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산티아고 이야기(12) 11일차 - 그라뇽에서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까지

스페인 아가씨 마리나 울먹이며 귀가
아름다운 벨로라도 거쳐 목적지 도착
오늘은 27.7km, 전체 245.8km 걸음

조해훈 승인 2024.12.01 18:45 의견 0
바르셀로나 아가씨인 클라라(오른쪽)가 필자와 아침에 그라뇽 성당에서 헤어지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티토]

아침 7시쯤 성당에서 아침을 차려줘 순례자들은 맛있게 먹었다. 8시 조금 못 되어 배낭을 꾸리고 숙소인 그라뇽 성당에서 출발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오늘 집이 있는 바르셀로나로 출발하는 아가씨인 마리나가 또 벗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필자에게 “같이 사진 한 장 찍어요”라고 한다. 함께 사진을 찍는데 마리나는 또 울상이다. 착하고 정이 너무 많은 아가씨이다. 필자는 ‘마리나가 너무 착해 아들이 한 명 더 있으면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들과 성당 바깥으로 나왔다. 그새 얼마나 정이 들었으면 마리나는 또 일일이 포옹하고 떠났다. 티토와 가브리엘, 모니카와 필자는 함께 길을 나섰다. 모니카는 새로운 벗이다. 이제 원래 스페인 벗은 다 떠나고 티토와 가브리엘, 안드레아 세 사람만 남았다. 안드레아는 마리나와 잠시 차를 한 잔 마시고 출발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었으므로 카페에 들를 필요가 없었다. 필자는 뒤에 처지고 벗들은 앞서 걸었다.

아침에 순례길 양쪽으로 경작지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오늘부터는 포도주 생산지를 벗어나 포도밭은 안 보인다. [사진= 조해훈]

그라뇽은 리오하주(州)에서 순례자들이 지나는 마지막 마을이다. 마리벨 언덕 위에 알폰소 3세가 세운 성벽의 보호를 받아 중세의 호황을 누렸던 마을이다. 10분쯤 가니 흙길에 이어 농경지가 나타났다. 포도밭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라 리오하 포도주 생산지를 벗어난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경작지에 심었던 농산물을 모두 수확하고 새로운 파종을 위해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농경지가 대체로 밋밋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포도밭이 있어 황량함이 덜 했다. 하늘은 어두웠다. 비는 내리지 않으나 하늘엔 먹장구름이 많다. 맑은 날보다는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 더 많았다.

경작지 사이의 순례길. 양쪽 경작지 색깔의 대비가 이채롭다. [사진= 조해훈]

30분쯤 가다 보니 길옆으로 사료용 옥수수를 베어낸 커다란 밭이 있다. ‘앞으로 저 밭에 뭘 심을까? 또 옥수수를 심을까?’ 궁금했다. 10분쯤 더 갔다. 여기부터는 부르고스주(州)라는 간판이 서 있었다. 여기서 5분 정도 더 가니 베어내지 않은 해바라기가 시커멓게 변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사료용 옥수수를 베어낸 밭이다. 이 밭에 뭘 심을지 궁금했다. [사진= 조해훈]
해바라기 밭. 수확철이 지나서인지 해바라기가 시커멓게 변색돼 있다. [사진 = 조해훈]

오전 9시 10분, 마을이 나타나면서 남녀 순례자 형상의 조형물이 서 있다. 오랜 세월 전부터 순례자들이 각 마을을 지나면서 경제적인 기여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 엊그제 티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티토는 “예.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줍니다. 산티아고 길 위에 사는 사람들이 순례자들에게 친절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무래도 종교적인 이유일 겁니다. 그다음에 순례자들이 순례를 하면서 먹고 자면서 돈을 쓰지요. 요즘 1년에 수만 명이 순례를 하면서 돈을 쓰니 지역에 큰 도움이 되지요.”라고 설명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형상을 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마을에 들어가니 제법 규모가 큰 오래된 성당이 있다. 서너 집만 있어도 작은 성당이 있다. 물론 작은 마을의 성당은 폐쇄돼 있다. 하지만 가톨릭이 지금보다 주민들에게 더 영향력이 있을 때는 운영되었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도로와 나란히 순례길이 있다. 오전 9시 24분, 길 오른쪽 밭에 잡초 같은데 누런색이다. 물론 잡초가 아닐 수도 있다. 오전 10시, 또 마을이다. 마을이 작아 몇 발짝 안 걸어 바로 흙길이다. 야트막하지만 산들이 보인다. 지평선만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정감이 간다. 한국의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15분, 도로 아래 자그마한 터널을 지난다. 독특한 문양으로 ‘뷰엔 까미노(BUEN CAMINO)’라고 적혀 있고, ‘이곳으로 가라’는 뜻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또 양옆으로 경작지만 보이는 길을 걷는다. 어제까지는 포도밭을 지겹도록 보면서 걸었는데 거짓말처럼 오늘은 포도밭이 전혀 없다. 또 집이 서너 채 있다.

오전 11시 또 도로를 따라 순례길이 이어진다. 필자는 이렇게 길의 변화가 있는 게 덜 무료하다. 산맥의 높은 지대를 걷는 경우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평탄한 들판 길은 비슷비슷한 풍경이면서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지나는 차량도 구경할 수 있다. ‘아, 또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가 지나가는 구나’라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큰 트럭의 경우 손을 흔들어주면 운전자가 앉은 운전석이 높아 그가 답으로 손을 흔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혼자 걷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전 11시 30분, 무슨 공장 같은 곳을 지난다. 여전히 도로 옆길이다. 도로를 따라 난 마을을 지난다. 자그마한 호텔 벽에 ‘벨로라도(Belorado) 3km’라고 적힌 글씨를 본다. 그라뇽에서 벨로라도까지는 15.5km이다. 필자는 오늘 27.4km거리인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까지 간다. 그렇다면 아직 15km가 더 남았다는 말이다.

목마른 순례자들에게 목을 축이라고 수돗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40분, 또 한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목마른 순례자들이 마실 수 있는 수도가 있고, 그곳에 수돗물이 철철 흐른다. 다시 길은 도로를 따라 계속된다. 여기서 1시간여 더 가니 한 알베르게에 순례자의 모형이 대문 안쪽에 일렬로 몇 개 서 있다. 벨로라도 마을 입구이다. 벨로라도에는 16세기에 건축된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이 있고, 17세기에 지어져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산 페드로 성당(Iglesia de San Pedro)이 있다. 또 16세기에 건축된 브레또네라 성모 수도원(Convento Nuestra Senora Bretonera)이 있으며, 여기에는 클라라회 수녀님들이 있다. 마을도 아름다워 이곳에서 하루를 묵는 순례자들도 많다. 하지만 필자는 티토 일행과 만나기 위해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의 알베르게까지 가야 한다.

점심 시간 때 카페에서 필자를 기다려준 벗들. 왼쪽부터 가브리엘, 모니카, 필자. [사진= 티토]

오후 1시 15분, 벨로라도 마을에 카페가 있어 점심을 먹을 겸 들어갔다. 역시 티토와 가브리엘, 모니카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에 늘 감동한다. “먼저 출발하시라”고 해도 “출발은 같이 해야죠”라며, 필자가 커피와 빵을 먹을 동안 기다려 준다. 오후 1시 50분쯤 카페에서 나왔다. 역시 벗들을 먼저 앞서게 했다. 오후 2시 22분, 이제 벨로라도를 벗어난다. 강이 흐른다. 띠론 강이다. 긴 나무다리를 건넜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강이나 계곡을 만나면 필자는 바로 지나지 않고 잠시 서서 물이 흐르는 걸 구경한다.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또 길은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다. 오늘은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 있다. 아무래도 내일은 비가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후 2시 34분, 산티아고 길옆이 도로이므로 주유소가 있다. 주유소 입구에 산티아고 지도와 ‘뷰엔 까미노’ 글씨가 적힌 커다란 입간판이 있다. 이런 걸 보면 왠지 반갑다. 거기서 몇 발 더 가니 주택 벽면에 역시 남녀 순례자가 휴식하는 그림과 다른 순례자가 뒷모습으로 서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바탕색이 노란색으로 느낌이 아주 따뜻하다.

한 알베르게에 산티아고 순례자 모형의 조형물이 몇 개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그곳을 지나니 또 본격적인 흙길이다. 도로를 벗어나 양쪽으로 경작지가 있는 길이다. 오후 3시 22분, 순례자가 쉴 수 있도록 나무 벤치가 있다. 벤치가 낡은 것으로 보아 설치한 지가 오래된 것 같다. 이어 집 몇 채가 있는 마을을 지난다. 한 집 대문 입구에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껍질을 붙여놓은 게 보인다. 저 정도면 순례자에 대한 주인의 애정이 대단한 게다. 다시 흙길을 걷는다. 하늘의 먹구름이 좀 사라졌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울 인근 개울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37분, 또 한 마을을 지난다. 표지판에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3.7km’라고 적혀 있다. 이제 1시간가량만 더 가면 된다. 또 경작지 사이의 흙길을 걷는다. 오후 5시 26분 길은 다시 도로 옆으로 나 있다. 오후 5시 33분, 개울을 지난다. 작은 물살이 이는 시내가 예쁘다. 오후 5시 38분, 드디어 목적지인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에 도착했다. 5시 45분 알베르게에 들어왔다. 그런데 티토와 가브리엘이 없다. 아마 알베르게가 어긋난 모양이다. 여기서 안드레아와 한국 청년 두 명을 만났다. 숙소 옆에 카페가 하나도 없었다. 저녁으로 일회용 커피와 며칠 전 먹다 남은 자그마한 바게트를 먹었다. 역시 쉬운 날은 아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마을. 도로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사진=조해훈]

이 마을은 부르고스주(州)에 속한 지역이다. 13세기 이후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운영되면서 번영했다. 1283년 이 지역의 왕인 알폰소 10세의 아내인 아라곤의 비올란테 왕비가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이곳에 설립했다. 이 병원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도시의 형태가 도로를 따라 길게 형성돼 있다. 큰 트럭들이 왔다 갔다 했다. 주도(州都)인 부르고스와의 거리는 36km, 로그로뇨와의 거리는 78km이다.

오늘은 그라뇽에서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까지 27.7km를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245.8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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