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철학하다 : 어떻게 데이터는 지혜가 되는가
지은이 : 장석권(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서평자 : 손화철(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부교수, 철학 박사) [ phtechson@gmail.com]
실체적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생태계 규모의 지능을 구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인간이기에 감히 시도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자만은 금물이다. 현 단계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숨
겨둔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237p.)
지혜로운 미래 기술을 향한 첫걸음
바야흐로 정보의 시대요, 빅데이터의 시대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몇 년 전 시시콜콜 일상과 단상을 비롯한 온라인 활동을 엮어내고, 결국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알파고가 이세돌 9단보다 바둑을 더 잘 두고, 인공지능 의사라는 IBM 왓슨은 아마도 웬만한 의사들보다 오진율이 낮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무사고 운전자가 아니지만, 사람보다야 훨씬 낫다. 이런 시절에 사람의 자리가 남아 있기는 한가?
저자의 판단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 책은 데이터, 정보, 지능, 지혜로 이어지는 일련의 단계가 있음을 전제하고, 그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간의 지혜를 충분히 활용한다면 새로 도래하는 기술사회에 제대로 대처할 것이라 믿는다. 그 낙관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낙관의 구체적인 내용과 바람직한 미래로 가는 길을 어떻게 닦을지에 대해서는 독자의 숙제로 남기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깔끔한 구성과 풍부한 정보다. 데이터, 정보, 지능, 지혜로 전체 내용을 구성한 것은 데이터 기반의 기술 시대에 대한 설명과 저자 자신의 제안을 효과적으로 함께 제시할 수 있는 좋은 틀이다. 이 틀 안에서 저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에서부터 경영 전략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물 흐르듯 연결해서 제시한다.
기술적인 설명은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세하고도 친절하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함의를 분석하는 부분은 명쾌하다. 바로 몇 달 전까지 이루어진 기술적 성취와 그 기원에 대한 정보까지 전달하는 데에는 탄복을 금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지배할 미래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일독할 가치가 있다.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하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엇갈린 평가들이다. 저자가 빅데이터가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해상도 사진기와 같다고 할 때는 이 기술이 ‘실체적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지만,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이 블랙박스가 되어 사실상 투명성을 상실한 것으로 볼 때는 그 판단을 일단 접어야 한다.
정보가 언제나 해석된다는 말은 공학자나 결정론자가 흔히 무시해 버리지만 매우 중요한 진실이다. 그런데 정보가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왜곡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빅데이터 분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한편으로는 방대한 데이터가 모여 드러내는 실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 관련 기술들의 발전에 따른 인간의 노동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초지능의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용한 정도의 기술이 대규모 실업을 야기한다는 사실은 이미 유수의 연구들을 통해 예견되고 있다. 한 개인이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답게 살아남는 문제는 전반적인 일자리 감소의 문제와 꼭 겹치지만은 않는다. 저자는 앞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뒤의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은 기술발전의 결과로 나타날 중립적 의미의 ‘포스트 휴먼’ 보다는 ‘호모 소포스’를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의 통찰에 비하면 사소하다. 특히 인공지능의 시대를 수동적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을 고민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인공지능을 비롯한 어떤 기술을 개발하든 그것이 인간의 통찰의 통제하에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찰은 자동으로 현실이 될 수 없다. 저자가 일종의 알고리즘이라고 표현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선한 의도를 가진 호모 소포스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이는, 저자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 갈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의 시민들이 그 정치적인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호모 소포스를 길러내는 교육과 그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토론하는 장이 필요하다.
이렇듯 데이터가 재앙이 아닌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과 복잡한 장치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지난한 과정의 첫걸음을 떼는 시작점이 아닌가 한다.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철학박사>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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