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증호 시인의 「시조, 사랑을 노래하다」(95) 구세주 - 서석조

손증호 승인 2024.12.25 07:00 의견 0

구세주

서석조

남양산 로터리 횡단보도 소나기 속
우산 없이 허둥지둥 헤쳐 뛰던 한 여인
전봇대 부여잡으며 속절없이 젖어들고

지나던 승용차 한 대 느닷없이 멈춰 서서
차창을 스륵 내려 우산 하나 툭 건네곤
휑하니 가던 길 그냥 미련 없이 가버린다

세상에 참, 구세주가 따로 또 있을까
화들짝 놀라 펼친 우산 위 빗줄기가
축포를 터트리듯이 은빛으로 퍼져난다

괴로움이나 곤경에서 구해 주는 사람을 구세주라고 합니다. 남양산 로터리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여인은 우산도 없이 ‘허둥지둥 헤쳐 뛰’면서 소나기를 ‘속절없이’ 맞고 있군요. 그런데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여인 앞에 ‘느닷없이 멈춰 서서’ ‘차창을 스륵 내’리더니 무심한 듯 ‘우산 하나 툭 건’네 주고 ‘미련 없이 가버리’는군요. 이 모습을 지켜본 화자는 그가 바로 구세주라고 생각하는데, 그 순간 ‘우산 위 빗줄기가/ 축포를 터트리듯이 은빛으로 퍼져’나갑니다.

손증호 시인

◇손증호 시인

▷2002년 시조문학 신인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부산시조 작품상, 성파시조문학상, 전영택 문학상, 나래시조문학상 등
▷시조집 《침 발라 쓰는 시》 《불쑥》, 현대시조 100인 선집 《달빛의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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