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47)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7장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1)

이득수 승인 2024.05.17 18:31 의견 0

21.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1)

신정에서 구정 사이의 한 달 남짓한 사이 집안에는 뭔가 불안하고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언양에서 들려온 정찬씨의 소식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일은 아니지만 은근히 뒷골을 당기게 하는 불안이었다면 매일 만나는 딸, 슬비네 집에는 어쩌면 회사가 설날 전에 문을 닫고 둘이 동시에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보다 현실적인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 영서의 동생이 벌써 6개월이 넘어 이제 배속에서 발길질을 시작했다고 했다.

영순씨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떠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이 있는 법이니 만사 너무 걱정만 할 것은 아니다. 직장이나 밥벌이는 어떻게든 다른 방안이 나올 것이고 태중의 생명은 나름대로 제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니 아무 걱정이 없다고 위로하는 말에도 영순씨는

“당신은 이 판에 무슨 선문답(禪問答)을 하는 거요? 당신은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면 되지만 날마다 얼굴을 대하고 끼니를 끓이는 나는 기분이 어떻겠소?”

하며 역정을 내었다. 사실 영서가 아홉 살이 되어가도록 영서네의 살림살이는 사실상 영순씨가 꾸려오는 셈이었다. 처음 신혼 때 단둘이 학장동의 아파트에 살 때는 궁금하기는 해도 낮에 슬쩍 들러 청소나 해주는 정도였지만 영서가 태어나자 조산원에서 2주를 몸조리한 뒤 바로 연산동으로 아이와 어미를 데리고 오고 아이아비는 주말에 한 번씩 아이를 보러오는 것을 시작으로 3개월간의 출산휴가가 끝나 슬비가 다시 출근을 하고부터는 금요일저녁에 주공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가고 일요일 밤에 다시 데려다주는 식으로 첫돌이 지나고 두 돌이 다가오는 22개월간이니 영순씨내외가 아이를 전담했다. 열찬씨 역시 출근을 해야 하니 사실상 영순씨 혼자 살림을 살면서 아이를 보고 직장에 바쁜 슬비네의 김장이나 반찬까지 신경을 써야하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모 슬비는 복직을 하자말자 이제 사업을 접기 위해 마무리에 들어간 회사의 발주처 나이키와 협상업무를 맡아 밤마다 접대를 하느라고 한밤중에 들어오니 제 서방 밥이나 끓여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영순씨도 사람인 이상 조금은 쉬기라도 하고 몸이 아프든지 계모임이 있든 무슨 일이 있으면 대신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어야하는데 그게 또 만만하지 않았다. 우선 쉬운 대로 아이의 친할머니가 되는 신평의 사돈이 있었지만 어떻게 딱히 설명될 수도 없는 희한한 이유로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벌써 20년도 전에 베트남에 근로자로 간 도연씨의 부친이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하루하루 뇌를 비롯한 신체 각 부분이 위축되고 지능이 떨어져 당시에는 체격이나 판단력이 겨우 열 살 정도로 떨어져 늘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지라 남편을 거두어야 되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옆집에 도연씨의 외삼촌집이 있어 수십 년째 매일 드나들며 살고 있으니 하루, 이틀 맡기는 것이 큰 문제도 아닌데다 동의의료원에 다니는 딸 남희씨도 3교대로 근무하니 오가며 아버지를 챙기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사돈 측에서 단 하루나 한 나절도 아이를 맡을 수 없는 것은 안사돈 자신이 아이를 보거나 하는 잔일에 너무나 관심이랄까 취미가 없는 것이었다.

안사돈은 자그마한 체격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조그만 얼굴이 젊었을 때는 꽤나 미인으로 불릴 만큼 천생여자로 태어난 것 같았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남편대신 직장에 다니며 가정을 꾸리며 살아서 그런지 김장을 하거나 무슨 반찬거리를 사다 요리를 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살아와 하루하루 신평시장의 반찬가게나 난전에서 간단간단하게 반찬을 사다 먹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처음 장가온 도연씨는 장모가 정성들여 해주는 국이나 찌개, 나물무침 따위가 너무 흔감해서 젓가락이 잘 가지 않아 우리 사위는 본래 입이 짧은가 영순씨가 걱정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교활한 것이 사람의 입이라고 시장에서 파는 멸치나 쥐취포, 오징어포인 일미 볶음이나 오뎅무침, 라면, 떡볶이나 떡국에 익숙하던 입맛이 차차 갈치조림이나 가자미구이, 넙치를 넣은 미역국, 콩나물을 넣고 넉넉히 끓인 소고기국, 심지어는 열찬씨의 술국으로 끓이는 묵은 김치에 멸치 몇 마리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김칫국에 재미를 붙이면서 불과 얼마 전까지 먹던 엄마의 밥상인 멸치와 어묵위주의 반찬을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국과 조림과 나물, 심지어 배추김치가 있는 줄을 몰랐다고 했다.

대신 그런 안사돈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돈을 아끼는 일과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었다. 여자가 가장이 되어 어렵게 살다보면 다 그렇게 돈을 아끼는 시초가 자신과 가족들이 먹는 일에서 출발하기 마련인지 무엇 하나 넉넉하게 준비해서 먹거나 큰돈을 들여 요리를 하거나 외식을 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고 식사도 하루 세끼 시간을 맞추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남편이 배가 고프다고 조르거나 자신이 배가 고플 때 대충 밥만 끓이고 시장골목에서 마른반찬 한두 가지를 사와서 하는 판이라 처음 시집간 슬비가 보고 기겁을 했다.

그러면서도 방이나 부엌을 깔끔하게 치우기를 좋아하니 방이건 부엌이건 먹을 것은 더 귀했다. 거기에다 취미가 TV로 각종 스포츠를 보는 일이라 해마다 바닥권을 해미는 롯데야구는 물론 역시 이기기보다는 지기에 익숙한 축구의 아이파크팀, 농구의 KT팀의 선수하나하나를 다 외울 정도였고 부산과 지역연고가 없는 남녀배구는 성적이 좋은 김연경의 흥국생명과 박철우의 삼성을 거의 광적으로 응원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스포츠방송이 끝나거나 아직 시작하지 않은 오전에는 프로레슬링 W.W.E는 물론 격투기 K1에도 재미를 붙여 더 락과 랜디 오턴, 게레로와 리타 같은 레슬링선수는 물론 표도르같은 그 많은 격투기선수들의 주요한 기술과 마무리 필살(必殺技)까기 훤하게 꿰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어떻게 먹고사느냐가 문제인 것 같지만 나이 들어 직장을 그만두면서 그간의 저축과 퇴직금으로 시장바닥에 빚을 놓고 이자를 받아 생활은 걱정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생활리듬을 가진 사람이라고 제 손녀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를 만나 딱 한 번 안아보고 나서 돈 몇 푼 건네주면 그게 다였다.

달리 애착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함부로 맡길 수가 없는 이유는 종일 스포츠를 관전하느라 아이에게 신경도 덜 쓸 뿐이 아니라 도무지 먹는 일에 관심이 없어 자기가 배가 많이 고파야 비로소 자신과 가족의 먹는 일에 신경을 쓸 판이니 아이를 굶길까 봐서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맡기고 여행을 하는 따위의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못 했다.

[그림 서상균]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한 사람의 유력한 조력자로 충분한 일흔 다섯 살의 장모 소야댁도 역시 젊어서부터 직장에 다녀서인지 집안일이나 육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딸과 사위의 눈치는 꽤나 보는 편이라 딸네집에 오면 부지런히 영서도 안아주고 집안청소도 했지만 역시 주방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역시 요리에는 별 취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손가락에서 참기름이 쏟아지는지 손만 한 번 가면 된장 한 줌을 넣고 우물쭈물 무친 산나물이나 푸성귀가 모조리 천하일미가 된다는 어머니의 솜씨를 외손녀인 영순씨가 배워 맛을 내는 데 비해 친딸인 순란씨의 요리솜씨는 수십 년 살림을 산 중년여성이라기 보다는 신혼의 초보주부수준이라 딸네집에 모면 영순씨가 담은 김치나 무친 나물을 도로 얻어가기가 일쑤인데 희한한 것은 학장동 신혼집에 놀러온 시어머니 김금자할머니도 영순씨의 음식에 맛을 들이고 조금씩 가져간다고 했다.

어머니 순란씨가 사돈 금자씨도다 좀 나은 점은 자신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본 증손녀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과 함께 벌써 수십 년 자신의 가정사를 두량해준 맏딸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이제는 도로 딸의 눈치나 심기를 살피는 형편이 되어 어떻게든 아이에게 정을 붙이고 관심을 가지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집에 잘 붙어있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순란씨는 날마다 양정에서 같이 살다 이제 친목계원이 된 아주머니들과 풍산금속출신의 옛 동료들과의 모임, 현대아파트경로당 등 하루라도 나가지 않고 진득이 집안에서 지낸 일이 없어 어쩌다 오랜만에 모임을 나가는 영순씨가 서너 시간동안 아이를 맡기면 너무나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해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육아보조를 해줄 사람이 하나 남은 것이 바로 남편 열찬씨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나는 주말에는 역시 아이의 어미아비도 같이 쉬니 달리 아이를 볼 일이 없어 역시 억지로 편해도 편한 사람은 편한 법, 같은 부부, 같은 할미할비로써 달라도 처지가 너무 다르다고 영순씨가 볼멘소리를 하면 같이 기장의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가서 밥을 사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갓난아이 영서가 어릴 적 제 어미를 닮아서인지 성격이 좀 예민해서 자다가 잠이라도 깨면 영순씨가 아무리 다독여도 좀체 그치지 않았다. 날이 다 새도록 고생하는 아내를 보다 못해 열찬씨가 일어나 잠깐 안아보지만 차츰 울음이 잦아져 자리에 눕히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고 다시 울어대는 것이 영판 어릴 적 제 어미 슬비와 똑 같았다. 어떻게든 누구와 살이 맞닿아야하고 위 아래로 흔들어 흔들림이 있어야만 눈을 감고 울음을 멈추는 것이었다. 그 사이 눈이라도 조금 붙이려면 좋으련만 영순씨는 서둘러 아침을 하고 상을 차리면 세수를 하고 밥을 먹은 열찬씨가 아이를 안고 베란다로 나가거나 좀 자라서는 아파트입구에서 걸음마를 시키며 한30분을 놀아주는 동안 영순씨가 서둘러 밥을 먹고 설거지와 청소를 해야 했다.

열찬씨야 그렇게 출근을 하면 퇴근을 할 때까지 까맣게 잊고 지내지만 영순씨에게는 조그만 휴식도 없었다. 아이가 많이 보채는 날 오늘 제발 일찍 좀 들어오면 안 되겠냐는 전화가 오지만 저녁에 공적인 회의나 행사가 있는 경우도 많아 그 마저 쉽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이 눈에 띄도록 수척해지는 것을 보며 간혹 열찬씨가 아예 작정을 하고 일찍 오는 경우도 간간 있었지만 그것으로 잘 해결이 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열찬씨가 하다 못 해 일주일에 수요일하루만이라도 신평의 친할머니가 아이를 보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도연씨를 통해 말이 들어갔지만 신평에서는 묵묵부답이었고 어미 슬비가 신평에 맡기면 자신이 불안해서 맡길 수 없다고 하자 영순씨 역시 그렇다고 했다. 어찌 된 셈인지 장모 순란씨도 차츰 걸음이 뜸해지고 반여동의 처제 영신씨가 어쩌다 오면 현실적으로 아이를 안아주거나 보살피기보다는 언니는 꼭 이래야 되겠느냐, 먹든 굶든 제 아이는 제가 키우게 내버려두지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 지금 고생한다고 나중에 누가 알아줄 일도 아닌데 괜히 고생을 자처한다고 나무라며 자신은 언니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나중에 딸 희정이가 시집가거나 아들 교영이가 장가를 가도 절대로 아이를 보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자신들도 맡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받았다며 울고 싶은 놈 뺨치는 소리를 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열을 받은 영순씨가 하루 밤엔 오늘은 당신이 아이를 좀 보라며 건네주고 그대로 침대에 쭉 뻗어버린 일도 있었는데 두어 시간 지나 팔도 아프고 잠도 오고 또 출근할 걱정이 앞선 열찬씨가

“자나?”

영순씨를 흔들어보았지만 끙끙 앓기만 할 뿐 일어나지를 못 하더니 아침 여섯 시나 되어 겨우 눈을 뜨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몸을 가누지 못 해 급히 슬비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병가를 내기로 하고 열찬씨도 사무실에 미리 연락을 해 한나절 연가를 내고 영순씨를 병원에 데리고 간 일도 다 있었다.

그런 영서가 자라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판에 다시 아이가 태어난다니 아이하나를 키우느라 무릎관절이 다 망가져 병원에서 뼈 주사까지 맞는 영순씨가

“이번에는 도저히 아이를 못 봐준다, 또 낳으려면 너거 아이 너거가 봐라!”

하면서 눈길은 매번 열찬씨를 향했다. 두 번째를 낳을까 보다 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낳으라고 한 열찬씨가 이렇게 아이들의 직장마저 흔들리니 생각하면 할수록 괘심한 모양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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