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이 빛을 방출한다는 호킹복사는 정보역설이라는 골칫거리를 낳았고, 정보역설 해소는 40년 넘게 물리학의 과제가 되어 왔다. 출처: 네이처(Victor De Schwanberg/SPL)
블랙홀이 오히려 빛을 방출한다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호킹복사(Hawking radiation)’ 이론은 물리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블랙홀을 통해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만나는 양자중력 이론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킹복사는 ‘정보는 새롭게 창조되거나 소실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와 상충되면서 정보역설(information paradox)을 낳았다. 이것은 40여 년 동안 물리학자들의 엄청난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아나 알론소-세라노 박사 연구팀이 ‘숨겨진 정보’와 ‘일반화한 불확정성 원리(Generalized Uncertainty Principle)’를 통해 정보역설을 풀었다고 세계적인 과학전문 매체 뉴사이언티스트가 3일 보도했다. 연구팀의 논문은 출판 전 공유 사이트에 거재되었다.
연구팀은 아원자입자의 무질서, 즉 엔트로피가 혹킹복사에 의한 블랙홀의 정보손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의 이번 제안은 중력(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1974년 발표한 ‘호킹복사’ 이론은 획기적이면서 충격적이었다. 블랙홀은 빛을 빨아들이기는커녕 빛을 방출하고 결국 증발해버린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양자역학의 양자요동에 의해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입자-반입자가 생성, 소멸을 반복한다. 그러다 이들 입자 중 어느 하나가 블랙홀로 빨려들고 나머지 하나는 블랙홀 밖으로 탈출한다고 치자. 외부에서 보면 마치 블랙홀이 빛을 방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또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는 방출된 입자에 의해 에너지가 증가했으니 에너지보존법칙에 따라 반입자가 들어간 블랙홀 안은 에너지는 그만큼 감소해야 한다. 호킹은 모든 블랙홀은 질량이 점차 감소해 결국 증발(소멸)하며, 소멸 속도는 블랙홀이 작을수록 더 빨라진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호킹복사는 결국 블랙혹 속으로 들어간 물질은 빛으로 증발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물질에 들어 있던 정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소설책 ‘전쟁과 평화’가 블랙홀에 빨려들어갔다고 가정하자. 그 소설책은 질량(에너지) 덩어리로 녹아들어 결국 호킹복사에 의해 빛(혹은 입자)으로 방출된다. 그렇다면 소설책의 내용 즉 ‘전쟁과 평화’라는 스토리, 다시 말하면 소설책의 정보는 어디로 갔을까?
호킹복사는 열평형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기 대문에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블랙홀 안에 들어간 물질의 에너지는 복구할 수 있으나 정보는 회수할 수 없다는 게 호킹복사의 주장이다. 이는 ‘정보는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의 기본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킹복사가 낳은 성가신 유산인 정보역설(information paradox)이다.
호킹은 2015년 자신의 블랙홀 이론을 조금 수정해 ‘블랙홀에 빨려들어간 물체의 정보는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에 저장된다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다. 물체의 정보가 사건의 지평선 위에서 2차원 홀로그램 상태인 ‘슈퍼 트랜슬레이션(super translations)’ 상태로 보존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간 입자의 정보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결코 재현되지는 못한다. 정보역설을 해소해주지 못한 것이다.
정보역설 해소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강박감은 블랙홀 방화벽(firewall)이라는 괴상한 물리 개념을 만들어냈다. 2013년 캘리포니아대학(산타 바바라, UCS)의 물리학자 폴친스키 등은 양자 얽힘과 양자장론을 이용해 “호킹복사가 사건의 지평선에 격렬한 에너지 방화벽을 형성해 정보가 손실되지 않게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화벽 가설은 일반상대성이론에 명백히 위배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 다른 문제, ‘블랙홀 방화벽 역설(black firewall paradox)’을 만들어냈다. 물리학자들의 정보역설 해소를 위한 고난의 여정은 진행 중이다.
이번에 새로운 정보역설 방안을 제시한 알론소-세라노 박사 연구팀은 광자에 포함된 ‘숨은 정보(hidden information)’ 가설을 적용했다. 연구팀은 석탄 덩어리처럼 불타는 물체의 정보는 항상 각 광자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바로 그 정보는 광자에 내재한 고유의 엔트로피에 연유한 것이다. 바로 숨은 정보 가설이다.
이를 호킹복사에 적용하면, 블랙홀 밖으로 방출되는 복사는 항상 숨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며, 방화벽을 형성하지 않고 정보가 블랙홀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게 해준다.
블랙홀이 충분히 수축되면 양자중력(quantum gravity)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연구팀은 수축된 블랙홀의 엔트로피 문제에는 ‘일반화한 불확정성 원리(Generalized Uncertainty Principle, GUP)’를 적용했다. GUP 모델은 현재 많은 양자중력 연구에서 사용되는 유력한 제안 중 하나이다.
GUP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일반상대성이론(중력이론)에까지 확장한 원리이다. 양자역학은 ‘한 입자가 가진 두 가지 상보적인 물리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알려준다. 이에 비해 GUP는 이를 시공간(space-time)에 확장한 것으로 ‘특정 공간의 곡률과 그 공간이 가진 에너지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말해준다.
결국 GUP는 엔트로피와 연관된 시공간과 에너지와 관련된 양자중력 원리이다. 연구팀은 이를 적용해, ‘블랙홀이 증발하면서 점점 더 많은 호킹복사를 방출하겠지만, 방출된 입자는 엔트로피에서 그만큼 더 적은 정보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입자의 총 수량은 블랙홀의 초기 엔트로피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일반화한 불확정성 원리(GUP)에 따르면 물체는 플랑크 길이 이하로 더 작아질 수 없기 때문에 블랙홀이 수축되는 데도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블랙홀은 수축하다 완전히 증발되지 않고 작은 ‘양자 잔여 블랙홀(quantum remnant black hole)로 남는데, 이것은 블랙홀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물질이 들어왔는지에 관한 일부 정보를 여전히 갖고 있다.
이는 호킹의 주장과 달리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소멸)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방화벽의 존재도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알론소-세라노 연구팀은 호킹의 ‘블랙홀 증발’ 주장을 반박하면서 정보역설과 방화벽역설을 동시에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번 연구팀과 무관한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조나 밀러 박사는 “양자중력은 정말로 어려운 과제”라면서 “이번 연구는 정보역설을 푸는 많은 시도 중 매우 흥미로운 제안의 하나로 꼽힐 것”이라고 평가했다.
Reference: Arxiv,
arxiv.org/abs/1801.09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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