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64)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8장 만두가게 개업(4)

이득수 승인 2024.06.18 07:00 의견 0

“처음에 월백만 원 준다는 것을 내가 30만 원만 받았는데 사실은 좀 모자라.”

“그래?‘

“하는 수 없지. 나도 자기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니 우리 생활비도 좀 덜 드는 셈이고 또 딸과 사위가 다 직장이 흔들리는 판에 그런 걸 따질 수도 없고. 그래서 딸 가진 죄인이란 말이 다 나오나 봐.”

“그래도 실비 한 50만 원을 받아. 부모자식이 문제가 아니라 셈이란 건 그 누구와도 정확해야만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 거야.”

“다음 달부터 그러든지.”

18. 만두가게 개업(4)

마침내 한더위가 꺾이고 8월 말이 왔다. 막상 시작하려고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먹먹해 좀체 시작하지 못 하던 장편소설 집필이 마침내 작되었다.

버든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의 가난과 외로움, 든든하고 자랑스럽기 보다는 무언가 아쉽고 불편하던 가족들과, 생각하기도 남세스러운 첫사랑 순영씨와,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른 옥자씨의 이야기, 야간대학과 동사무소 직원, 군대생활이야기와 공무원생활 중에 겪은 수많은 갈등과 조기축구회, 문인회를 비롯한 대인관계, 시와 시집, 책이 되지 못 한 소설들, 김모구청장의 매몰스런 핍박과 간신히 서기관이 되어 퇴직한 어수선하지만 천만다행인 대미(大尾), 장남의 권리를 내세우며 땅 한 평 쌀 한 톨 주지 않고 평생 동생인 자신을 핍박한 형과 형수, 소설가도 국어교사도 못 되어 한이 맺힌 문학에 대한 꿈과 미친 듯 읽어댄 수많은 책, 아부로 살아가는 간부들과 너무나 게으르고 의욕도 없는 참으로 이상한 부하직원들, 그리고 친가, 처가, 외가의 뭔가 아쉽고 어중간한 3족의 가족들과 동창들과 친구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하다 마침내 가닥을 잡은 것이었다.

우선 대대로 살아오던 언양 버든의 이야기를 <신불산>이란 제목으로 자전적 성장소설로 대하소설처럼 길게 쓰고 또 하나는 도시생활에서 만난 여러 군상(群像)을 <다리밑에서>란 제목으로 장편소설로 써나가는 것이었다.

그 첫 단계로 대하소설 신불산은 동학란이 일어나던 1894년을 기점으로

1.1894 봉당골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정초부터 유독 신불산에 산불이 잦았다. 밤마다 영축산에서 신불산을 건너 간월산에 이르는 긴 능선에 잉걸불에 단 철사처럼 새빨간 불빛이 일렁거리며 흉년과 폭정으로 가뜩이나 웅크린 세궁민들의 마음을 졸아들게 했다.

로 시작해서 자신의 할아버지와 증조모부터 이야기를 시작 하였고 또 장편소설 <다리밑에서>는

새 장편 <다리 밑에서>

1. 내 생애가 우뚝 서서 비에 젖는다.

…… 나무가 서서 비를 맞는다.

바위도 묵묵히 비를 맞고

집 없는 달팽이도 그냥 맞는다.

웅크린 어깨가 비에 젖는다.

하산(下山)할 길도 젖고

시야도 젖고

상념(想念)도 회상(回想)도 비에 젖는다.

나무가 선채로 비에 젖는다.

내 생애(生涯)가 우뚝 선채 비에 젖는다.

왜 하필 이 쓸쓸한 시가 떠올랐을까? 수백 권의 시집, 아니 수 천 편의 시를 읽고 더더욱 다섯 권의 시집까지 낸 처지에 하필이면 왜 이 음습한 시를 떠올렸을까?

올해로 퇴직 3년차, 예순 셋의 이름 없는 지방시인 가열찬이 주택공사아파트와 도시고속도로사이에 낀 좁은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 20미터쯤의 경사면 아래로 정신없이 질주하던 자동차들이 문득 속도를 줄이고 수십 톤의 컨테이너차량도 덜컹거리다 멈추면서 수영터널입구에서 시작된 답답한 정체의 꼬리는 점점 길어져 갔다.

로 그럴듯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는 <신불산>을 하루는 <다리밑에서>를 쓰는 식으로 번갈아 쓰다 단락이 좀 길어지면 사나흘 씩 쓰기도 했다.

그렇게 비로소 마음을 잡고 글을 쓰자

“당신 요즘 심관이 편한 가 봐. 표정이 밝고 눈빛이 살아있어.”

“응 드디어 소설을 시작했어.”

“다행이네. 축하해.”

영순씨도 기뻐하며 추석을 한 보름 앞둔 날 집안 벌초를 하러 대암댐 앞의 롯데별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미성당의 상문씨, 구늪의 상기씨등 60대 원로 층에 이어, 동생 백찬씨, 종손 성암씨, 구늪의 상식씨 등 50중반과 차례로 인사를 하고

“아재 오셨어요?”

홍근씨와 순우씨, 민우, 성우의 인사를 받던 열찬씨가

“사람들이 와 이거뿐이고?”

홍근씨를 바라보며

“용우, 찬우는?”

“용우형님은 회사가 바쁘다고 하는데 꼭 바쁘기보다는...”

“그래 시방 벌초 와서 문중사람들 얼굴 볼 기분이 아니겠지. 찬우도 그렇고.”

보상금을 들고 튄 수남댁의 얼굴이 떠올라 간이 툭 떨어지는데

“관우는 일요일에도 운전을 해야 되고 그럼 철우는?”

지금쯤 철우도 보상금을 찾아 제법 자리를 잡았으리라 싶어 묻는데

“철우요? 아이구, 철우소리만 나오면 골이 아파서...”

머뭇거리던 홍근씨가

“보상금 7억을 타서 사업하자는 친구에게 속아 한 입에 털어 넣은 것도 모자라서...”

“한입에 털어 넣다니?”

“그 기 참 기가 찬 이야깁니다. 버든사람들이 한창 보상금을 수령하고 이사를 가면 그 이튿날 바로바로 집을 밀어버려 도대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라 다들 서둘러 보상금을 받을 때 철우가 우리 집에 찾아왔지요.”

“그래서?”

“자기도 보상금을 타긴 타야겠는데 서류를 만들 방법이 없어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기골도 떨어지고 정신도 흐릿해진 아버지가 저더러 알아보라고 해서 철우와 둘이 울산의 사법서사를 찾아가 물어봤는데 가족관계증명서를 본 사법서사가 보상금을 타려면 집 앞 논의 명의가 죽은 큰 아부지 동찬씨 앞으로 되어있어 수남으로 시집간 용선이누나와 수용원에 들어간 가야의 도장을 받아 셋이 3등분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 당연히 그래야겠지.”

“수남의 용선이누나는 안 그래도 보상금 나오면 한몫 받을 거라고 시어머니가 학수고대하던 판이라 문제가 아니지만 시설에 수용된 가야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찾아야 하는 게 문제였지요. 그래서 이튿날 군청 여성정책과에 근무하는 제 친구를 같이 찾아가기로 했는데 타나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임대아파트를 찾아가도 사람이 없고 자주 어울린다는 친구의 부동산사무실을 찾아갔는데 분명히 안에 있거나 행방을 아는 눈친데 요즘은 통 안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며칠간을 더 기다리는데 언양바닥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라고요. 버든 출신의 좀 모자라는 노총각이 보상금 7억을 받아서 술 한 잔 받아주는 친구 꾐에 넘어가 동업자금으로 몽땅 사기 당했다고 말입니다.”

“그럴 리가? 아무리 세상물정을 몰라도 그 많은 돈을 몽땅 친구에게 넘기다니?”

“동업만 하면 무조건 한 달에 500만 원씩 이익금을 지급하기로 한다면서 선불로 석 달치 1,500만 원을 주고 또...”

“?”

“당일로 울산의 유흥가로 데려가서 가사장, 가사장하고 허파에 바람을 집어넣고 미리 짠 예쁜 아가씨랑 외박을 시키고 나서 서류는 자기가 만들어준다고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졸지에 새 양복과 구두에 또 캐주얼까지 몇 벌 산 철우가 친구사무실에 나가 거드름을 피우고 저녁마다 술집에 가서 가사장소리를 듣고 한 보름 잘 나갔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경찰서에서 부동산사무실에 있는 철우를 잡아갔다 아입니껴?”

“와? 무슨 일로?”

그 돈 7억을 쉽사리 받았다는 사실이나 가야는 두고라도 수남의 용선이 몫을 주지 않고 몽땅 친구에게 투자했다는 것이 안 그래도 찜찜했던 열찬씨에게

“친구가 시키는 대로 엉터리로 서류를 만들어 보상금을 타서 독식을 한 것이었지요.”

“엉터리? 뭐 어떻게?”

“제가 면회를 가서 물어보니 친구가 시키는 대로 가족관계증명서를 용선이, 가야 두 여형제가 없는 것처럼 위조를 했다는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직접 만들어주었다는 친구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고 그새 보상금을 독식한 걸 안 수남의 용선이누나 시어마시가 고발해서 결국 철우가 잡혀 갔지요”

“그래서 친구는 뭐라 카는데?”

“자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는 것입니다.”

“돈은?”

“전혀 구경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런? 그럼 친구하고 계약했다는 서류는?”

“울산서 술이 취해 돌아댕기다가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나? 그 귀한 서류를?”

“술에 곯아떨어진 것을 친구가 빼내거나 아니면 수발드는 아가씨를 시켰을 수도 있지요.”

“그래도 돈을 주고받았으면 영수증이 있고 또 목돈이라 은행계좌로 이체된 근거가 남았을 텐데.”

“은행에서 현금으로 빠져나간 근거는 있어도 그 다음부터는 오리무중이랍니다. 몽땅 현금으로 받아 어디 묻어두었는지 다시 그 친구명의로 은행에 꽂힌 기록도 없고.”

“당해도 철저히 당했구나. 죽 쑤어 개 준 꼴도 아니고 호박씨 까서 한입에 털어 넣은 것도 아니고.”

“그러게 말입니다. 버든 출신들이 하기 좋은 말로 집안에 사촌, 오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관공서에 높은 벼슬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째 그래 소홀한지 모르겠다는 소문도 돌고 말입니다.”

“뭐라?

열찬씨의 얼굴이 화끈한데

“아부지가 어떻게든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원만하게 해결 지으라고 해서 여러 번 찾아갔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본다고 사람을 만나야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삼촌한테 자문도 받을 건데 말입니다.”

“그래, 그렇지. 사람을 만나야 말이지.”

“그것도 그 친구란 사람이 다 코치했답니다. 집안사람들 만나면 문중 답이라고 수십 명이 같이 나누자고 하면 철우 몫은 거의 없다고 꼬드겨서.”

“그래 돈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구나. 그래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경주교도소에 있다는 말이 있심더.”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