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교수의 호스피스 이야기】 (11) 호스피스에서 임종기의 의사결정

박선숙 승인 2022.10.07 12:34 | 최종 수정 2022.10.10 18:42 의견 0
황혼 [픽사베이]
황혼 [픽사베이]

모든 인류는 역사를 인식하고 생성과 소멸을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거리감과 간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의식이 없는 존재에게 있어서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자신의 고유한 경험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의 현재로부터 미래를 규정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신의 인격적 자유의 토대가 마련되고, 희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희망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한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하여 자기의 고유한 죽음을 예감합니다.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죽음은 희망에 대립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물리적 시간으로 볼 때 역사는 지나가 버리는 것이지만, 인격적 차원에서 보면 지나간 역사는 우리의 의식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진행되는 시간 안에서 의미를 상실해 가는 것이 아니라, 만남과 인격적 실현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 명예를 추구하는 것, 교육을 받는 것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생산적 활동을 통해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가치를 창조하려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로써 인간의 무상성을 극복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미 성취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성취의 기쁨은 곧 권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기 삶의 의미를 후손을 위한 행복에서 찾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만족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서로 상이하며 인간 허무성의 모든 현상을 근본적으로 파기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희망을 성취하는 것은 내재적인 가치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의 불가피한 사실성에 직면하여 자기 삶의 의미와 삶의 전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간 인식이 사회적·정서적 경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과 로라 카스텐슨(Laura Carstensen, 1992) 교수는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서 어떠한 정서적 경험을 하는가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의 인식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의 초점은 현재의 일상에서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즉‘지금 여기(here & now)’로 옮겨오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위험이나 죽음에서 보호받기를 원합니다. 만약 “당신은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오랫동안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기를 바란다고 말할 것입니다. 회생 가능성 없이 고통에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오직 허무하게 시간만을 보내면서 의학 기술에 의해 생명을 의지하는 상태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죽음의 과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들이 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나 말기질환으로 인하여 임종의 과정에 들어선 사람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임종기의 의사결정(end-of-life decision making)이라고 합니다. 임종기의 지혜로운 의사결정은 품위 있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종기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여러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는 경향이 많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변화된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가지 못했던 여행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가족이나 친구를 불러서 이별 파티 등을 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적 관계를 철수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입니다. 조용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찾거나 종교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관심의 초점이 외부에서 내면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은 후에 남겨질 가족이나 자녀들을 위해 사랑을 충분히 나누고, 유가족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위로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넷째, 자신이 이루지 못한 과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계획했던 일들과 이루지 못한 목표 달성을 위하여 남은 기간에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고 싶어 합니다.

다섯째, 평소와 같이 변함없이 생활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병원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펼치는 한 편의 연극과 같다고 합니다. 연극의 마지막 장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지는 임종자의 소망과 계획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망뿐만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상황적 요소들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박선숙 교수
박선숙 교수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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