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4호-신인상 추천사】 고단하고 쓸쓸한 삶의 서정적 승화 - 최서림

장소시학 승인 2024.06.19 17:27 의견 0

<추천사>

남해안 어촌의 신산한 민중적 서사

김 선 태

신명자의 시는 한마디로 사라져가는 민중적 서사 혹은 민중생활사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시인의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대략 60년대 산업화 이후부터 현재까지라는 시간적 배경과 남해안의 어느 어촌이라는 공간적 배경 혹은 장소성을 거느린다. 여기서 공간을 특정할 수 없는 것은 시 속에서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통영”이나 “갈곶리”, “매물도”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남해안의 어느 어촌으로 추정할 뿐이다.

필자가 신명자의 시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녀의 시가 특별히 새롭다거나 문학적 수월성을 지녀서가 아니라 남들이 외면하거나 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산업화 이후 소멸해 가는 농어촌이나 농어민들의 신산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저 70∼80년대의 민중시에서 충분히 다뤄졌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많던 민중시인들은 죄다 타버린 촛불처럼 꺼져버리고, 대신 장황한 개인적 서사와 실험성을 지닌 새로운 촛불이 타올랐다.

요령부득의 난해성으로 무장한 최근 시들은 독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저 혼자 앞만 보며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하긴 농어촌의 붕괴와 지방소멸, 첨단 AI를 앞세운 4차산업시대에 아직도 농어촌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철 지난 해수욕장에서 지난여름의 추억을 곱씹거나 흘러간 유행가를 읊조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어촌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고,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소중한 삶의 현장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그 소외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필자는 나이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신명자가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줄 적임자가 아닌가 한다. 조선시대로 치면 마지막 전기수傳奇叟가 아닌가 한다. 모두가 휘황한 문명의 불빛이 있는 도시로 떠나버린 풀숲에 남아 홀로 깜박거리는 반딧불이처럼 말이다.

신명자 시가 지닌 특징을 몇 가지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제적인 측면에서 가난한 어촌민의 생활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1인칭 화자인 ‘나’를 통해 발화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나’는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1인칭 전지적 화자일 수도 있다. 「어떤 고백」, 「감자와 싹이」를 비롯한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남편 등 가족과 관련한 시편들이 전자에 속하고, 「통영댁」, 「진을수 여사」, 「박산 할메」, 「이화」, 「선이 할메」, 「문씨」 등 마을 장삼이사들의 생애담과 관련한 시편들이 후자에 속한다. 전자에 비해 후자의 서사성이 호흡도 적당하고 입담도 걸쭉하다.

둘째, 표현적인 측면에서 압축적인 묘사와 적절한 비유를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 서사를 담은 시들이 호흡이 길고 다소 장황하기 마련인데, 신명자의 서사는 비교적 짧고 압축적인 특징이 있다. 이러한 느낌을 부추기는 데는 조사의 생략이 한몫하고 있다. 그 생략이 다소 심해서 읽기를 방해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필자는 시마다 한 구절씩은 적절한 비유적 묘사를 동원한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는 그녀가 이미 상당한 시적 수련을 쌓았다는 증거이다. 이를테면, “평생 호미와 살았다고 몸으로 새기는 글자/기역 디귿 리을”(「양천 온천」), “등불 같았던 울음소리/켜면 꺼지고 켜면 꺼지고.”(「갈곶리」), “포구나무 가지처럼 휜 허리는/지팡이가 모시고 나왔다”(「박산 할메」), “외아들을 잡았다는 소문이/어망 멸치 떼처럼 한동안 파닥거렸다”(「이화」), “울타리 동백나무들/가을되면 영감 잔소리처럼 꽃 열렸다가/늦봄 질 땐 툭툭 영감 혀 차는 소리”(「동백꽃」) 들이 그것이다.

셋째, 시어의 선택 측면에서 지역 방언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방언의 사용은 시적 리얼리티는 물론 그 지역의 독특한 향토성을 살리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자칫 남용하게 되면 다른 지역 독자들과의 소통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천박성으로 떨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신명자의 시는 경남 방언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본다. “정구지(부추)”, “따꾸(달구)”, “우짤라꼬(어쩌려고)”, “고마(그냥)”, “처니(처녀)”, “가삐는(가버리는)”, “하건노(하겠나)”, “드릴까예?(드릴까요?)” 등이 대표적이다.

끝으로, 시인의 길에 들어선 신명자에게 필자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도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남해안 어촌 민중들의 이야기를 계속 써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신명자만의 시적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선태 시인

김선태

시인·문학평론가,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 시 추천으로 문학사회에 나섬. 시집 『살구꽃이 돌아왔다』, 『햇살 택배』, 『짧다』 들을 펴냈다. 시작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들을 수상했다. 현재 목포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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