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얼큰해 한 잠을 자고난 열찬씨내외가 네 시경에 일어나 다섯 시 돌잔치를 위하여 부지런히 세수를 하고 내려오니 5층의 사돈댁에서도 정석씨보다 나이가 일곱 살이나 어린 손위처남이 할머니를 부축하고 내려와 사돈의 차로 네 식구가 출발하고 열찬씨네도 택시를 불러 시내의 식장으로 향했다. 식장에 들어서자
“안녕하십니까? 사돈어른.”
50대 초반의 잘 생긴 신사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아, 예.”
누군가 생각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며 손을 잡는데
“우리 막내 외삼촌이예요.”
상미씨가 소개를 했다. 무슨 경찰서의 교통과장으로 혼삿말이 나왔을 때 구청의 총무국장이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딸을 주라고 했던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 밖에 말쑥하게 잘 차려입은 부인네 셋과 참으로 인형처럼 반듯하게 잘 생긴 처녀가 둘, 상미씨의 친정이라지만 사실상 외가 쪽 손님 여섯과 열찬씨네, 사돈네해서 돌잡이아이까지 열 네 명이 참석자전부였다. 서로 인사를 끝내고 자리를 잡아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저희는 손님을 많이 초청해 이벤트를 하는 번거로운 행사대신 간단하게 할아버지이신 저희 아버님께서 아기에게 써주신 축시를 어머니인 상미씨가 낭송하는 것으로 공식행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정석씨가 안내하자
“아, 축시라! 결혼식 때 눈물을 쏙 빼게 하던 그 축시! 우리 상미는 시인 시아버지를 두어 행사 때마다 시 호사를 하네.”
하며 외삼촌이 박수를 치자 모두 따라서 박수를 쳤다. 마이크를 받은 상미씨가 테이블 위의 컴퓨터를 조작하자 정면과 측면에 설치된 세 곳의 모니터에 저들의 결혼식장면과 갓난 애기 가화의 모습을 비롯해 여러 장면의 사진이 한참이나 지나가더니 마침내
너의 꿈에게
- 李嘉禾의 첫돌에 할배가 주다
아가, 예쁜 가화
우리 아가야,
너는 우리에게 봄으로 와서
파란 새싹, 노란 햇살, 해맑은 웃음
집안 가득 기쁨으로 채우는 희망
내 눈짓, 손짓 하나, 서툰 걸음도
이 땅을 채워나갈 내일이라고
고웁거라, 착하거라 기원하지만
아직 어린 네게도 삶이 있나니
네게 닥친 무엇이든 맘 가는 길엔
오로지 너의 꿈, 네 의지대로
꿈이든 신념이든 한 사람이든
생애를 치열하게 태워도 좋다.
아름다운 이 세상 빛나는 미래
너에게, 네 꿈에게 충실하여라.
아가, 아가, 우리 가화
예쁜 아가야.
(2013. 1.12 가열찬)
열찬씨가 미리 써준 축시가 한 줄씩 천천히 지나가며 상미씨가 시를 낭송하는데 목소리가 차분하고 고왔다. 상미씨가 감성이 풍부해 학창시절 문예반도 나가고 합창부도 나가고 방송부도 나가 시낭송에 아주 능하다고 했다. 차분하게 시낭송이 끝나자
“역시 시인의 손녀는 돌잔치부터가 다르군!”
박수를 유도한 막내삼촌이
“사돈어른, 저 아이의 이름이 아까 자막에 보니 예사로운 글자가 아니던데 무슨 깊은 뜻이라도?”
하는 걸 옛날 왕조시절 풍년의 징조로 왕께 바치던 한 이삭에 200개 이상의 열매가 달린 풍요롭고 상서로운 벼이삭라고 설명을 하자
“아이구, 나도 손자를 보면 저런 멋진 이름을 지어주어야 할 텐데.”
하며 꽃처럼 예쁜 딸 둘을 차례로 바라보는데 애 띤 얼굴이기는 해도 나이가 정석씨보다도 많은 두 딸들은 아직 도무지 시집갈 염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식사와 함께 술잔이 오가는데
“처남, 오늘 돌 행사를 마치고 우리 집 앞에서 사돈어른 모시고 노래방에 가려는데 같이 가려는데 같이 노래방 가실래요?”
사돈의 말에
“노래방 좋지! 평소 존경하는 사돈어른 모시고.”
누가 들어도 공무원 티가 나는 정부미식 발언을 하는데
“오빠!”
안사돈이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참 나는 내일아침 서장님 모시고 등산을 가기로 해서...”
외삼촌이 꼬리를 뺐다. 행사가 다 끝나고 돌아와 2층 입구에서
“사장어른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노래방에 대한 무슨 언질이 있을까 싶어 밭사돈을 바라보는데
“사돈어른 피로하실 텐데 안녕히 주무세요.”
안사돈이 밭사돈의 팔을 끼자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밭사돈이 그냥 올라갔다.
“야, 맥주 사다놓은 것 없나?”
부자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시계를 보니 이제 여덟 시가 조금 넘었다. 별 말도 없이 부자간에 서너 잔 맥주를 마시는데 아이가 잠이 들자 혼자 놀기가 싫은지 할머니의 품에 안긴 영서가 꾸벅꾸벅 졸자
“여보, 아이들 피로한데.”
결국 아홉시도 못 되어 자리에 누웠다. 내일 아침 7시까지는 깨어도 자는 척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서울 사람 같이 술 먹자거나 놀자는 것은 어느 게 진심인지 통 알 수가 없네. 꼭 군대시절 장완준이 꼬라지처럼...)
자리에 누워 하루를 되새겨보던 열찬씨가 저도 몰래 한숨을 쉬며
(무단히 밦 값을 근 30만 원이나 쓰고...)
한참이나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자말자 부산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데
“엄마, 오전에 시내구경도 하고 천천히 놀다가 오후에 기지요?”
아들이 만류해도
“몰라. 너거 아부지가 하도 가지카이 우짜노? 부산에 꿀이 붙었능가 모르겠네.”
하면서도 역시 한 시라도 바삐 떠나고 싶은 눈치였는데 그건 어쩌면 평소에 없던 시부모가 와서 불편한 며느리를 신경 쓰는 것만 같았다. 택시를 부르는 아들을 보고
“너거도 엔간하면 자동차 하나 사야겠다.”
“그래야지요. 식구가 자꾸 불으면 다니기도 불편하고.”
할 때까지 무심히 넘어갔는데 택시에 오르기 전
“아가, 몸조심하고.”
“네.”
고부간의 대화가 어쩐지 심상찮아 택시가 출발하자
“와? 우리 며느리가 세 살 먹는 알라도 아이고 몸조심하라니?”
열찬씨가 묻자
“아니, 당신은 아직 그것도 눈치 못 챘단 말이요?”
“눈치라니?”
“상미가 또 아이를 가졌지요. 가화 그 년이 터는 잘도 파네.”
“그래. 몇 개월이나 되었는데?”
“한 3개월. 아마 추석 전에 낳을 겁니다.”
“엥. 그럼 연년생인데?”
“지 언니하고 한 19개월 차이가 난답니다. 말이 연년생이지 한창 때 19개월 정도의 터울은 흔하지요.”
“그렇구나. 이번엔 설마 아들이겠지.”
“당신은 아들이 그래 좋소?”
“좋고 나쁘고 가 아니고 하나는 있어야지. 현서가 딸이 되서 외동아들 비슷한 도연이네 대가 끊어지는 것만 해도 섭섭한데.”
하다가
“참, 아들인지 딸인지 병원에서 알아봤는가?”
“아이구, 이 양반아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지? 아직은 모른답니다.”
“...”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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