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소리
조오현 ( 무산스님·1932~2018)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 소리 들을라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 있어야
*장독杖毒... 장형杖刑을 맞아서 생긴 상처의 독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지고 있는 고목 앞에 서면, 그 위용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찰나의 시간을 내 안에 가두고,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틴 소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으레껏 썩은 속은 떨어져 나갔어도, 아픈 가지들은 부러졌어도, 삶이라는 길을 향하여 줄기차게 이어가는 내면의 장독杖毒이 보이기 때문이다. 삶은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다. 순간의 힘들이 쌓이고 쌓여 보여주는 듬직한 그 둘레에서 몸과 마음을 기대어 본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문 앞에서 시조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한 줄 시어가, 여명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촉촉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조의 결이 되어 손잡이를 살며시 잡아봅니다. 고맙습니다.
◇김석이 시인
▷2012 매일신문신춘 당선
▷2013 천강문학상, 2019 중앙시조 신인상 수상,
▷시조집 《비브라토》 《소리 꺾꽂이》 《심금의 현을 뜯을 때 별빛은 차오르고》
단시조집 《블루문》 동시조집 《빗방울 기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