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를 맺는 공정무역과 맥을 같이 하는 공정여행(Fair Travel)이 있다. 여행지의 환경을 보호하고, 여행지 주민과 문화를 존중하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지역경제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여행 형태를 말한다. 요즘 주목 받는 새로운 여행의 트렌드이다.
부산에 기반을 둔 공정여행사로는 핑크로더(부산 중구 중앙동·대표 양화니)가 있다. 2012년 창립한 핑크로더는 부산 자체를 여행상품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잘 알려진 해운대나 광안리, 태종대를 소개한다는 게 아니다. 부산의 산복도로와 골목길, 영도의 깡깡이마을 등 부산의 속살과 이야기를 엮어 여행 콘텐츠를 개발한다.
핑크로더는 올들어 부산의 ‘공정여행 플랫폼’으로 변신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주 양화니 대표를 부산 중구 중앙동 핑크로더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Q1. 양화니 대표님, 반갑습니다. 공정여행 소셜벤처 ‘핑크로더’를 소개해주세요. 다른 여행사와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양화니 대표 : 지역과 함께 상생하는 여행을 보통 공정여행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보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어요. 여행을 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경우도 있고, 문화적 피해를 주기도 하는 등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죠. 여행객들이 여행을 가면 먹고 자고 해야 하니까 비용을 많이 쓰잖아요. 근데 그 비용들은 그 지역의 경관을 보고 느끼는 대가로 지불한 건데 막상 그 지역에 남아 있지 않더라는 거죠. 대부분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리조트라든가 호텔 등이 가져가는 겁니다. 우리가 동남아에 여행을 갔는데 여행에 쓴 돈은 대부분 서구 선진국 사람들 손에 들어간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해본 거죠. 그 지역민이 조금 더 수익을 가져가도록, 우리가 지역의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고 생태를 보존하는 다양한 방식의 여행을 하는 게 좋겠다는 거죠. 이 같은 방식의 여행을 처음엔 대안 여행, 지속가능한 여행, 생태 여행 등 다양하게 불렸는데, 포괄적으로 공정여행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핑크로더는 부산을 대상으로 한 공정여행사입니다. 예전에 부산의 여행상품을 보면 해운대해수욕장 위주인 데다 여행 일정도 1박 2일 정도로 잠시 즐기고 소비하는 식이더군요. 저는 부산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행 테마를 다양화하고, 우리 지역의 문화를 알리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기획하게 됐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부산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공정여행사라는 게 다른 여행사와 결이 좀 다른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지역의 공동체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했어요. 이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고 지역과 상생하는 일이며, 이걸 통해 공동체의 역량이 키워지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라고 부릅니다. 저희 회사는 인증 사회적기업입니다.
Q2. 창업 계기와 과정을 좀 들려주세요.
▶양화니 대표 : 저는 다양한 문화생활 좋아했어요. 전시나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죠. 10여 년 전 예술가들이 사비를 털어 대안공간, 복합문화공간 등을 만들어 운영하시더군요. 근데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정말 의미 있고 지역의 문화예술을 살찌우는 가치 있는 활동들이 잘 됐으면 좋겠는데 문을 닫는 걸 보니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이 같은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을 도와주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 프로젝트를 하나 기획을 했죠.
그게 ‘부산 광’이라고 하는, 부산을 널리 알린다고 해서 넓을 광, 부산을 빛낸다고 해서 빛낼 광의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거죠. 이 프로젝트가 공모 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아 동아리 활동처럼 했죠.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맨날 부산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한탄한다. 근데 부산 구석구석을 다녀보면 좋은 곳이 되게 많다. 근데 왜 안 다니냐, 직접 다녀봐라, 그냥 가서 구경만 하지 말고 가서 경험도 하고 뭐도 좀 사먹고 해봐라, 그러면 좋아질 될 것이다. 문화 불모지라는 말은 안 나올 것이다.
그러다 그 기획을 주변의 소상공인들 하고 연결하는 작업으로 확장했죠. 전시 공간으로 카페를 연결하고 공예, 공방 같은 체험 공간을 인근 맛집, 박물과 등과 엮었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군요. 사람들이 야, 그거 재밌겠다 하면서 자발적으로 비용을 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때 백수였거든요. 놀면서 뭔가 배우러 다니던 시기였어요. 이거를 비즈니스로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 프로젝트를 저희가 6개월 가까이 한 뒤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호응이 좋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어느새 저보고 문화기획자라고 하더라고요. 문화기획자라는 말을 저는 그때 처음 들었어요.
그 프로젝트가 끝나니 좀 아쉽더라고요. 이 연장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하고 고민했죠. 저는 처음부터 지역의 소상공인과 함께 상생하는 뭔가를 고민했고, 우리 지역의 어느 구석진 곳에 예쁘게 맛있게 커피를 내려주는 아기자기한 커피숍을 소개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던 거죠. 그래서 지역과 상생하는, 어떤 마을의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여행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와 관련된 검색어가 공정여행이더라고요.
당시에는 마을이나 골목 여행이 없던 시절이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돈을 내고 투어 신청을 하리라는 걸 생각지 못했죠. 그즈음 지역 일간지 국제신문에서 스토리텔링를 연재하며 골목길 같은 지역 소재를 다루기 시작했죠. 그 시기가 지역 소재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부산의 진짜 다양한 매력들을 공정여행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알리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창업하게 된 거예요.
처음부터 저는 부산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어떤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한테 ‘부산에 이런 게 있어요’라고 하는 걸 제일 쉽게, 부담 없이 실행하는 방법이 여행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여행이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서 부산을 소개하고 알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는 상황입니다.
Q3. 10여 년 전, 구체적으로 2012년에 부산지역을 소개하는, 여행객이 오는 그 지역과 상생하는 공정여행을 기치로 ‘핑크로더’를 설립한 것이군요. 핑크로더의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양화니 대표 : 핑크로더는 '핑크빛 희망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창업할 때 팀원들과 고민을 많이했어요. 네이버나 카카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연두색이나 노란색같이 저희 회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색을 당시에 참여했던 팀원들과 고민했고, 다들 같이 좋아하는 색이 핑크라서 선택했어요. 로더(Roader)는 길(road)과 사람을 뜻하는(-er)을 붙여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Q4. 그간 핑크로더가 내놓은 부산을 소재로 한 여행상품 중 반응이 좋았던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양화니 대표 : 저희가 프로그램 개발할 때 산복도로 르네상스 같은 도시재생 사업이 부산에서 많이 일었어요. 저희가 관심을 갖는 주제가 마을이고 지역이고 이야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시재생 사업들이랑 연계가 잘 됐습니다. 초창기부터 저희 쪽에 문의와 의뢰가 많이 오고 해서 도시재생과 관련된 산복도로 마을 여행을 대표적인 우리 상품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꾸준한 핑크로더의 주력 상품이기도 합니다. 부산의 산복도로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6·25 전쟁과 피난 이야기들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부산의 근현대역사와 피란수도 이야기를 담은 여행상품도 개발했습니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잖아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영화촬영소 등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도 있지만, 단편영화제 영화를 밤새 관람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해봤습니다. 또 최근에 핫 해진 영도 투어도 있고, 바다를 주제로 한 상품도 있고요.
Q5. 여행객의 지역적 비율은 대략 어떻게 되나요?
▶양화니 대표 : 부산 30%, 부산 인근 도시 20%, 그 외 수도권 등지 50%쯤 됩니다. 외국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들이죠.
Q6.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양화니 대표 : 일종의 공부를 하러 오는 분들이죠. 트렌드 공부. 예전엔 역사적 장소를 답사하고 신기해하며 미처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았다는 반응이었다면 요즘은 새롭게 떠오르는 카페 같은 로컬 브랜드나 공간을 답사하며 트렌드를 살피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Q7. 지역사회와의 상생 활동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양화니 대표 : 영도 깡깡이 마을 여행을 예로 들면, 저희가 기본적인 기획을 한 뒤, 여행객 안내와 해설 등 구체적인 운영 부분에서는 마을 주민분들에게 맡기고(기본적인 교육을 해드리고) 손님을 보내는 거죠. 벌써 7, 8년 됐는데 요즘 마을 분들이 알아서 잘 하세요. 손님들이 그 깡깡이 마을을 여행하며 소비하는 게 있으니까 마을 분들에게 수입이 되는 거죠. 최근에는 진주 김해 등 부산 인근 지역에서 지역 상생 프로그램의 기획이나 컨설팅을 요청해와 진행해주기도 했습니다. 김해 진영의 경우 단감이 유명하니까, 단감을 핵심 아이템으로 만드는 식이죠.
Q8. 그동안 가장 큰 도전을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했나요?
▶양화니 대표 : 늘 도전인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늘 감사하죠. 덕분에 ‘이제 문을 닫아야지’ 할 정도는 아직 없었습니다. 12년 동안 어떻게 잘 벼텨온 것 같습니다.
Q9. 수익구조는 어떻게 됩니까?
▶양화니 대표 : 저희는 여행과 관련된 전반적인 것을 거의 다 하거든요. 상품 기획에서 운영, 홍보 마케팅, 컨설팅, 여행 프로그램 개발까지 다 합니다. 이게 다 수입원인 셈이죠.
Q10. 지금 직원이 몇 명이죠?
▶양화니 대표 : 지금은 저 혼자입니다. 지난해엔 6명, 지난달까지 3명이 있었고 이번 달에 다 퇴사했어요. 지난해까지 코로나 중에도 매출을 많이 내고 많은 일을 해왔는데, 이젠 뭔가 좀 바꿔볼 시기가 됐지 않나 생각을 해서, 핑크로더에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가장 큰 도전에 부딪힌 것 같습니다.
Q11. 그동안 이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은 어떤 겁니까?
▶양화니 대표 : 주민분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때 저희도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고객들이 투어 후에 ‘너무 좋았다’고 ‘새롭게 알았다’고 소감을 말할 때 저희도 기분이 좋죠. 이 일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Q12. 핑크로더의 ‘부산사이다’가 인기던데요, 복원 스토리를 소개해주시죠.
▶양화니 대표 : 얘기하자면 좀 깁니다. 저희는 부산의 다양한 콘텐츠를 사람들한테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행사죠. 그래서 지역의 이야기와 자료를 많이 찾고 공부하는 편입니다. 사무실이 보수동에 있을 때 보수동이라는 지역을 공부하면서 ‘보수사이다’에 관한 정보를 접하게 됐어요. 사이다 공장이 보수동에 있었더라고요. 자료를 찾다보니 1950년대~1970년대 초 부산에 보수사이다 외에도 월성사이다, 합동사이다 등 10개 정도의 브랜드가 생산·판매되고 있었더군요. 그런데 1970년대에 사라지기 시작해 영도의 합동사이다를 끝으로 모두 사라집니다. 칠성사이다한테 먹힌 거죠. 안타가운 마음이 들데요.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 부산의 특색을 지닌 새로운 음료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산사이다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했죠. 유통허가 회득 등 1년가량의 준비 끝에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부산사이다 4종을 출시했습니다. 4종은 부산사이다 오리지널, 부산사이다 다대표노을, 부산사이다 영도해부, 부산사이다 송정밤바다 등으로 맛과 병의 디자인을 부산의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각기 특색있게 만들었습니다. 여행객들이 기념품으로 많이 사가고, 외지에서 주문도 꾸준히 해옵니다.
Q12. 힘든 점은 어떤 건가요?
▶양화니 대표 :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죠. 사람이 일을 하니까, 일이 있으면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고, 또 같이 일을 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늘 가버리고, 늘 이런 식이죠. 청년들은 보통 한 1년쯤 지나면 다 나가는 편이니까요. 이 부분이 제일 힘들었어요. 지금은 혼자인데, 이제 아예 판을 새롭게 짜보려고 합니다.
Q13. 올해 핑크로더의 주요 사업 계획은 무엇입니까?
▶양화니 대표 : 단일 공정여행사를 넘어 공정여행 플랫폼으로 변신하려고 합니다. 사업의 형태를 온라인화, 글로벌화 하는 차원입니다. 특히 저희 플랫폼은 우리 지역의 여행 콘텐츠를 한층 다양화하는 견인차가 될 것입니다. 5년 전부터 구상했는데, 올 초 비로소 플랫폼 구축을 완성했습니다. 예전의 홈페이지가 바로 플랫폼으로 바뀐 겁니다. 비용도 1억 원 넘게 들었습니다.
예전 홈페이지에는 저희가 만든 상품 위주로 돼 있었어요. 지금 플랫폼에는 ‘파랑새(독립 여행콘텐츠 개발자)’나 일반인들도 자신이 만든 상품을 올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행상품이 다양해지고, ‘파랑새’나 일반인들의 여행 콘텐츠 개발도 활발해지게 되리라 봅니다. 핑크로더가 부산의 공정여행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Q14. 양화니 대표의 경영철학은 뭔가요? 그리고 핑크로더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양화니 대표 : 얼마 전 ‘양화니의 비전체계’를 수립했습니다.
▷사명(使命)이 경영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지역과 사람이 가진 숨은 가치를 찾아내어 알리고 지속가능하도록 돕니다’입니다.
▷비전은 ‘2024년 공동체 컨설팅 100회, 홈페이지 여행·체험 상품 업로드 50개, 2030년 호텔운영’입니다.
▷핵심가치는 다음 세 가지이다. ▷배움 : 호기심을 갖고 학습하고 함께 성장하기 ▷감사 :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가 ▷매 순간 현재에 충실하기
Q15. 이 분야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주세요.
▶양화니 대표 : 뭐든 해보시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고민만 하고 있지 말고. 그냥 부딪쳐보면 배우는 게 많고, 정답을 찾아나갈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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