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년 11월 10일 일요일이다. 오늘은 걷지 않고 레온(Leon) 시가지를 둘러보면서 하루를 쉴 예정이다.
어제 레온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침대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만시아의 알베르게에서 한 방에 묵었던 기침 많이 하고 편찮은 이탈리아 아저씨의 바로 옆 침대였다. 방에 들어서니 아저씨의 기침 소리가 더 심했다. 침대에 짐을 풀다가 ‘저 정도로 기침이 심한데 자칫 옮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방에는 그 아저씨 말고는 순례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 방을 배정받은 순례자들이 모두 옆방으로 옮긴 것이다. 필자는 아저씨에게 “죄송하지만 제가 침대를 좀 옮겨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사무실에 가 옆방으로 잠자리를 옮겨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무실 직원께서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옆방으로 다시 침대를 배정했다.
다시 배정받은 방에 가니 침대가 이미 꽉 차 겨우 하나의 침대만 있었다. 그 방에서 안면이 있는 순례자들을 여러 명 만났다.
오전 8시 아직 어둑한 가운데 배낭을 어제 묵었던 레온 공립 알베르게에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 입구.
아침 8시 좀 안 돼 사무실의 남자 직원에게 “오늘 저녁에 이 알베르게에서 하루 더 묵을 건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렇게 하시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따라오세요.”라며 작은 창고 같은 곳의 문을 열더니 “여기에 배낭을 넣으세요.”라고 하셨다. 그곳에 배낭을 넣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기 전에 홍차와 만시아의 슈퍼마켓에서 산 빵 등을 간단하게 먹었다. 알베르게 옆 교회에 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마침 알베르게의 남자 직원이 그곳에서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얼떨결에 함께 미사를 드렸다.
레온 대성당. 사진= 조해훈
교회 밖으로 나와 레온 대성당으로 갔다. 밤에 비가 많이 내려 거리가 젖어 있었다. 지금도 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3, 4층으로 이루어진 주택가였다. 관광지답게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대성당에 가니 오전 8시 27분이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데다 비까지 내려 좀 어둑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필자가 레온에 온 것은 처음이지만 이 도시를 알고는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세 번째로 만나는 대도시이다. 레온은 스페인 서북부 카스티야 및 레온 자치지역내 레온 지방의 수도다. 기원전 로마 군단의 숙영지로 출발한 레온은 기독교 수복 전쟁 이후 레온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크게 번성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프랑스길 도상에 있는 레온은 역사 유적이 풍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다. 프랑스식 고전 고딕건축을 대표하는 레온 성당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는 산이시도르 교회,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보티네스 저택 등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다.(네이버지식백과 참조)
레온 대성당은 산타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eón)이라고도 한다. 현재 대성당이 위치한 장소는 로마제국이 에스파냐를 지배하던 2세기경에 로마인들의 대규모 목욕탕이 있던 자리이다. 에스파냐 건축가 엔리케(Enrique)가 1205년에 처음 건축을 시작한 이래 거의 400년 가까이 지난 16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완성한 대규모 성당이다.
이 성당은 오늘날까지 고딕 양식의 건축물 가운데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1844년에 에스파냐 정부가 중요 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
대성당 앞쪽에 ‘Leon’이란 글자를 철로 만들어 세워놓은 곳에서 다른 순례자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빗물로 바닥이 축축했다. 대성당 걸물을 구경하느라 왔다 갔다 했다.
가우디가 건축한 건물. 사진 = 조해훈
오전 10시 12분, 근대 에스파냐 건축계의 거장 가우디가 건축했다는 보티네스 저택에 도착했다. 대성당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기업가 시몬 페르난데스(Simón Fernández)의 의뢰로, 가우디가 1892년 건축을 시작해 이듬해 완성했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카탈루냐(Cataluña) 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독창적인 건축물을 남긴 가우디가 카탈루냐 지방에서 벗어나 조성한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현재는 레온시를 근거지로 하는 카하에스파냐 은행(Banco de Caja España) 본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전 가우디가 지은 바르셀로나의 성가정 성당(Church of the Holy Family)에 필자가 처음 갔을 때 레온에도 가우디가 지은 건축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건축물이 지금 둘러보고 있는 이 건물이다.
가우디가 지은 건물 앞에 있는 중세 스페인의 이라곤 왕국의 왕인 알폰소 5세의 흉상. 사진= 조해훈
가우디의 건축물을 이리저리 구경한 후 시내 방향으로 걸었다. 왼편에 왕관을 쓴 알폰소 5세의 흉상이 있다. 알폰세 5세는 중세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의 왕(재위 1442~1458)이다. 거기서 조금 걸어 로터리가 있는 분수대 쪽으로 걸어갔다. 환경미화원 한 분이 손수레를 밀고 필자의 앞을 걸어갔다. 곧이어 분수가 나오는 로터리에 다다랐다.
가우디가 지은 건물 인근에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손수레를 밀고 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로터리에 분수로 둘러싸인 동상이 있다. 구즈만 가문의 장군 동상이다. 그는 1256년께 레온에서 태어났다. 산초 4세는 레온에서 3년 동안 통치한 어린 돈 후안의 주장에 맞서 타리파 광장의 방어를 그에게 위임했다. 그는 아주 충직한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동상은 오른손에 단검을 들고 왼손에 방패를 들고 있다. 산초 4세는 중세 스페인에 있던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왕(재위 1284~1295)으로,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왕인 알폰소 10세의 아들이다.
분수대가 있는 로터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사진= 다른 순례자
다시 가우디 건축물 쪽으로 되돌아왔다. 그 건축물 앞에 가우디가 벤치에 앉아 도면(?)을 보고 있는 동상이 있다. 가우디 건축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1층에 이 건축물에 대한 자료 등이 전시돼 있었다. 다른 층에는 들어갈 수 없다. 건물을 둘러본 후 나와 대성당으로 걸어갔다. 인근에 아버지와 아들의 동상이 있다. 아버지는 오른쪽으로, 아들은 왼쪽을 보고 있다.
가우디가 지은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있는 가우디 동상. 사진= 조해훈
가우디 건축물 1층 내부. 사진= 조해훈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아들 둘에게 보낼 엽서를 샀다. 그런 다음 오전 11시 10분쯤에 그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홍차를 주문했다. 대성당과 가장 가까운 카페여서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들로 북적였다.
레온 대성당과 알베르게 사이에 있는 바(Bar) 거리에 관광객이 많다. 사진 = 조해훈
레온 대성당 인근 카페에서 필자가 주문한 홍차.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43분쯤 카페를 나왔다.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오후 1시 15분,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가방을 정리해 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관광객이 다녔다. 바(Bar)와 카페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차림새로 보아 대부분이 관광객인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더 늘었다. 큰 첨탑이 건물 양쪽 위에 있는 중세 건축물 앞에는 광장이 있다. 이 인근에 작업복을 입은 한 아저씨가 수도 계량기통(?)을 손보고 계셨다. 오후 1시 41분, 다시 대성당 앞이다.
한 설비공이 수도 계량기통을 손보고 있다. 사진= 조해훈
레온 시가지 구경도 할 겸 중국식 뷔페인 ‘웍(WOK)’으로 걸어갈 계획이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대성당에서 천천히 걸었다.
오후 1시 51분, 한 악사가 거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그곳에서 1분가량 걸어가니 시내를 다니는 모형 관광열차가 사람들을 가득 태운 채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관광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 사진= 조해훈
내를 관광하는 모형 관광열차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56분, 오전에 왔던 로터리 분수대로 가 길을 따라 직진했다. 상가가 많은 거리였지만 대성당 인근만큼 북적이진 않았다. 분수대에서 오후 1시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 길로 접어드니 사람이 바닥에 자빠져 있는 것 모양의 동상이 있다.
분수대 로터리 인근에 있는 동상. 사진= 조해훈
중국식 뷔페식당을 찾아 걸었다. 20분가량 걸렸을까? 큰 강 위에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지나는 사람에게 ‘웍(WOK)’을 물어보니 다리를 건너면 있다고 했다. 다리를 건너 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자꾸 엉뚱한 길을 안내했다. 그렇게 헤매다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도로 다리를 건너가라고 했다. 한 30분가량 헤맸다. 다리를 건너 왼쪽에 보니 ‘LEON PLAZA(레온 플라자)’라고 적힌 큰 입간판이 있었다. 그 상가로 들어가니 2층에 웍(WOK)이 있었다. 뷔페에 들어서니 오후 4시가 조금 지났다. 점심시간의 음식이 끝날 쯤 시간대여서 음식이 많이 빠졌다. 그래도 해산물 종류가 좀 있었다. 해산물을 골라 종업원에게 가져다주면 큰 철판에 차례대로 구워 주었다. 대충 음식을 먹은 후 오후 5시 못 되어 나왔다.
중국뷔페 식당 '웍(WOK)'에서 필자가 먹으려고 접시에 담아온 음식. 사진= 조해훈
구글 지도를 보지 않고 대충 짐작하며 걸었다. 왔던 길이 아니었다. 오후 5시 6분, 누런색의 큰 교회가 있었다. 5시 11분, 길가에 어떤 인물의 흉상이 있다. 오후 5시 25분, 독특한 인물상도 있다. 둥근 철 기둥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남자의 동상이다.
중국뷔페에서 알베르게로 돌아오면서 본 독특한 인물상. 사진= 조해훈
여기서부터 구글 지도를 보며 걸었다. 대충 길을 짐작은 하지만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 6시가 되자 가로등이 켜졌다. 조금씩 어둑해졌다. 오후 6시 24분, 저 앞에 알베르게가 보였다. 알베르게 공터 앞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빵을 주문해 먹었다. 그런 후 오후 7시쯤 알베르게로 와 씻고 부엌에 가 홍차를 한잔 마시면서 책을 읽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레온에 하루 쉬면서 걸은 걸음이 3만 보가량 되었다.
중국뷔페에서 돌아오면서 알베르게 앞 공터 반대편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후 7시쯤 숙소로 들어왔다. 사진= 조해훈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