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淨化(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시조, 사랑을 노래하다’ 100번째 작품으로 이호우 선생의 「달밤」을 소개합니다. 이 작품의 화자는 ‘무엔지 그리운’ 달밤,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평화로웠던 옛날을 회상하며 달빛처럼 맑은 숨결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서 쓴 시에서 ‘밤’은 일반적으로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비유하는데 이 시조에서는 부정적인 어둠의 밤이 아니라 ‘달밤’입니다. 달빛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추억의 언저리를 비추며 평화로웠던 과거를 회상하게 합니다. 또한 달빛은 온 세상을 정화(淨化)시키고 ‘사랑’의 숨결로 가득한 세상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이런 ‘그림’ 같이 아름다운 세상이 오래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 날이 새면 ‘미움’과 ‘더러움’으로 가득한 세상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 뻔하기에 그는 차라리 이 ‘달밤’ 속에 머물고 싶은 것이죠.

이호우 선생의 <달밤>이 어둡고 힘든 우리 시대를 ‘사랑’의 숨결로 어루만져 주길 기원하며 「시조, 사랑을 노래하다」를 마무리합니다.

손증호 시인

◇손증호 시인

▷2002년 시조문학 신인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부산시조 작품상, 성파시조문학상, 전영택 문학상, 나래시조문학상 등
▷시조집 《침 발라 쓰는 시》 《불쑥》, 현대시조 100인 선집 《달빛의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