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역 앞 조형물 [사진=김석이]

아버지가 서 계시네

이종문

순애야~ 날 부르는 쩌렁쩌렁 고함소리
무심코 내다보니 대운동장 한 복판에
쌀 한 말 짊어지시고 아버지가 서 계시네

어구야꾸 쏟아지는 싸락눈을 맞으시며
새끼대이 멜빵으로 쌀 한 말 짊어지고
순애야~순애 어딨노? 외치시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또 하도나 부끄러워
모른 척 엎드렸는데 드르륵 문을 열고
쌀 한 말 지신 아버지 우리 반에 나타났다

순애야, 니는 대체 대답을 와 안 하노?
대구에 오는 김에 쌀 한 말 지고 왔다
이 쌀 밥 묵은 힘으로 열심히 공부해래

하시던 울 아버지 무덤 속에 계시는데
싸락눈 내리시네, 흰 쌀밥 같은 눈이
쌀 한 말 짊어지시고 아버지가 서 계시네


꾸밈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쌀 한 말에 가득 실렸다. 쌀밥이 귀하던 시절! ‘자식 입에 밥숟가락 들어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던 말이 생각난다. 밥심, 밥벌이, 밥줄, 등등 밥은 곧 생명이다. 밥이 상징하는 삶의 언어들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자식이 굶을까봐 무덤에서도 ‘흰 쌀밥 같은’ 싸락눈으로 세상을 덮고 있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가슴을 적신다.

김석이 시인

◇김석이 시인

▷2012 매일신문신춘 당선
▷2013 천강문학상, 2019 중앙시조 신인상 수상,
▷시조집 《비브라토》 《소리 꺾꽂이》 《심금의 현을 뜯을 때 별빛은 차오르고》
단시조집 《블루문》 동시조집 《빗방울 기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