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Human Human'의 저자 브라이언 크리스찬이 인공지능과 미래의 생활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출처=vimeo 캡쳐
자랑을 하자는 건 아니고, 유년기 때 컴퓨터라는 별명을 가진 적이 있었다. 특별한 훈련으로 인해 숫자개념이 남들보다 좀 나았고 적어도 사칙연산에 있어서는 전자계산기보다 더 빨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보다 더 빨랐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학교에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고 선생님들이 성적통계를 낼 때가 되면 나는 시험의 해방감도 맛보지 못한 채 선생님들에게 불려 다니기 바빴다. 놀고 싶어서 도망을 다니기도 했으나, 혼자 몸이 아니었기에 금세 교무실구석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3인조 병렬 컴퓨터라고나 할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나의 형과 형의 친구를 포함해서 그렇게 세 대의 인간컴퓨터들은 당시 학교에서 주산왕 3인방으로 통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훨씬 전이었고, 이제 그 이름조차 아련한 계산프로그램인 로터스123도 한참 뒤에야 나왔으므로 당시 성적통계를 내는 일은 교사들에게 고역이었고, 전자계산기 사용조차 서툴렀던 나이든 교사들은 주판을 들고 몇 날 며칠 동안 악전고투하기 일쑤였다.
그런 환경에서 인간컴퓨터들의 존재는 교사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았고,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혹은 기꺼이 선생님들의 구세주가 되었다. 젊은 교사들이 전자계산기로 거의 1시간 이상을 낑낑대면서 겨우 맞춰내는 난수표 같이 빽빽한 스프레드시트의 가로세로 합을 우리는 계산기는커녕 주판도 하나 없이 채 10분도 되지 않아 계산해 냈다. 세 명이 피드백 시스템을 가동하면 오차율은 제로였다.
사실 그 정도는 장난 같은 일이었고 훈련된 극히 일부의 기능만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평소에 돈 주고 사먹기 어려운 자장면을 질리도록 먹었고, 어떤 선생님들은 고맙게도 남몰래 용돈도 쥐어주셨다. 자기 것부터 좀 빨리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학교 전체의 통계를 작성할 때에는 수업에 빠지는 일도 공식적으로 용인되었다. 가끔은 우리들의 계산결과가 미덥지 않았던지 오랜 시간을 들여 손수 주판으로 일일이 검산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결국 전혀 불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런 계산능력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때는 10열로 나열된 12자리 숫자를 합산하는 데 10초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경이적인 일이지만, 그 때에는 그냥 일상이었고 누구나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주산을 처음 배우고 암산을 하게 되고 인간컴퓨터로 불리기까지 2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다.
물론 다소 특별한 훈련을 받았고 훈련은 어린 나이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매서웠다. 1초가 느리다고 해서, 끝자리 하나가 틀리다고 해서 매를 맞았다. 유년기에 수년을 학원과 학교의 명예가 걸린 경쟁과 시합 속에 살다시피 했다. 그나마 나는 선수라고 불리는 집단들 속에서 중위그룹에도 겨우 속하는 정도 수준이었다. 상위권에 들어서면 인도에서나 한다는 19단을 외워야 했다. 당시에는 그걸 복식구구단이라 불렀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몸에 깊게 새겨진 문신처럼 머릿속에는 언제 어디서든 꺼내 쓸 수 있는 길고 강철 같은 주판 하나가 자리 잡았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나 문신이 흐려지듯 머릿속 주판은 녹슬고 삐걱거리며 낡아 버렸지만 아직도 웬만한 단순 계산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산기를 잘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계산기를 쓰고도 다시 머릿속의 주판으로 검산을 해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추억이라면 추억이라 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일을 이렇게 떠올린 것은 요즘 핫이슈인 인공지능에 대해 알아가면서부터다. 40년이라면 제법 긴 세월이긴 하지만 그동안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불가역적으로 역전시켰다. 컴퓨터의 고도화된 기능들이 인간을 닮아갈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는데, 정작 인간들의 두뇌능력은 전반적으로 더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소수의 과학기술자들이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나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들로 인해 평균적인 인간들은 더는 두뇌를 훈련시킬 필요가 없어졌고 오히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복잡한 기계의 사용법을 익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기능이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많은 뇌과학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두뇌 사용을 의미하므로 인간의 두뇌능력이 근본적으로 감퇴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새로운 기계를 사용하고 SNS를 통해 소통하는 과정에서 뇌가 하는 일이 더 복잡해지고 뇌의 사회적 기능은 더 발달한다는 견해도 있다.
작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일반의 예상과 달리 인간의 패배로 끝나고 (이세돌은 개인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고 했지만), 올해 중국 바둑황제 커제가 알파고에게 도전한 대결은 ‘게임도 안 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신기술의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면서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제한적인 영역에서는 이미 기계가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시간은 기계의 편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어떤 전문가들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특정 영역을 넘어서서 기계의 일반적인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리라고 예측한다.
역사적인 바둑대결로 인해 최근 들어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인공지능의 역사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 역사적인 연원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으로부터 비롯된다. 앨런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암호시스템인 에니그마를 해독해서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의 파란 많고 비극적인 일생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도 소개되었다.
1950년 경, 지능을 가진 기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앨런 튜링은 튜링테스트라는 독특한 검증방법을 통해 기계도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계가 나타내는 반응을 인간이 나타내는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만약 제3자의 관찰에 의해 기계가 진짜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확실히 그것은 지능을 가졌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당시에 실제로 그런 테스트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트랜지스터가 겨우 상용화되기 시작하고 집적회로조차 발명되기 전인 그 시대에 인공지능의 개념을 창안해 내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창의적인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앨런 튜링이 생각한 튜링테스트가 실질적으로 구현된 것은 1990년 '뢰브너 상(Loebner Prize)'이 수여되면서 부터이다. 이 대회는 일종의 챗봇 대회로 발명가 휴 뢰브너와 케임브리지대 행동연구센터가 공동으로 고안한 새로운 방법의 튜링테스트다.
자신이 컴퓨터라는 사실을 숨기는 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프로그램에게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 자신이 인간임을 가장 잘 입증한 사람에게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 이라는 칭호를 준다.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2009년 인간 연합군 중 한 명으로 참가해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뽑혔다. 그가 2012년에 발간한 '가장 인간적인 인간'은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를 담았다.
그러나 아직 튜링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한 컴퓨터는 나오지 않았다. 2014년 튜링 사망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된 튜링테스트에서 영국 레딩대학에서 개발한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프로그램이 최초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하였다는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진’ 개발자들이 어수룩한 심사위원들을 교묘하게 속였을 뿐 아니라, 순수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인공지능 고유의 알고리즘으로 튜링테스트를 온전히 통과한 컴퓨터는 현재까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튜링테스트를 받지 않았을 뿐 의심받지 않고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불륜조장 사이트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애슐리 매디슨’의 챗봇(채팅 로봇)이다. 애슐리 매디슨 사이트가 해킹당하면서 회원들이 공개되었는데, 이 중 5%가 여성회원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회원들의 상당수가 인간이 아닌 챗봇으로 밝혀졌다. 수많은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여성회원들이 사실은 챗봇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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