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상앙)은 신법新法을 따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수도의 남문에 긴 장대를 세워놓고는 누구든지 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긴 사람에게 황금 열 덩어리를 준다고 명령했다. 사람들은 손을 한 번 움직여 큰 금덩어리를 얻으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아 장대를 옮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금을 황금 쉰 덩어리로 올렸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호기심에 장대를 북문으로 옮겼더니, 정말도 상금을 타게 되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나라의 명령에 의심을 품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태자가 법을 범하자, 위앙이 태자의 스승인 공자건公子虔과 공손가公孫賈를 처벌하자, 백성들은 비로소 신법을 따랐다.
상앙商鞅이 엄격한 형벌을 쓰고 혹독한 법을 집행하자, 진나라는 잘 다스려졌지만 효공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여 혜왕惠王이 되자, 상앙을 체포하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상앙은 몸을 피하여 관하라는 곳에 와서 그곳 민가에 투숙할 것을 청했으나, 그곳 사람들은 그가 상앙인 줄도 모르고 거절하며 말하기를, “상자商子의 법률에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유숙시키지 말라 하옵니다. 만일 이것을 어긴 자는 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당신을 맞이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상앙은 자기가 만든 법률에 죽게 되어, 혜왕에 의해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저서 『절제의 형법학』(박영사, 2014)의 「책머리에 부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자의 사상은 ‘절제(節制)의 형법학’, ‘겸억(謙抑)의 형법학’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실정 형법과 판례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저자의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형법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예상된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형법 현실에서 형법의 오남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다. 이 점에서 저자의 작업은 새로이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다. 법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이 아니라 가치지향적 학문이다.(중략)
근래 몇 년간 학자로서 현실 정치에 깊이 개입했다. 좋은 법이 가능하려면 좋은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문의 영역과는 달리 정치의 영역은 반대파는 무조건 ‘적’으로 규정하고 칼날을 들이대는 곳임을 새삼 느꼈다. 온갖 저급·저열한 흑색선전, 허위중상, 무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저자의 작은 참여로 과잉우경화된 정치지형(地形)이 조금이라도 ‘정상화’되는 쪽으로 변화했다면 그것으로 위로를 얻을 것이다.
‘검찰개혁’이란 시대적 소명을 떠안고 개혁의 최선봉에 섰다가 만신창이가 된 조국의 심중은 지금 어떠할까? 우리 역사가 증명하듯, ‘진보 학자’나 ‘개혁적 인사’는 거의 늘 패퇴했다. 역사 발전이란 허구인 것인가? ‘기득권’이란 주구장천 번성할 운명이고, 그에 대한 도전은 늘 일패도지一敗塗地할 숙명인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를 다시 비판했다. 전주교대에서 연 시민학교 대담에 참가해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의 80대 노모를 소환 조사하고 딸을 기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조국 일가족의 혐의점에 비해 무지무지하게 잔인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자녀 입시 의혹도 지적했다. 그는 “이 의혹은 국가 지원금의 사용과도 관련된 데다가 나 원내대표가 서울대 교수에게 청탁 전화를 한 사실까지 확신됐다”면서 “검찰이 정치적 편향성을 감추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사건을) 배당조차 하지 않는다고”고 공격했다. 유 이사장은 “검찰이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며 “마치 전두환 신군부 때를 보는 듯하다”고도 했다.**
‘검찰개혁을 막기 위해 조 장관을 마구잡이로 수사한다’고 판단한다면 확증편향일까? 검찰개혁을 막기 위해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일념에 조국 본인과 무관한 일가족을 먼지 터는 검찰이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다고 판단하는 게 더 합리적인 사고가 아닐까?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마침 경상대학교 정치경제학과 강사 하태규의 분석은 참고할 만하다. 이번 사태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더 큰 문제를 제기했다. 조국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적합했는지와 관련된 문제다. 보수주의 쪽에서는 본인과 가족의 불법행위(아직 확정된 것이 없음에도)로 안 된다는 것으로,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의 원리를 내세웠다. 자유한국당과 다수 언론, 20대 일부와 광화문 촛불이 해당된다. 자유주의 쪽에선 가족과 상관없고 본인의 불법행위, 엄격히 말하면 직무 범죄만 아니면 된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집권세력과 서초동 촛불이 해당된다.
진보주의의 경우에는 법적·절차적 정당성 외에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관점이다. 그래서 조 전 장관이 사퇴했어야 하고 도덕적 문제는 교육개혁, 언론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와 정의당 등이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쪽은 문제의 핵심이 도덕적 문제를 넘어 계급 문제라는 관점이다. 특목고와 ‘스카이’ 대학을 들어갈 물적, 인적, 네트워크적 능력을 지니고 노동소득이 아니라 자본소득을 통해 부와 위신과 특권을 누리는 집단이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지위도 대를 이어 재생산하고 있는 현상을 계급으로 설명해야 하고, 따라서 계급 폐지 문제가 이번 사태의 핵심 의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실에서 이런 입장을 제시하는 세력은 안 보이는 것 같다.***
어떤 입장에 서건, 편파적인 검찰권의 오남용임에는 틀림없다. 문득 여기서 심재륜 전 고검장의 ‘수사십결搜査十訣’이 떠오름은 자연스럽다.
1.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 2.피의자를 굴복시키려 들지 말라, 승복시켜라. 3.끈질긴 수사가 능사가 아니다. 외통수 수사는 금물이다. 4.상사를 적으로 만들지 말라. 5.수사의 곁가지를 치지 말라. 6.독이 든 범죄정보를 피하라. 7.실패하는 수사는 하지 말라. 8.수사는 종합예술이다. 절차탁마하라. 9.언론과는 불가근불가원 하라. 10.칼에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자신도 다친다.
제1결 ‘찌르되 비틀지 말라’는 무슨 뜻일까? 수사를 받는 사람들은 자유, 재산, 명예 등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되므로, 그 고통을 헤아려서 어느 정도 명예는 지켜주고 벼랑 끝으로는 몰지 말고, 잔인한 수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지막 제10결은 ‘칼에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자신도 다친다’이다. 칼자루를 들었다고 마구 휘두르고 다니다가는 언젠가 그 칼에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지금 휘두른 칼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서 그 스스로가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자중해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다.
누구나 조직을 떠나면 한갓 필부일 뿐이다. 성접대와 금품 등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 받았다. 김 전 차관은 공판에서 “집사람조차 나를 안 믿는다”며 오열했다. “다리를 겨우 펼 수 있는 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 조그만 독거방에서 잘못된 만남으로 인한 공직자의 잘못된 처신을 뼈저리게 자책하며 반성 또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소 사실은 정말 아닌 것 같다. 평생 수사하면서 살아왔지만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 돈이나 재물을 탐하면서 공직생활을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재판부에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선처를 구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수사십결을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들어만 있어서는 손발을 움직일 수 없다. 찌르되 비틀지는 않았는지, 자문하는 겸양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진짜로 칼에는 눈이 없다. 눈 없는 칼이 누군들 못 찌르랴. 그 칼끝의 향방에서 자신만은 비껴서 있다고 믿는 청맹과니가 아니길 빈다.
*상앙 지음/김영식 옮김, 『상군서商君書』(홍익출판사, 2000), 17~19쪽. **박용근, 「유시민 “조국 수사 잔인 ··· 전두환 때 보는 듯” 또 독설」, 『경향신문』, 2019년 11월 4일. ***하태규(정치경학연구소 프닉스 상임연구위원. 경상대 정치경제학과 강사), 「검찰 개혁과 계급 폐지가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2019년 10월 31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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