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62)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8장 만두가게 개업(2)

이득수 승인 2024.06.15 08:00 의견 0

“그나저나 안 줄 방법이 없네. 이 세상에 그 할마시 욕심과 심술을 이길 사람이 어디 있나?”

하면서 각기 호주머니에서 6만 원씩을 꺼내주며

“이 국장도 살아보면 교장선생내외와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 드는 건지 알겁니다. 좌우간 고생 많습니다.”

하고 파전을 구워 술자리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 사이 박성철씨는 한번 왔다갔능교?”

“오기는 온 모양이야 밭을 둘러보니 밭둑에 머구도 뜯어 가고 상춘가 뭔가 새로 씨도 뿌리고.”

“아니 지세(地稅)가 아까워서 올해부터 아무것도 산 심고 마늘 양파만 뽑아가기로 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마늘을 마지막으로 뽑아갈 때까지는 자기 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아니, 전체 50평 중에 밭두렁 빼고 방구(岩)돌 빼고 마흔 평 남짓한 땅에 서른 평 가까이 마늘 양파를 심고 나머지 땅은 수년째 삽질을 안 해 구들장 같은데 돈은 아까워 못 주고 땅은 땅대로 아쉬워 또 못 내어놓고 저렇게 밍거적거리니 말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성철씨가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국민학교도 2년 후배라 형님, 형님 따르는 것이 고마워 밭도 제일 땅 좋은 곳에 주었는데 세상에 수십 년 농사 잘 짓고 정작 지세 6만원이 아까워서 80이 되도록 형, 동생하던 정을 끊어버리다니. 참으로 모를 것이 사람마음이라.”

“그러게 말입니다. 한해 농사란 것이 잘 해야 마늘이나 감자 뽑고 들깨나 김장거리 심는 정도인데 저렇게 미련을 지기서 큰일입니다.”

“요즘은 전화도 잘 안 받아요. 딱 한 번 여자가 받기는 받았는데 하도 우는 소리를 해서.”

“하는 수 없지요. 뭐.”

오각정에서 교장선생내외와 열찬씨내외 넷이 둘러 앉아 커피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고 이 걸 우짜노? 커피가 딱 두개 밖에 없네.”

가스레인지에 물을 얹어놓고 종이컵에 커피를 타던 영순씨가 울상을 짓자

“할 수 없지. 한 집에 한 잔씩으로 나눠 마시지.”

하면서 열찬씨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굳이 자린고비는 아니더라도 세상에 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련만 교장선생내외도 참 엔간한 편이었다. 밭에 오면서 점심이라고 집에서 먹던 빵쪼가리나 가져올 뿐 커피가 떨어져도 살 줄을 몰랐고 가스가 떨어져도 그 뿐이었다. 그래도 자기 것을 지키는 맘은 또 대단해 열찬씨네가 오면서 생긴 컵라면 몇 개, 일회용커피 한 박스에 간장과 된장, 소금 등이 든 창고를 혹시 누가 털까 봐 당일로 단단히 문을 해 달고 커다란 자물쇠를 달았다.

그런데 평소 아무것도 없이 그냥 열렸을 때는 남이 손댄 흔적이 없었는데 자물쇠를 달고 이틀인가 지나서 밭에 왔을 때 누군가가 자귀로 허술한 문짝 자체를 젖히고 몇 안 되는 컵라면과 커피에 유한락스까지 몽땅 털어 간 것이었다.

“세상에 문디콧구멍에 마늘을 빼 묵지, 이 작은 농막창고를 털어가는 사람이 다 있네?”

탄식하는 열찬씨에게

“내 어느 놈이 손을 댔는지 다 알지만 참 인생이 불쌍해서...”

하면서 등산객이나 좀도둑이 한밤에 예까지 올라올 일은 없고 저 위 계곡의 폭포 아래 음습한 그늘에 돌로 담을 쌓고 천막을 씌우고 사는 50대 사내의 소행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그 사내 역시 어려서 교장선생이랑 형님동생하던 분의 아들이라 차마 무어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차라리 환하게 개방을 하면 아무 것도 없는 줄 알고 도둑도 안 들지만 혹시 도둑이 들더라도 자물통을 매단 문짝이나 기둥이라도 안 상할 것이 아니냐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열 번을 털려도 열 번을 다시 자물통을 매달아 마침내 기둥자체가 온통 곰보딱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보다 못한 열찬씨가 하루는 집에서 붉은 바탕에 눈에서 노란 불빛이 철철 흐르는 호랑이가 수놓아진 커다란 타월을 가져와 도둑이 문짝을 뜯고 플래시를 비추는 순간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지게 문짝 안에 걸어두었는데 그 이튿날은 과연 도둑이 놀라자빠져 맘이 상했는지 오각정 기둥에 대고 한 뭉텅이 똥을 누고가기도 했다.

“세상이 온통 도둑놈 판이라. 남의 창고를 날마다 부수는 도둑에, 남의 밭 세 안내고도 계속 씨를 뿌리며 버티는 인간이나.”

혀를 끌끌 차는 교장선생을 보고

“참, 선생님, 다른 이야기 한다고 깜빡 잊을 번했네.”

영순씨가 열찬씨가 매고 온 등산 백을 열며

“외국이라고 나가서 선물이라고 마땅히 살 것도 없고 또 어지간한 것은 국산이 질도 좋고 가격도 사서 신발을 구해왔는데 발에 맞을는지?”

하면서 운동화 두 켤레를 꺼내 하나씩 건네주자

“웬 운동화를 다! 이거 비싼 거제?”

사모님이 반색을 하는데

“예. 최고급 나이키는 아니지만 시중에서 십 몇 만원은 하는 메이커이지요.”

“아이구, 그렇게 귀한 거를?”

“예. 그 전부터 교장선생님하고 사모님 신발이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명색 교육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교장선생은 일 년 내내 검정구두를 신고 다녔다. 삽질을 할 때 간혹 장화를 신기도 했지만 밭일을 하면서도 늘 검정구두를 심어 그 흔한 운동화도 한 켤레 없나하고 의아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들만 셋인 교장선생님의 먹고사는 양식과 찬거리는 대학교수인 큰 아들이, 병원비는 의사인 작은 아들이, 잡비는 회계사인 막내아들이 부담한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면 옷과 신발을 살 피복비는 따로 낼 사람이 없다고 했다. 교장선생으로 퇴직할 때 사립이라서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타서 아직 부교수로서 손자들 어학연수 시키느라 힘든 큰 아들과 울산에 새로 병원을 짓는 둘째아들 또 얼마 전에 회계사에 합격하여 결혼까지 하고 처가의 힘으로 회계사사무실을 여는 셋째에게 몇 천만 원씩 나눠주고 남은 돈을 우체국에 예금해서 나오는 이자 몇 푼으로 살아가는 판에 비싼 운동화를 살 여유가 없을 것이었다.

“맨날 이래 신세만 져서 우짜노?”

“아입니다. 어머니. 드릴 형편이 되니 드리지요.”

교장선생보다 나이 한 살이 더 많아 나이 여든이 넘은 사모님을 영순씨는 꼭 어머니라 불렀다. 물론 어머니 순란씨보다 나이가 여섯 살이 많기도 했지만 평소 늘 새파라동동한 얼굴에 이를 앙다문 모습이 바늘로 찔러 피도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아 자연 주눅이 든 모양이었다. 신발정도는 사위와 딸이 신발회사의 자재과와 개발과에 다니니 시제품(試製品)만 해도 열찬씨네 식구까지 신고 남을 정도였는데 그러나 두 노인네의 발이 하도 작아 특별히 작은 사이즈로 현장에 부탁을 해서 빼온 것이었다.
“오랜만인데 식사나 하시지요. 마침 사모님도 오시고.”

“신발만 해도 과분한데 식사까지?”

“예. 저희 내외 먹는 자리에 젓가락만 둘 더 놓는다고 생각하고.”

“그럼, 할 수 없지.”

하고 교장선생이 일어서려는데

“보이소, 야!”

사모가 교장선생을 똑 바로 응시하더니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데 가기는 어데로 따라간단 말이요?”

얼굴 가득 심술이 더덕더덕한데

“아이고, 어머니!”

깜짝 놀란 시늉을 하며 영순씨가 눈짓을 하는지라 멈칫거리는 교장선생을 이끌고 열찬씨가 먼저 산길을 내려왔다.

석대다리집에서 셋은 보신탕을 배가 큰 열찬씨는 보신탕 특에 소주를 하나 시키고 사이다도 하나 시켜 잔을 고르고 건배를 하는데

“우리가 뭐 세 살짜리 알라도 아니고 건배는 무슨 건배고?”

운동화선물에 보신탕 접대까지 받는 입장에서 절대로 안 간다고 버티다 영순씨가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못 이겨 따라온 것이 무슨 큰 인심이나 쓴 것처럼 오히려 사모가 고자세가 되어 뾰르통하게 입이 나와 심술을 부리는데 기가 찬 열찬씨가 한참이나 응시하자 맞은 편 영순씨가 황급히 엄지발가락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모처럼 보신탕을 먹는데다 가뜩이나 외국음식에 질린 열찬씨가 소주까지 곁들여 단숨에 한 그릇을 뚝딱하고 천천히 소주를 마시는데 뭐가 불편한지 억지로 꾸역꾸역 삼키던 교장선생이 상에 숟갈을 놓고 입을 우물거려 뭔가 끄집어내려는 데 툭하고 상에 떨어진 것은 뼈다귀나 음식물이 아닌 틀니였다.

“!”

뜨악해서 바라보는 열찬씨의 시선을 의식하고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하는 거지.”

교장선생이 식탁위의 휴지로 쓱쓱 닦아 입에 끼우고 다시 식사에 열중하는데 애써 무심한 척 술잔을 만지작거리는 열찬씨와 달리 영순씨는 방금이라도 뭘 토하기라도 할 듯 얼굴이 상기되며 수저를 놓았다. 순간

“사람이 나이가 들면 틀니를 할 수도 있고 틀니가 빠질 경우도 있지!”

사모가 새파라동동한 얼굴로 소리치는데 눈빛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듯 차가웠다.

“안 간다는 사람 억지로 밥 먹으라 가자 캐 놓고 사람 우사시킬라고 데려온 기가?”

어안이 벙벙한 열찬씨는 물론 사방의 빼곡한 손님들이 모두 쳐다보는데

“아, 아닙니다. 어머니!”

영순씨가 사색이 되어 통사정을 해도

“젊은 것 들이 늙은이들 업어다 난장 맞추는 것도 아이고. 이것 참 재수가 없으려니.”

하고 혀를 끌끌 차며 일어나더니

“영감은 안 일어나고 뭐 하요? 그 수모를 당하고 국물이 목에 넘어가요?”

멈칫거리는 영감을 일으켜 기어이 영순씨를 뿌리치고 방을 나가며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우리는 어데 자식이 없나? 대학교수에 의사에 회계사에.”

하고 나가버렸다. 계산을 치르는데 단골임을 알아보는 안주인이

“어르신들이 와 그라요? 시어른들입니까?”

영순씨에게 물어도 미처 답을 못하자

“아이구, 시어마시심술은 하늘이 준다더니 사모님 참 고생이 많습니다.”

하고 혀를 끌끌 찼다.

“야, 사람들이 교장선생 욕심은 욕심도 아니고 사모님 심술을 조심하라 카더니 역시 장난이 아니네.”

영순씨를 달래려 해도 묵묵히 운전만 하더니

“세상에는 남을 위해 일평생 손끝 하나도 얄랑 안 하고 바늘 하나도 안 보태주면서 심술과 험담으로 남을 제압하는 사람들이 있어 일단 만나거나 스치기만 해도 무조건 손해를 보거나 험담을 듣거나 시비에 빠져 송사에 걸리는 사람이 있어 흉인(凶人)이라 부른다더니 사모가 바로 그런 사람인가?”

하는 열찬씨에게

“우리 농사 그만 두면 알 될까? 농사지어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운동사마 하는 일에 이래 마음이 상해서야.”

목소리가 영 울먹울먹한데

“마 길가다가 개똥 밟은 셈 치지. 어떻게 구한 땅인데?”

“...”

“참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당하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신 시방 무슨 말 할라꼬 뜸들이요?”

“당신도 짐작하는가 베. 군에서 이런 꼴을 당하면.”

“그래 알았어요. 말 안 해도 잘 아니 제발 그만 둬요.”

“아, 알았어.”

하면서도 열찬씨가 이빨사이에 낀 음식물찌꺼기를 이쑤시개로 파 내 화장지에 문지르면서

(국 쏟고 ** 데이고 *대주고 빰 맞고...)

기어이 그 고약한 가사를 허밍하기 시작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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