정교함은 보기의 즐거움과 화려함은 있지만 아재들을 움직이게 하진 않는다. 그런데 뉴진스의 춤을 (어렵다는 걸 알지만) 보면 누구나 춤추고 싶게 만드는 기분이 일게 한다.
게다가 뉴진스 멤버들은 같은 동작을 하면서도, 각자 미묘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때 뉴진스의 춤은 규율이나 규칙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선사한다. 칼군무의 정교함은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움직임처럼 느껴진다면, 뉴진스의 엇박자 춤은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지점이 MZ뿐 아니라 30~40대들도 열광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트렌디 하면서도 익숙한, 복고와 새로움이 만나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뉴진스처럼 친근하지만, 언제나 엇박자로 움직이는 어떤 팀을 알고 있다. 평소엔 화합이라곤 전혀 불가능한데 농구만 하면 원팀이 되는 북산고 농구부.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다.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열정과 도전을 소재로 하는 만화 ‘슬램덩크’는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만화이기도 하다. 만화를 한 번쯤 본 사람이라면 영화 소식이 반갑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슬램덩크’ 26년 만의 귀환에 3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화답했고, 그 불길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농구 초보 주제에 자신을 천재라고 지칭하는 강백호. 백호가 리바운드를 배우고, 점프슛을 몸에 익혀 나가는 시간 동안 우리도 백호와 함께 농구를 배웠다. 물론 나의 경우엔 코트에서가 아니라 글로 배웠다는 게 다르지만 말이다. 농구라고는 해본 적도, 하고 싶은 적도 없었지만 농구를 사랑하게 만든 그 작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에서의 마지막 경기 과정을 다루면서, 원작에 없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극장판은 원작과 동일하게 진행되면서, 주인공을 송태섭으로 선택한다. 천재 서태웅도, 불꽃 남자 정대만도, 고릴라 주장 채치수도 아닌 송태섭이 왜 주인공인지 궁금했다. 독특하고 화려한 인물들이 즐비한 북산고에서 주목을 가장 덜 받은 인물이 송태섭이기도 한데, 영화를 보면 감독이 왜 그를 주인공으로 그렸는지 알 수 있다. 포인트 가드 태섭은 경기 전체를 들여다보고, 팀 내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며, 골을 가장 잘 넣을 수 있는 동료에게 패스하는 팀의 사령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돋보이기보다는 팀을 먼저 고려하고, 팀에 흐름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에는 화려하고 과감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서 백호나 태웅이는 누구든 될 수 있지만,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태섭의 역할이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20대에 처음 ‘슬램덩크’를 그렸던 원작자도 만화의 팬들과 함께 나이가 들면서 화려한 북산고의 농구를 지탱하는 힘이 태섭에게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실 ‘슬램덩크’는 30~40대에겐 추억을 상기시키지만, 밈이나 짤로 만화를 접한 MZ가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향한다는 소식에 조금은 의아했다. 나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담겨 있지만, MZ에게 영화는 복고나 향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이 작품은 새로움, 참신한 문화라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중도에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는 북산고 농구부의 이야기나, 부상당했음에도 지금이 바로 자신의 ‘영광의 순간’이라고 말하는 백호의 대사는 어느 한 세대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우리가 그 시절 좋아했던 만화와 현재 MZ들이 열광하는 뉴진스의 음악은 누군가에게는 복고로, 어떤 이에겐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이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모든 세대와 다시 만난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뻣뻣하게 굳어버렸지만, 나도 언젠가는 유머와 여유가 있었음을, 자유로이 몸을 흔들고 싶었음을 뉴진스의 음악을 들으며, 슬램덩크를 보며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MZ와 꼰대가, 정서와 문화를 공유한다.
◇ 김필남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영화잡지 「인디크리틱」 편집장
▷공동저서로 『일곱개로 만든 비평』, 『지역, 예술을 말하다』,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
▷평론집으로 『삼켜져야 할 말들』이 있음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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