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자전거 사고(후편)

조송원 승인 2018.07.21 16:26 | 최종 수정 2018.07.21 16:52 의견 0

음주 자전거 사고(후편)

눈을 떴다. 얼굴이 쓰리고 아리다. 아차, 어젯밤? 박차고 일어서려니, 왼발 큰 발가락이 욱신거린다. 걷기가 힘들다. 서재엔 거울이 없으니, 절뚝거리며 위채로 올라가 몸거울 비춰보니 가관이다. 피 칠갑에다 퉁퉁 부어올라 간밤에 헐크 얼굴로 변했다.

그래도 큰 판은 안 벌어졌네. 사대육신은 멀쩡하니 말이다. 부기浮氣야 내리면 되고, 얼굴에 생채기면 어떠랴. 얼굴 파먹고 살 일도 없는데 뭐. 하지만 자전거와 소지품은?

얼핏 자전거는 온전해 보인다. 옮기려고 밀어보니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앞바퀴 림이 휘어졌다. 무언가를 세게 박은 모양이다. 자전거가 이 정도면, 몸뚱이는 허공으로 날았을 것인데, 그래도 어디 부러진 데 없으니 악운이 셌구나. 바퀴가 구르지 않는데 어떻게 타고 왔을까? 오는 어중간에 사고가 나고, 그 이후엔 아마 메고 왔는가 보다. 제정신이었다면 버리고 왔겠지, 자전거가 뭐라고. 하지만 자전거를 갖고 집에 가야 한다고 맑은 정신에 이미 두뇌에 프로그래밍된 대로, 술 정신에 부득불 애면글면 끌다가 메다가 하며 집에까지 왔겠지.

휴대폰은 제자리 손어림께 있고, 메모지와 볼펜은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다. 안경도 항상 두는 자리에 있긴 한데, 다리 하나는 본체와 분리돼 있다. 안경알도 오른쪽은 아스팔트에다 갈음질을 했는지 희뿌옇다. 그 난리에도 애오라지 챙겨는 왔구먼.

확인을 마치니 맥이 탁 풀린다. 삭신이 쑤셔온다. 발가락이 아파 운신도 어렵고 괴기스런 모습으로 약방에 갈 수도 없다. 하기야 아침 6시, 날은 밝았지만 문 연 약방도 없다. 물론 몇 백 걸음을 팔 힘도 없다. 다시 누웠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유일한 이동수단인 자전거는 망가졌고, 약을 먹고 바르고 해야 하는데, 난감하다. 좀은 서글프구나. 혼자 사는 사람이 몸 아플 때 옆구리가 가장 시리다고 했던가. 제기랄, 제 손으로 제 술 먹고 나자빠졌는데 무슨 이런 감상 타령이더냐.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窮則思 思則通).

“오빠, 많이 안 다쳤어? 들은 것보다 더 심하네.” 여동생이 서재 문을 열고 들이닥친다. 전화 받자마자 바르는 약, 먹을 약 바리바리 지어 댓바람에 100여 리 길을 달려 온 것이다. 얼마 전 엄마까지 돌아가시자 여동생은 홀몸 오빠를 반찬이며 옷가지며 제 새끼들보다 더 챙긴다. 고맙지. 더욱이 여동생이 엄마나 아내보다 더 좋은 건, 아내보다 잔소리가 적고 엄마보다 걱정이 덜하다는 점이다. 어쨌건 이런저런 주위 덕택으로 그럭저럭 혼자서 버티며 살아낼 수 있는 것인가.

서정욱의 미술토크 '반세트 반 고흐' 편. 자화상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유튜브-서정욱의 미술토크 캡처]
서정욱의 미술토크 '반세트 반 고흐' 편. 자화상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유튜브-서정욱의 미술토크 캡처]

약도 먹고 발랐겠다, 좀 우선해지니 어제 저녁 밥자리 약속한 친구가 생각났다. 이 흉측한 모습으로 어디를 가겠는가. 통화를 마치고 끄집어내 놓은 책들은 제자리에 꽂는 둥 서가정리를 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친구가 한달음에 차를 몰고 왔다. 걱정해 주는 눈빛에 가슴이 쏴아 하다. 병원에 가야 한단다. 여름에 상처가 덧나면 얼굴을 어찌하겠냐며 막무가내다. 여동생도 병원을 가자는데 괜찮다고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친구의 채근에 생각해 보니 진물 흘리는 얼굴이 상상된다. 끔찍하다. 낯 낼 일이야 뭐 있겠냐만, 그래도 풍경을 미화하지 못할망정 추화醜化하는 면상이어서야 어디 쓰겠는가.

“휴대폰 좀 주세요.” “왜요?” “찍어둬야 다음부터는 사진 보면서 음주 자전거는 안 탈 거 아닙니까.” “옜소. 잘 나오게 찍어 보시오.” 의사는 방향을 달리해 가며 여러 장을 찍었다. 소독 솜으로 핏덩이를 닦아내니 오른 눈썹 주위로 찢어져 있었다. 여느 부위와는 달리 얼굴이라 상처 자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기워야 했다. 촘촘히 13바늘 꿰맸다.

“이만한 게 천행인 줄 알아야 돼. 우리는 이제 이팔청춘이 아니야. 환갑이라고 환갑! 안경이 그 지경인데 눈 안 다친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인 줄 알아. 네가 효자라서 죽은 모친이 돌본 덕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가 걱정과 한심함을 반반 섞어 지청구를 먹였다. 달포 전 엄마가 구순 일생을 정리하고 멀리 가셨다. 내가 효자였다고? 지금 이 모습을 엄마가 봤다면? 불효도 이런 불효는 없으리라. 죄스럽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못해서 죄스러운 게 아니다. 흔히들 모름지기 자식은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이름을 높이는 것으로 효가 완성된다고 했다.¹⁾ 그러나 어폐語弊가 크다. 『효경』에 분명히 그런 말은 있다. 문제는 우리가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입신양명에는 알짬이 빠져 있다. ‘입신행도立身行道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에서 ‘행도’, 곧 떳떳한 도리를 행하는 것이 빠져 있는 것이다. 곧 떳떳한 도리를 행하는 것이 효의 전제라는 말이다. 하여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은 최고의 출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을 한 전 대통령과 전 대법원장은 효와 몇 십 광년의 거리가 있는 것이다.

몸을 온전히 지켜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란 말, 이 나이가 되니 비로소 가슴에 와 닿는다. 유가儒家에서는 항상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마음으로써 몸가짐을 삼가는 거경居敬을 수양의 공부로 삼았다. 하여 몸가짐을 공경히 한다는 경신敬身을 했고,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가는 신독愼獨을 했다.

평소 마음을 다잡고 평심을 유지하며 몸단속을 했다. 결코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함이다. 이 불초자不肖子는 순간적으로 마음을 놓았다. 방심한 것이다. 술 몇 잔에 방자해지는 마음, 이게 내 인격의 현주소인 것이다. 심히 부끄럽다. 허탈한 자의식에 저 하늘을 본다.

우리 은하에만도 약 2천억 개의 별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태양과 유사한 형태를 띤 별들의 수는 500억 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지구와 유사한 행성들이 최소한 140억 개 정도는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구와 유사한 크기로 태양의 크기와 비슷한 별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최적의 생명거주가능 지역(Goldilocks zone)에 존재하는 행성들이 수십억 개나 된다는 사실이 최근의 한 연구로 밝혀졌다.²⁾

광년을 단위로 하는 공간에서 억년으로 헤아려야 하는 시간 가운데서 100년을 살지도 못하고 티끌만 못한 육신. 거기에 깃들인 마음 하나 다스릴 수 없더란 말인가. 즐기면 얼마나 즐기며, 슬프면 얼마나 슬프랴!

主人夢說客(주인몽설객) 주인이 꿈을 나그네에게 말하는데

客夢說主人(객몽설주인) 나그네도 제 꿈을 주인에게 말하네

今說二夢客(금설이몽객) 지금 꿈 이야기를 하는 두 나그네

亦是夢中人(역시몽중인) 또한 꿈속의 사람이네³⁾

※1)『효경』, 「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毁傷孝之始也. 立身行道揚名於後世以顯父母孝之終也」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훼상효지시야. 입신행도양명어후세이현부모효지종야. 몸·머리털·피부는 부모한테 받은 것이니 감히 몸에 상처를 내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출세하여 떳떳한 도리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 부모의 이름을 드러나게 함이 효의 끝이다. 2)「Earth-like planets」, 『The Korea Herald』, 2018년 7월 13-15일. 3)서산대사의 「삼몽사三夢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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