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72)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8장 만두가게 개업(12)

이득수 승인 2024.07.20 10:14 의견 0

사위 도연씨가 수영의 미성왕만두라는 곳에 만두기술을 배우러 다닌 지 한 달이 좀 넘었다. 말이 기술이전이지 밀가루 반죽을 치고 만두와 찐빵을 빚어 찌고 손님에게 직접 팔아도 보고 또 식판을 씻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것 까지 거의 종업원이나 다름없는 허드렛일을 한 달이나 해 주고 기술이전료를 천만 원이나 주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점포의 설비와 인테리어도 일임하고 만두의 소와 호떡의 앙꼬도 반드시 미성의 것을 쓰고 밀가루를 비롯한 식재료도 지정된 가게의 것을 써야만 하고 또 간간이 술대접도 해야 하지만 요즘의 기술이전치고는 매우 수월하고 후한 편이라고 했다.

18. 만두가게 개업(12)

한동안 가게자리를 얻느라고 김 서방이 가까운 망미동의 대로변과 시장주변은 물론 연산동, 거제리, 양정, 동래, 수영일대를 다 돌았지만 여기쯤 가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으면 어느 새 만두가게가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도무지 대책이 안 서 마침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구서동시장골목과 동래 대동병원 옆의 두 곳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 장인장모에게 자문을 구했다. 구서동은 사방이 신흥아파트촌인데다 재래시장의 행인도 많고 가까운 곳에 해운대경찰서, 금정구청을 비롯한 관공서와 사무실도 많고 장전동의 부산대학생들도 더러 지나다니는 지라 열찬씨는 꽤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영순씨는 반대였다. 그건 연산동골목에서 미장원을 해 본 경험으로 아는데 요즘의 주부, 특히 아파트에 살며 밥술이나 뜨는 아줌마들은 대부분 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집 근방 재래시장에는 거의 가지 않으니 보기처럼 매상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음 대동병원옆은 현재의 위치가 옷가게나 미용실, 칼국수가게 등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 길이 나기 전 언덕위에 간신히 얹힌 폭이 좁은 집들이라 점포자체가 실내장식을 하거나 번듯한 가게를 차릴 정도가 아니어 보기에도 허술하고 상권형성도 안 되어있지만 인근에 지하철동래역과 대동병원, 메가마트가 있어 일단 유동인구가 많고 더욱이 가게 앞이 버스정류소라 가게를 아담하게 꾸미고 깨끗이 관리하며 추운 겨울에 만두나 빵을 찌는 김을 푹푹 풍기면 뜻밖에 대박이 날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세상을 보는 눈이 낮아서 그런지 결혼생활 10년을 처가에 인접해 매사 의지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김서방과 슬비는 단숨에 영순씨의 뜻에 따랐다. 그래서 설마 저들 밥 먹고 살 정도는 되겠지 생각하는 열찬씨와 달리 만약 자신이 추천한 가게자리가 예상이 어긋나 파리라도 날린다면 어떡할까 영순씨는 고민도 보통 고민이 아닌 모양이었다.

만두가게 개업예정일 2013년 양력설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가족들의 걱정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그 첫째가 가게에 누구누구가 일할 것이냐 인데 사장 겸 기술자 도연씨 외에 가게 안에서 만두와 빵을 만들 보조자 한 명에 만두를 찌고 포장해서 파는 판매원 한 명 해서 총 세 사람의 인력이 필요했다. 도연씨 내외에 인터넷으로 여종업원 한 사람을 모집하면 간단한 일이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슬비씨는 세원에서 나오자말자 전 거래처인 나이키의 관계자가 동종업계에 강력히 추천해서 두 곳에서 이력서를 내라고 해서 그 중 한 곳에 새해부터 나가기로 약조가 된 것이었다. 경력사원으로 스카우트하는 형식이라 연봉도 많이 오르고 출퇴근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조건이 좋았다.

그런데 동시에 시작되는 개업과 출근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졌다. 안 그래도 엄마 밑에서 곱게 자라 강단이 부족한 남편이 못 미더운 슬비씨에게 가게 인테리어를 하고 시범으로 만두를 빚어보고 호빵을 쪄 시식을 하면서 도연씨가

“슬비야, 슬비야...”

제품의 외양이나 맛은 물론 가게운영의 방식에 대해 무엇 하나 자신을 가지지 못 하고 매사 아내의 눈치를 보다 슬비가 맛이 괜찮다, 그건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하면 ‘아, 그렇지!’하면서 자기주장을 펴지 못 하는 것이었다. 출근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저도 초조해진 슬비가 하루는 왕만두와 찐빵을 한보따리 사들고 친정으로 퇴근을 해서

“엄마, 아빠 한 번 먹어보세요. 맛은 어떤지, 하나에 천오백원의 가치가 있는지, 엄마아빠라면 사먹을 만한지?”

하고 주욱 늘어놓아 소주와 음료수까지 식탁에 차리고 이것저것 먹어본 뒤에

“찐빵은 좀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부드럽고 달아 노인네들은 물론 노동자들이나 배고픈 학생들이 요기삼아 먹을 만하겠군.”

열찬씨의 평가에 이어

“만두는 두 가지 다 입에 살살 녹는 것이 기술이전료를 괜히 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단지 가격이 문젠데 천오백원이면 제법 큰돈인데 양이 너무 작아. 세 개면 돈이 4,500원인데 한 4,5천원이면 칼국수나 자장면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정도로 배가 부르지 않아 별미로 먹는 마니아가 아니면 쉽게 손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영순씨의 말에 이어

“그래 일단 그 가격이 하나에 천원이면 천원, 한 끼에 5,000원이면 오천 원, 아니면 6,000원씩으로 끝따리, 그러니까 우수리가 없어야 될 것 같아. 조금 작게 해서 천 원씩을 받든지, 아니면 더 크게 해서 2,000원씩을 받든지.”

열찬씨의 말에

“당신 말이 일리는 있지만 지금 그 가격대로 수영의 미성만두가 잘 되니 차차 연구하기로 하고.”

말을 가로 막은 영순씨가

“참, 슬비 니는 우짤기고? 새해에 비로 출근을 할 끼가? 아니면 개업을 좀 도와주고 나갈 끼가?”

“글쎄. 영서아빠가 자꾸....”

말을 흐리는데 열찬씨가

“나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내가 양과 점 안주인을 <빵집여자>라고 주변사람들이 한 개인의 이름 즉 고유명사로 부르지 않고 하나의 관용구처럼 부르고 알아듣고 하는 걸 보았는데 그만큼 빵집에는 빵집 안주인의 역할이나 무게가 크다는 거지. 한번 상상을 해봐. 통통하고 혈색이 좋고 잘 웃는 푸근한 인상의 <빵집여자>가 있는 집과 없는 집과, 그런 <빵집여자>가 없는 가게가 상상이나 되는지?”

“말하자면 슬비 니가 일단 개업을 하고 상태를 봐서 조금 늦게 종업원을 한 명 늘리고 회사에 나가든지 한단 말이지.”

“그래. 슬비 니 생각은 어때?”

“저도 혼자 맡기기엔 안심도 안 되고 아빠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하는데

“야야, 잘 생각해봐라. 한번 잘못 들어서면 평생 <빵집여자>로 살아야 될지도 몰라.”

영순씨의 표정이 영 못마땅한데

“아버님, 감사합니다.”

김 서방이 꾸뻑 고개를 숙여 보이며 술을 따랐다. 종업원 채용문제는 둘째 처제 영신씨가 무료하기도 하고 아이들 결혼비용을 모을 계획으로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그 이튿날부터 나오라고 연락을 했다. 이윽고 아이들이 돌아가자

“당신 와 만두는 안 묵고 김치하고 술을 묵소? 속 안 아프요?”

영순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글쎄. 별로 안 땡기네.”

열찬씨가 애매한 표정으로 웃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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