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과 독일전이 열리던 지난 6월 27일 독일 베를린. 수만 명의 독일인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에 독일 국기를 그리고, 독일 유니폼을 입고 광장과 맥주집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하고 있었다. 경기 후반에 우리가 두 골을 연속해서 넣으면서 독일 팀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독일인들의 절망은 과장 없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이었다.
놀라운 것은 영국인들의 반응이었다. 경기 직후 영국 언론은 일제히 독일의 패배를 고소해하는 보도로 대서특필하였는데, 심지어 조 4위를 한 독일 팀 성적표에 가위 표시를 한 절단선을 그려놓고선, “오려두었다가 우울할 때면 꺼내서 즐기세요” 라는 조롱까지 등장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독일 팀 패배가 확정되자 “한국 고마워”, “한국 사랑해”라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도대체 영국과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영국의 경우 독일이 승리할 경우, 준결승 이후 독일과 대결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차분한 계산에 기인한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아예 지역 예선에서 탈락해서 월드컵에 출전도 못했기 때문에 독일 팀의 패배는 네덜란드 팀 성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현상이라고 한다.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락’을 지칭하는 독일어이다. 일부에서는 ‘쌤통심리’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우리말로 딱 떨어지는 번역어는 없다. 한편으로 질투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질투는 ‘타인의 행복으로부터 느끼는 불행감’이기 때문에 샤덴프로이데와 대칭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¹⁾
하필이면 같은 날, 같은 시간대이다. 한 쪽은 병원이고 다른 한 쪽은 잔치집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나, 난감하다. 그렇지, 만학에게도 연락이 닿았겠지. 바로 전화를 넣었다. 기별은 받았단다. 그러나 자신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만학이 집으로 차를 몰았다.
“어쨌건 고등학교 동기들인데, 어느 쪽이든 한 쪽에는 얼굴을 내밀어야지 않겠나?” 찻물을 데우랴, 녹차를 우려내랴 부단히 움직이면서도 조용한 만학한테 동행을 채근했다. 그는 내 불알친구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등학교 동기 두 명이 선거구를 달리하여 입후보했다. 이미 2선 경력의 동기는 3선 도전에서 낙선했고, 처음으로 군 의원 선거에 나선 동기는 당선되었다.
선거란 참 요물이다. 선거일 뒷날, 당선자와 낙선자는 하루 시차로 어제 그 사람이 아니다. 행선지가 천국과 지옥이다. 내 동기 낙선자는 병원으로 갔고, 당선자는 잔칫상의 개선장군이다. 두 친구의 당적이 다르다. 그래서 아마 병문안이나 식사자리에 대한 사전 조율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딱히 어느 쪽과 친분이 더 두텁지도 않다. 둘 다와 그냥 동기로서 데면데면한 사이만 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동기인데 병문안이든 축하 식사자리든 한 쪽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걸 느끼고 있다.
“굳이 가려면 축하 자리에 가라.” 만학이의 선택은 뜻밖이었다. 평소 그의 마음씀씀이로 가늠해 보면, 낙선자 곧 약자를 위로하라고 할 줄 알았다. 내가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 6개월 전 너랑 군 의원하는 그 친구 만난 적이 있잖아. 내가 그 친구에게 뭐라 말하던?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잖아. 몸보다는 마음의 병으로 링거 맞고 있는 그 친구를 위로랍시고 지금 찾아간다면, 도움이 될까? 아마 상처에 소금 뿌리는 짓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아뿔싸,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구나. 그때 나도 만학과 같이 그 친구에게 박수 받을 때 떠나라고 충고했다. 2선이면 족하다, 명예도 그만하면 됐고, 할 일도 할 만큼 했다. 더 욕심내어 뒷모습 추해지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우리의 의견을 개진했다. 우리의 생각이 일반 주민들의 뜻과 아마 같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허심하게 이야기해 달래서 한 말이었다.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선한 친구 축하 자리에 같이 가자. 촌에서 같이 살면서 자주 얼굴 보고 사는데, 모른 척하기에는 뒤가 좀 켕긴다. 그래도 나 혼자 가기에는 뭐하고······.”
지역에서 군 의원은 무시할 수 없는 벼슬이다. 당선한 친구는 토건업으로 몸을 세웠다. 관급공사로 터를 잡았다고들 한다. 학교 다닐 때 저나 나나 고만고만했는데, 빌딩에 그의 회사 간판을 달고부터는 격이 달라졌다. 군민郡民 봉사활동에도 그는 맨 앞줄에 섰다. 나야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니 대관對官 업무가 있을 턱이 없다. 혹몰라 태풍에 비닐하우스라도 날아가면, 도움이 되려나? 이런 얍삽한 계산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미안하네. 그 자리엔 차마 못 가겠어. 그럭저럭 잘 지낸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응당 축하해 주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명색이 글줄이나 읽는 나까지 그런 자리를 챙기면 사회발전이 저해돼.”
뜨악하다. 발뺌하는 구실치고는 너무 거창하다. 선거철만 되면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며 한 자리 차지하려는 불나방들이 싫다고 하면 불참석의 이유로서 족하다. 한데 사회발전이 저해된다고? 너무 억지스럽다. 차라리 질투심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소 만학의 언동거지가 이 정도로 얄팍하지는 않다. 나는 못마땅해 하는 내 표정으로 변명을 요구했다.
“군청의 8,9급 젊은 공무원들이 말이다, 국장까지 승진해야 하겠다고 뜻을 단단히 세우면 어떻게 되겠나? 군수나 국·과장의 어떤 부당한 명령에도 복종하겠지. 그들의 추잡한 갑질에도 눈을 감을 것이네. 잘 보여야 하니. 그런데 문제는 말이다. 친구나 지인들이 그런 과정은 안중에도 없이 과장, 국장 승진한 사람에게 축하하는 데 극성이지. 결과가 모든 걸 정당화하는 게 우리 사회의 만악萬惡의 근원이거든. 나는 6급으로 정년퇴직하는 공무원을 더 존중한다네.” 만학은 좀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이번에 당선한 그 친구는 토건업이 제 본업이거든. 졸업 후 토건만 하던 친구가 무슨 공무를 보겠다고. 관급공사 짬짜미 풍설이 파다한데. 정말 지역민 편에 서서 일을 잘할 수도 있어. 그러나 축하는 임기 끝나고 나서 의원직 수행 결과로 해도 늦지 않아. 당선 자체, 승진 자체를 영예롭게 생각해 주니, 도나캐나 올라만 가려는 것 아닌가. 우리의 축하가 그 과정의 패도悖道까지 승인해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네.”
만학의 말을 듣다보니 문득, 모처럼 다녀간 아들이 요즘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한 ‘소확행’이 떠올랐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준말이라고 했던가. 거창하고 화려하나 오랜 기간 준비를 해야 하는 이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일상과 주변에서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작은 기쁨을 찾는 생활이란다. 내가 아들에게 들은 말을 하자, 만학은 그와 유사하게 유행하는 ‘욜로(Yolo)’라는 단어도 이야기했다.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문장의 줄임말이란다. 그런데 말이다, 하면서 만학은 덧붙였다.
“요즘 젊은이한테 유행하는 ‘소확행’은 ‘헬조선’의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지. 그러나 인생은 본디 소확행이 아닐까? 등정의 과정일 뿐이지 정상을 밟음이 삶의 목적일까? 그 다음은 뭐할 건데? 인생은 한 번뿐이지. 그렇지만 오늘 하루도 한 번뿐이지 않나.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는 이치와 같지. 오늘 강물은 어제 흘러간 강물과는 다르지.” 만학은 찻잔을 치우려다 다시 찻물을 데웠다. 내가 꽤나 진지한 말상대 노릇을 한 터였을 것이다.
“경위야 어찌됐건 요즘 젊은이들이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주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네. 경제나 사회발전의 결과물을 독점한 소수들의 갑질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거든. 그렇지만 역사적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짝이 있어야 돼. 우리 아재들이 과정을 챙겨보지도 않고, 승진했다 당선됐다 하면 축하해 주는 작태를 그만 두는 게 그 짝이 될 것이네.”
제법 시간이 흘렀다. 찻물이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벙벙하다. 만학이와 동행하기에는 진즉에 틀려먹은 일이다. 만학이의 말이 어쩜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활동도 없이 골방에 틀어박힌 백면서생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만학이와 작별 악수를 하고 동구洞口로 나와 간선도로 앞에서 차를 세웠다. 왼쪽으로 가면 병원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축하 식사 자리 식당이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오해 받느니 환영 받는 축하 자리가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1)신현호(데이터 분석가), 「샤덴프로이데 현상」. 『한겨레신문』, 2018년 7월 14일.
<칼럼니스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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