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용유담을 생각하는 모깃불문화제’의 공연이 8월 25일 저녁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길 5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옛 금계초등학교 운동장)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모깃불문화제는 지리산댐 계획으로 국가명승 지정이 보류된 용유담과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지역주민과 지리산 관련 시민단체가 2015년 창설한 문화행사다.
이날 행사는 용유담을 생각하며 걷기, 지리산포럼, 문화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지리산포럼은 ‘지리산 운동에 대한 짧은 생각’을 주제로 지리산사람들, (사)한생명, 지리산생명연대, 지리산이음, 함양시민연대, (사)숲길이 참여했다.
다음은 이날 지리산포럼에서 발표된 박두규 시인의 대표발제 '지리산 운동에 대한 짧은 생각' 전문이다.
지리산의 상징성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오래전 지금과 같은 문명 이전의 삶 속에서는 산이 생활의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산의 모든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길이었다. 산을 가다보면 가끔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이 보이는데 이것들은 다 예전에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다. 나무하러 다니고, 장 보러 다니고, 능선 너머 이웃동네를 넘나들던 삶의 일상 속에 있던 길이었다. 두 다리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민초들에게는 마을과 마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일상의 교통로가 바로 산길이었다. 지리산 주능선에 있는 화개재나 장터목도 그런 정황을 말해주는 지명들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일상으로 산을 오르내려야 했던 옛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산의 품성을 몸에 익히며 살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그런 일상생활 속에서 나무와 새와 물과 짐승과 벌레들, 그 숱한 생명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한생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나누며 돕지 않으면 하나의 마을이 이루어질 수 없는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몸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서로 나누고 모셔야만 살 수 있다는 삶의 진실을, 산을 오르내리며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체득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러한 산의 품성을 따로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일상 삶 속에서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지리산은 지금도 우리가 고운 심성과 순수한 영혼을 유지하기 바라면서 변함없이 산의 품성, 자연의 품성을 우리에게 전언하고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가 그 산을 버렸고 그 길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경쟁적인 삶 속에서 공격적으로 변하여 불신과 분노와 증오가 증폭된 일상을 스스로 살게 되었고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 살게 되었다. 포장된 폭력이 정당화 되고 존중과 배려의 마음들이 사라지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정과 부패도 당위적 정당성을 동조하면서 그렇게 사람들은 산의 품성을 잃고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본래의 품성을 잃어왔다. 자연의 순환질서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던 사람들이 인간을 위한 이기적인 인위적 질서를 만들어 살면서 생명공동체를 파괴해왔다. 이렇게 변한 현재 우리의 일상 속에서 지리산은 우리에게 자연의 품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명과 평화의 큰 상징으로 온다. 우리가 다시 산으로 돌아가 살 수는 없게 되었지만 지리산은 아직도 우리가 본래품성을 되찾을 수 있는 보루처럼 하나의 상징으로 그곳에 있다.
또한 지리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고향의 그리운 어머니 같은, 자비와 사랑을 상징하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옛적부터 저자거리에서 살 수 없어 세상을 등진 사람들을 품어주었고, 해방 전후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도피해온 자들을 받아주었고 또 그 속에서 희생된 자들을 위무해준 산, 지금도 인간사의 고통을 말하지 않아도 늘 삶의 푸른 대답을 보내고 스스로의 본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려주는 지리산, 언제나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산, 우리의 슬픔과 좌절과 절망, 그 모든 것을 품어내고 삭여내어 새 살을 만들어내는 산, 지리산은 이런 사랑과 자비의 산이고 우리가 잃어버린 본래 품성, 그 깊은 내면의 소리와 영혼의 소리를 들려주는 산이다.
지리산 운동
‘지리산 운동’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좀 낯설지만 지리산 권에 있는 많은 단체나 소모임,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영역의 사회 변혁적 활동과 삶들을 하나의 큰 지향으로 엮어낼 수 있는 ‘지리산 공동체’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 마디 거들까 한다.
21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 사회 변혁운동은 크게는 군부독재라는 반정부 투쟁 속에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을 통합한 전국 단위의 조직력을 가지고 명확한 하나의 전선에 복무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하면서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몰락하는 국면 속에서 변혁운동의 중심주체들이 흔들리면서 운동의 내용과 형식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이전(반정부 투쟁 당시)의 운동은 당장 눈앞의 위중한 현실(열사들과 동지들의 죽음 등) 속에서 오로지 현실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비민주, 반인권 반통일을 대상으로 한 투쟁의 현실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국적 상황을 보면 집단적, 지역적, 인적 구성에 따라 전선이 형성되고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운동의 폭이 좁아지고 조직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대안적 삶 운동
하지만 지리산권의 많은 단체와 소모임 또는 개인적 활동까지 포함해서 ‘지리산 운동’이라고 명명해본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여타운동과 크게 두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는 넓게 보면 ‘대안적 삶 운동’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 단체나 모임의 구성원들은 지역 주민들도 있지만 귀농, 귀촌인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대안적인 새로운 삶을 찾아 도시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삶터를 옮겨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관심을 갖는 운동영역은 환경, 생태, 생명, 평화, 공동체, 등의 문제의식을 바탕에 둔 대안문화, 대안문명 찾기라는 운동적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크게 보아 인간 소외나 인간성 상실이라는 자본 중심적 삶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지리산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활동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의식의 공통분모라고 할 것이다.
근대 500년은 모든 삶이 자본으로 집중되는 과정으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근대의 과정 속에서 추구해온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 뒤에 숨어 있던 인간의 탐욕이 근대화라는 명제 속에서 자연의 순환 질서를 깨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을 구체적 일상 속에서 일정부분 정당화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심성이 피폐되고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 삶의 목표는 선과 진실로부터 멀어졌으며 현대인들의 삶의 중심에는 물질이 자리 잡게 되고 사회생활은 보다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 갔다. 이렇게 물질만능주의 사고가 사회에 만연되면서 생명경시와 함께 개인의 평화 또한 심하게 위협받게 되었다.
‘지리산 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식 속에서 태동하였기 때문에 자본가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인본가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근본 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삶의 문화, 문명을 꿈꾸는 대안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인간성 회복 운동
‘지리산 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의 구조를 바르게 변혁하려면 ‘인간의 본래 심성을 되찾는 운동’과 함께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직이나 단체 모임들이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래 심성을 되찾는 노력을 통해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확장을 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회의 변혁은 어렵다는 생각들이 많은 사업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디가 식민지 상황에서 벌인 사탸그라하(진리파지眞理把持) 운동이 그러했다. 간디는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해방은 영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보다도 자신으로부터 해방(절대자유)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 사회의 변혁은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제도가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이 함께 확장되어야 진정한 변혁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디는 종교를 통해 확장된 개인과 사회의 의식을 토대로 비폭력 투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운동방식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는 성찰과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단군시절에도 그러했다. 그 시절의 사회적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이라는 말이 있다. 본성을 꿰뚫어 공덕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 심성을 되찾는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사회적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독이 가능하다.
성통공완이나 샤타그라하 모두가 개인의 자기완성과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인식하고 진행시킨 높은 의식의 사회적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완성의 노력과 사회적 실천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사회적 제도를 바르게 고치고 바르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그만한 역량과 수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운동’은 지금껏 우리 변혁운동사에서 특별히 거론된 적이 없는 ‘개인의 자기완성’이라는 측면을 사회적 실천운동과 동등한 무게로 병행시키는 운동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지리산 운동’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과 사회적 실천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기존의 우리 사회운동 방식보다는 한 단계 진화된 운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문제를 자본의 관점과 방식으로 풀지 않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순환할 때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자연 중심의 사유와 철학을 바탕에 두고 풀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리산 자체가 모든 생명의 집합체인 것처럼 그래야만 개인과 전체의식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러한 토대에서의 사회적 실천이 올바른 사회변혁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85년 『남민시(南民詩)』로 등단했으며 1992년『창작과 비평』 가을호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과꽃 편지』, 『당몰샘』, 『숲에 들다』, 『두텁나루숲, 그대』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 『지리산, 고라니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문화신문 『지리산 人』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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