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말에 개봉한 영화 <올려다보지 마 Don't Look Up>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천문학과 대학원생과 그의 지도교수가 에베레스트 산만한 크기의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발견한다. 지구와 부딪친다면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예상 충돌 시점은 6개월 뒤이다.
이들은 위험성을 백악관에 알리지만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곧 있을 중간 선거를 위해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한다. 놀란 두 사람은 TV쇼에 나가 위험을 알리지만, 진행자들은 우스갯소리만 할 뿐이다.
어이없게도 이 사실은 섹스 스캔들이 난 대통령이 시선을 돌리기 위해 혜성의 존재를 발표하면서 알려진다. 미국은 혜성의 궤도를 변경하기 위해 우주선을 발사하지만, 이 우주선은 돌연 지구로 돌아온다.
대통령의 후원인인 ‘피터 이셔웰’ 탓이다. 그는 혜성에 무려 140조 달러의 희귀 광물이 묻혀 있다고 주장한다. 이셔웰은 혜성이 더 가까워지면 그때 드론을 쏘아 올려 혜성을 조가조각 나눠지게 만든 다음, 바다에 빠지게 유도하겠다고 한다.
교수가 보기에 이 계획은 위험천만이다. 실패하면, 혜성은 대책 없이 지구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대안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드론은 실패하고 지구는 종말의 날을 맞는다.
뜬금없다 싶은 영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MIT 물리학과 교수인 맥스 테크마크Max Tegmark 때문이다. 그는 2023년 4월 25일 <타임>에 “인공지능으로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올려다보지 마’ 사고방식”이라는 글을 실었다.
테그마크 교수는 여러 가지 점에서 지금이 이 영화와 아주 비슷한 때 같다고 말한다.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인공지능 연구자의 절반이 “인공지능이 인류 멸종을 초래할 가능성이 10퍼센트 이상이다”고 답했다.(인류의 멸종을 부를 정도로 극단적으로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14퍼센트나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반응은 부정과 조롱, 체념의 조합이었다면서, 이는 오스카상을 받을 만한 정도로 어둡고 코믹한 반응이었다고 테크마크 교수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눈떠보니 선진국』의 저자이며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인 박태웅의 『AI 강의 2025』(2024)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박 의장은 인공지능이 가져다줄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인류 절멸의 가능성에 대해서 합리적 근거를 갖고 설명한다.
영화 ‘올려다보지 마’의 예시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는 사회현실을 지적하는 데 적절해 보인다. 그렇기도 하지만 필자는 ‘올려다보지 마’의 줄거리를 읽으면서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서사 같다는 착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진 게 권력욕밖에 없는 대통령이 아내와 명태균 게이트로 코너에 몰리자 생뚱맞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에 동조하는 여당, 대한민국호가 절벽에 다다르는데도 본분인 비판은 고사하고 우스갯소리나 농하는 대다수 수구 언론들, 노동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사익만 탐하는 기업들,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적실하지 않은가.
내란죄 피의자로 체포된 윤석열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으므로, 이제 윤석열은 피고인이다. 윤석열을 법정에 세움으로써 절벽으로 질주하던 대한민국호를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그렇지만 지난 2년 8개월 동안 어질러놓은 국정의 후과는 심각하다.
현대국가의 미래는 과학과 기술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물론 과학과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정치·정책적 지원과 사회 문화적 토양이 필요한 건 말할 것도 없다. RE-100(Renewable Energy 100)도 모르고, 모름까지도 모르는 무지한 대통령이 과학계에, 곧 우리 미래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새삼스럽지만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한 번 짚어본다.
『AI 강의 2025』에 아주 잘 정리(pp.383~387)되어 있기에,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다소 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2023년 7월, 정부는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권 카르텔’이 과학과 기술 쪽 예산을 나눠먹고 있으니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데 따른 것이다. 전년 대비 14퍼센트 넘게 줄였다. 1998년 IMF 시절이나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에도 우리나라는 R&D 예산을 줄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정부는 끝내 ‘카르텔’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무려 33년 만의 예산 삭감의 원인이 되었던 일이 알고 보니 실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과학과 기술 예산 삭감은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네이처>에도 실렸다. <네이처>는 “R&D 예산 삭감은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수 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마지막 지푸라기’는 이미 더 이상 질 수 없을 만큼 많은 짐을 지고 있는 낙타에게 지푸라기 하나를 더 얹으면 그만 낙타의 등이 부러진다는 뜻이다. 곧, 한국의 R&D 예산 삭감이,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2025년 예산은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자랑했다. 삭감 전과 비교해 1,000억 원이 늘었지만, 물가가 그만큼 올라, 실제로는 1조 원 줄어든 규모이다. 카르텔도 밝히지 못하고, 이렇다 할 개선도 하지 못한 채 R&D 예산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왔다.
예산이 복구되었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석박사과정 학생들과 박사후과정 흔히 포닥(포스트 닥터)이라고 얘기하는 연구자들의 연구 기간은 최소 3년이 넘는다. 갑자기 지원이 중단되어버리면, 그 1년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해왔던 연구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지원이 중단된 나라 전체의 모든 연구가 그렇게 됐다.
인재 유출도 피할 수 없다. 박사과정에 있거나 박사후과정에 있는 연구원들은 가족을 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연구비가 끊기면 당장 생계가 위협 받는다. 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중국으로, 유럽으로 떠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인재 유출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해외로 떠난 이공계 인재가 30만 명을 넘어섰다. 이공계 학부생을 비롯해 석박사 고급 두뇌들이 매년 3~4만 명씩 떠나고 있다.
AI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AI연구소가 발간한 <AI 인덱스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AI 산업은 인재 유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캐나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이 세계 각국의 인재를 긁어모으는 사이에, 한국은 세계에서 (인도, 이스라엘에 이어)세 번째로 인재가 많이 유출되는 나라가 됐다.
자, 어떤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이렇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고 있었다. 과학자가 공부하고 연구할 수 없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윤석열 정부 들어 하도 법기술자들, 검사 출신들이 나라의 요직을 독점하다 보니 방송 패널들도 거의 변호사들이다.
변호사는, 법조인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재인 것은 인정한다. 마는, 전체 속의 부분일 뿐이다. 전체를 부분 속에 우겨넣으면, 대롱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터널시야의 우를 범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내란죄 피고인을 응징하고, 선동자와 동조자를 동시에 엄단하여, 과학·기술자도 국민 모두도 한껏 하늘을 ‘올려다 볼’ 세상을 열어야지 않겠는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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