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교수의 호스피스 이야기】 (9) 호스피스에서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
박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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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2 09:42 | 최종 수정 2022.09.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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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수용하는 것은 삶의 자연적인 부분이며 인간 실존의 순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것을 모두 잃어야 한다는 사실에 평화롭지 못하지만 일어나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평온해질 수 있습니다.
죽음을 직면한 사람에게는 수용, 위축과 이탈, 희망의 3가지 문제가 거듭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절박한 상실을 포함하여 죽어가는 사람에게 수용의 문제는 근래에 와서 크게 논란이 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운명적 죽음의 수용을 돕기 위해 치료적인 목표를 어떻게 중재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목표는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당사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가족과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의 문제이다. 만약 당사자가 평온한 마음과 자신의 철학으로 절박한 죽음을 수용하면 이것에 관련된 모든 것이 용이해 집니다.
죽음의 수용은 삶의 자연적인 부분이며 인간 실존의 순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을 모두 잃어야 한다는 사실에 평화롭지 못하지만 일어나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평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축과 이탈의 문제도 중요하게 거론됩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으므로, 본인이 혼자서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변화가 오는 것에 집중하지만 여러 관문을 지나야 하는 그 여행을 홀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수용하여야만 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완전한 존재일 수 없습니다. 마치 죽어가는 그들의 한쪽 발은 다른 세계에 놓여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몰두는 사랑의 결핍 상태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하는 죽음 과정의 한 자연스러운 부분입니다. 이때의 중재는 가족에게 집중되어야 합니다. 위축과 이탈은 수용하기 힘든 것이지만 당사자가 이것을 거부한다면 더욱 어려운 것이 되기도 합니다.
보통 이탈은 삶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일어납니다. 그 이전까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찍부터 버려진 느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희망은 그들이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형태와 질이 계속 변화합니다. 첫 희망은 진단이 잘못되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단이 확정된 이후부터 희망은 변화하며 그들은 죽음에서 도피하여 기적이나 치유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점차 이 희망은 사소한 형태로 변하며 통증의 감소나 삶의 형태가 변화되는 것에 한정된 바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희망은 매일 매일의 삶과 연결되어 정서적 반응, 슬픔, 방어적 과정으로 죽는 날까지 지속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심리적·신체적인 포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은 개인적인 특성, 인간관계의 특성, 환자 질병의 특성에 따라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개인적 상황과 환경적 상황에 맞추어 대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반응에서 당사자에게 예측되는 슬픔은 유가족이 경험하는 상실의 슬픔과 거의 비슷합니다. 미래에 대한 다양한 상실을 슬퍼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자기 자신을 잃는 것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 조절 능력의 상실
- 자립 능력의 상실
- 신체적·심리적 기능의 상실
- 사고 능력의 상실
- 익숙한 환경의 상실
- 자기 자신의 어떤 특성(유능함, 매력 등)과 정체성 상실
- 삶에 대한 의미의 상실
- 모든 인간관계 상실
당사자와 유가족이 느끼는 상실의 슬픔은 비슷하지만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슬픔은 끝이 없지만, 유가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강도가 줄어든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지는 희망 역시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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