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장해서 이건희 차명 계좌 TF를 만들고, 그것 때문에 25년 만에 법 해석이 바뀌었잖아요. 이제는 차명 계좌도 세금을 걷고, 과징금을 내게 되었습니다(박용진 의원은 작년 2월 차명 계좌의 실소유자에게 소득세를 부과·징수하도록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것 때문에 1,093억 원의 세금이 걷히게 되었으니 박용진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¹⁾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단은 지난 7일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선거연령 만 18살로 인하, 의원정수 20%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민심과 표심을 왜곡하여 반영하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응당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국회의정 정수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연동해 의석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 1표를 던지는 ‘1인2표’ 투표방식으로, 소선거구에서의 당선 숫자와 무관하게 전체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곧 전체 의석은 우선 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된다. 그 다음, 각 정당은 자신이 배분받은 의석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먼저 채우고, 모자라는 부분은 비례대표로 채운다.
예컨대 전체 의석이 300석일 경우, A당이 30%의 정당지지를 받았다면 A당에는 무조건 90석이 배정된다. 그리고 A당이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70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다면 배정된 90석에서 지역구 당선자 70명을 뺀 20명을 비례대표로 채우게 된다. 설령 지역구 당선자가 95명이면 그건 그대로 인정된다. 그러므로 의원 정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는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란 게 있다. 그 법은 정치와 정치인, 곧 국회의원을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본다. 하여 그들의 숫자와 월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과 국회의원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주의 세 기둥 중 하나인 입법부에 대한 불신은 지극히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국회의원을 누가 뽑았는가? 국회의원을 불신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정치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우리 기대에 부응할 시스템으로 바꿈을 진지하게 고찰해야 한다.
국회의 대표적인 권한이 국정감사와 법안·예산 심의이다. 이 권한을 행정고시 출신의 고위 관료와 사법시험 출신의 법관들에 맡기는 게 더 나을까? 우리의 국민정서법에 대한 반성도 철저해야 한다. 우리는 피 같은 우리의 돈, 예산 낭비에 분노한다. 그러나 나라 전체로 봐 덜 시급한 우리 지역구 예산에는 환호할 뿐, 예산 낭비라며 분노한 적이 있는가.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연동형비례대표제와 거기에 연동되는 국회의원 정수 증원이 꼭 필요한 이유가 또 있다. 의식 있는 시민들 대부분은 지금껏 투표소에서, ‘최선’이 아니라 ‘차악’ 내지는 ‘차선’을 선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편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란 이순자의 망발에 자유한국당은 침묵하고 있다. 그 당의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산안법이 이대로 가게 되면 대한민국 산업계 전체를 민주노총이 장악하게 된다’, ‘원청의 책임이 무한정 확대되면 기업 경영 존립 기반이 와해된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 저항했다. 또 자유한국당은 투명회계를 하라는 것, 교육비는 교육에만 쓰라는 것, 어긴 이들은 엄벌하는 것인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정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최선일 터였다.
문제는 차악의 선택으로서는, 최악을 막을 수는 있지만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차악의 국회의원들로서는 적폐를 일소할 수도, 친서민 정책을 시행할 수도, 진보의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현행 선거법은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을 수구와 보수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현재의 여당, 곧 더불어민주당도 자유한국당보다는 ‘진보적’이지만,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보수적’이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비정규직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기업살인처벌법’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뜨거웠다. 작년 초 정부의 산업안전법 개정안에는 사용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하한선이 마련되었지만,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이 조항은 사라졌다. 재계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산재 사망자는 2016년 2040명에서 2017년 2209명으로 10% 가까이 늘어났다. 주 5일 노동 기준 매일 9명이 산업재해로 숨지는 상황이다. OECD 2015년 통계에서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영국이 0.4명이고, 한국은 영국보다 20배 이상 많은 10.1명이다. 영국인이 한국인보다 안전수직을 잘 지켜서가 아니다. 제도의 문제였다. 영국은 2007년 ‘기업 과실치사 및 살인법’을 제정해 기업부주의로 노동자가 숨지면 이를 범죄로 보고 상한 없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한 덕분이다.
기업살인자처벌법에 반대하는 수구 정당과 그 법에 미온적인 보수 정당과 그 법 제정에 적극적인 진보 정당이 있다면, 민주시민은 ‘차악’과 ‘최선’ 사이에서 고심해야 할 것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와 의원 정수 증원만이 최선을 선택할 수 있고,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많을수록, 그들의 특권이 적을수록 민주주의는 더 성숙하게 된다. 의원 특권을 경계하면서 의원 수를 줄이자는 국민정서법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수가 적으면 1인의 권력이 커지고, 수가 적으니 로비하기 쉽다. 하여 우리가 그토록 못마땅해 하는 부패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가 많으면 1인의 권력은 작아지고 입법부 전체가 강해져서 결국 시민들에게 이익이다. 의원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으면, 부자만 정치를 할 수 있게 된다. 의원의 정당한 보수는 가난한 이들의 정치 참여를 위해 싸워온 역사가 만들었다.²⁾
세계 기준으로 우리의 국회의원 숫자가 아주 적은 이유를 이해하자. 정치를 하지 않고 통치하고 싶었던 군사정권이, 간섭하는 시어머니가 적을수록 좋은 재계와 고위 관료들이 ‘정치혐오 프레임’을 씌운 결과임을 똑똑히 이해하자.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국회의원 1명당 약 3만 명, 프랑스는 7만 명, 독일은 12만 명의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 우리는 17만 명을 대표하고 있다. 19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원 수는 200명이었다. 당시 인구는 약 2천만 명이었다. 5천만 명인 현재 인구를 감안하면 국회의원이 500명 수준이다.
물론 스웨덴 국회의원은 세비 없이 소정의 월급을 받는다. 관용차가 없어 자전거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 이는 덴마크나 스위스 국회의원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와 독일 국회의원보다 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상적으로, 국회의원의 숫자는 제헌의회 수준으로 늘리고, 그들의 특권은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가 타매해 마지않는, 특권을 남용하는 300명보다 검소하고 특권의식 없는 유능한 일꾼 500명이 더 낫지 않을까?
우리의 상전이 아니라 우리가 나설 수 없는 공적인 일을 대신 해주는 일꾼은 많을수록 좋다. 그렇지만 우리가 국회의원을 상전으로 뽑아 그들에게 부림을 당할 것이냐, 국회의원을 일꾼으로 뽑아 그들을 부릴 것이냐, 는 결국 우리 손에 달린 문제이다.
※1)지승호, (인터뷰)「한유총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통점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인물과 사상』(2019년 1월호), 27쪽. 2)허승규(녹색정치 활동가), 「박정희식 정치혐오 국민정서법」, 『한겨레신문』, 2018년 1월 7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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