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34)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42)

이득수 승인 2024.04.24 08:00 의견 0

“무슨 일은 없었나? 헛소리를 하거나 실수를...”

조심스레 묻자

“사이나 먹은 꿩처럼 술 먹다가 고대로 술상에 콕 고꾸라지던데요. 그리고 뭐라 몇 번 지껄이다가 금방 잠이 들었어요.”

화장지의 말에

“형수이름이 옥자씬가? 뭐 옥자씨하고 우리 애기 소리를 몇 번 한 것 같은데.”

하며 택시 문을 열어 태우고

“기사님, 망미주공 아파틉니다. 형님, 조심해서 가세요.”

하고 문을 닫았다.

14. 송도와 진주여자(42)

그날 집에 들어가 억지로 샤워를 하고 바로 고꾸라져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철 침대에 누운 창백한 여인의 스산한 눈빛과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아기천사의 환영에 몇 번이나 소스라쳐 놀라며 잠에서 깨자

“이 양반이 또 본병이 도지나? 보소, 여게는 집이고 당신이 퇴직을 해서 겁낼 일도 없고 김모청장 그 인간도 없소.”

하며 다독거리더니 이튿날 아침 제발 술 좀 덜 마시라고 일장 훈시를 하고 나갔다.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윗집 아줌마와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고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열찬씨가 좋아하는 생아귀를 사와 속을 풀라며 아귀탕을 끓였다.

그날 저녁 영순씨가 잠들기를 기다려 컴퓨터를 켠 열찬씨가 이메일을 열었다. 그리고는

가엾은 옥자씨,

어릴 때 교회에 다닌 적은 있어도 불교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중년이 지나 등산을 하면서 왠지 절과 친숙해지고 발길이 닿은 절, 특히 깊은 산의 작은 암자에는 반드시 산신각에 들러 천 원짜리 하나 달랑 넣고 중앙의 부처님을 비롯해 산신, 칠성, 삼성, 독성 등에 세 번씩 절을 하고 나오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등산화를 신느라고 구부렸다 고개들 들 때 맞은 편 산등성이에 밝은 빛살이 한줌 머무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일부러 공부하는 건 아니지만 불교관련서적도 간간히 읽는데 나는 요즘 불교용어 사고(四苦), 즉 네 가지 고뇌란 말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제쳐두고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사고 즉 애별리고, 증불별고, 구부득고, 개오온고의 괴로움, 그중에서 사랑해도 만나지 못했던 젊은 당신의 애별리고 또 미워해도 떠나지 못하는 지금의 아픔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과 나의 개오온고, 세상 가득한 그 많은 아픔들이 어쩌면 이 못난 사내가 만든 업(業)이라는 생각에 눈을 감고 회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며칠 장안사라는 절에서 우연히 수가령(隨駕靈)의 넋을 달래는 제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 알아보니 수가령이란 아직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사산, 조산, 유산아와 영유아의 넋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온전한 영가(靈駕)가 못 되어 그냥 어미나 누구를 따라가는 영혼을 말하는가 보지요.

그 때 나는 태아박리(胎兒剝離)라는 증세로 7개월 된 조산아로 태어나자말자 죽은 셋째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글쎄, 당신의 그 아픔과 나의 그 많은 불찰들, 당신이 한 여자로서 단 한 번 수태한 그 여린 영혼, 그 죄 없는 생명을 버릴 수밖에 없던 일에 대한 죄책감, 이제 어떻게 씻을 수마저도 없는 그 예리한 충격도 무거운 중압감도 어쩌면 다 내가 지은 업보가 아닐는지...

당신의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멋쩍고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당신에게 남은 생애를 하루하루 건강하고 쾌활하게 살았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끼니 거르지 말고 춥지 않게 옷도 방도 이불도 갈 갖추고 살기 바랍니다. 늘 멀리서 지켜볼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안녕.

2011. 죄 많은 사내 가열찬이가-

며칠 동안을 아직도 일요일의 술이 덜 깬 사람처럼 몽롱한 정신으로 지냈다. 혹시나 싶었지만 옥자씨의 연락은 없었다.

“당신, 아무래도 요즘 전차에 바친 사람 같아. 병원에 한 번 가보든지 한약을 한 재 지어먹든지 해야겠네.”

“괜찮아. 며칠 푹 쉬면 나아지겠지.”

“하여간 일요일 등산만 가면 탈이 나. 젊어서 조기축구 가서 맨 날 술이 취해 새벽에 들어오더니 늙어서는 웬 등산바람이 불어서.”

“...”

“이번 주 일요일엔 산에 못 가는 줄 아소. 차라리 내 하고 언양 산소 갔다가 고모집이나 한 바퀴 하든지.”

“알았어.”

하는 순간 문득 죄 없는 영순씨가 나 때문에 참 고생이다, 저렇게 착해빠진 사람에게 내가 참 몹쓸 짓을 하는구나 싶으면서 문득 영순씨가 잃어버린 두 아이, 어미를 살리려 억지로 세상에 나오자말자 멀고 어두운 나라로 떠나버린 750그램의 셋째와 뱃속에서 제대로 형체를 갖추기도 전에 비정하고 무책임한 부모로 부터 버려진 핏덩이하나...

슬비, 정석 두 아이는 물론 친정동생이나 시동생은 물론 시가와 친가의 그 많은 가족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인정 많은 영순씨가 자신처럼 부주의한 사내, 아니 부덕하다 못 해 파렴치한 사내 때문에 그런 곤경을 치르고 지금도 내색은 않지만 나름대로 많은 자책에 시달릴 것이었다. 파리한 얼굴로 일신부인병원에서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혹시 자신이 잘못 되면 착한 사람을 택해서 두 아이를 잘 키워 달라며 지어보이던 엷은 미소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영순씨와의 약속했던 다음 일요일의 등산도 가지 않았다. 이제 몸도 마음도 많이 가뿐해져 월요일오후 모처럼 온천천으로 산책을 나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강 건너 동래 쪽에서 하수처리장을 돌아 수영강방향으로 접어들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옥자씨였다.

“옥자씨, 나야.”

“어디요? 지금 집은 아니지?”

“응. 수영강변. 산책 나왔어.”

“그럴 줄 알았어. 이 시간에는 대체로 산책을 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

“그래요? 근데 왜 요즘 통 연락이 없었어요? 어디 아팠어요?”

“아니요.”

“그래. 내가 보낸 메일은 받고?”

“물론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도 더 읽었지.”

“미안해. 달리 할 말이 없어.”

“또 그 소리. 제발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

“물론 그 전에도 당신의 마음을 알았지만 이번에 가장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나도 많이 울었어요.”

“...”

“며칠 동안 내가 당신이 되어 입장을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좀 괘심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 아니야.”

“물론 당신이 뭘 잘 했다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신도 크게 떳떳한 것은 없어요. 모든 것이 철없던 시절의 실수, 아니 무슨 신파극처럼 불장난인 것 같기도 하지만 결코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비록 충동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당신도 꽤나 진지했고 나는 그냥 끌려 다녔고.”

“...”

“이제야말로 당신을 놓아주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당신 주변을 맴돌거나 당신을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예요.”

“미, 미안해.”

“지금 와서 새삼 무얼 달리 할 방법이 없어서 이기고 하지만 당신은 평온한 영순씨의 가정에서 두 아이들이랑 손자들이랑 행복한 노후를 보내야지요. 그렇게 좋아하던 소설도 쓰고...”

“그럼 당신은?”

“나도 지금껏 살던 방식대로 돈 버는 재미, 영어공부에 푹 빠지는 재미로 살아야겠지요. 하지만 이제 억지로 돈을 더 모으거나 공부를 하기보다는 여행도 좀 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냈으면 해요. 가끔은 당신을 추억하면서.”

“이렇게 진심을 보여줘서 고마워요. 당분간은 영순씨 눈치 보며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지도 말고 그냥 가족들과 평온하게 지내세요. 늘 몸조심하고.”

“미, 미안해.”

“안녕. 건강하세요.”

하고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려다 이미 전화기를 껐을 것 같아 그만 두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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