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이다. 아침 8시에 아르수아(Arzua) 공립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아직 바깥은 어둑하였다. 카페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니 문을 연 카페가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밀크커피와 빵 한 개를 주문해 먹었다. 순례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그리 멀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로는 먼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리가 활기찼다.
'아르수아'의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먹은 후 밖으로 나오니 한 아빠가 아이 둘을 등교시키고 있다. 사진= 조해훈
카페에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서너 명 들어와 팔고 있는 과자와 사탕 등을 사서 간다. 오전 8시 45분 카페에서 밖으로 나왔다. 지난밤에 비가 내려 길바닥이 젖어 있었다. 한 아빠가 아들 둘을 등교 시켜주고 있었다. 필자가 먼저 인사를 하니 아빠와 아들 둘이 귀엽게 인사를 했다. 2, 3분 걸어가니 벤치가 몇 개 놓인 쌈지공원이 있다. 여기서 3, 4분 더 가니 마지막 집이 있고 거길 지나니 초지에서 소 두 마리가 풀을 뜯는다.
한 아빠와 아이 둘과 인사하고 몇 발자국 걸어가니 작은 쌈지공원이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흙길의 순례길이 시작된다. 비가 많이 내리니 추워 별로 도움이 안 되지만 우의를 머리에 덮어썼다. 오전 9시 29분, 마당에 소달구지가 장식용으로 놓인 작은 카페가 있다. 문을 닫았다. 카페 마당 왼쪽에 있는 기둥 위에 중세 때 모습의 크지 않은 순례자 형상이 올려져 있다.
오전 9시 29분, 한 카페 마당에 장식으로 소달구지를 세워놓았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34분, 도로 아래로 난 작은 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지나니 비가 거의 그치고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10분가량 더 걸어가니 날씨가 갰다. 갈아놓은 밭과 저 멀리 초지 위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오전 9시 48분, 저 앞에 순례자 3명이 걸어간다. 차림으로 보아 단체 순례인 듯하다. 4분 뒤, 저 앞에도 다른 순례자 두 명이 걸어가고 있다. 걸어갈수록 다른 순례자들을 만났다. 이들 순례자는 함께 단체로 온 듯하다. 어쨌든 순례자들을 자주 만나니 심심하지 않고 반갑다. 혼자 오랫동안 걷다 보니 사람이 그리웠던 것일까?
경작지 위로 햇살이 비치고 하늘은 점점 잉크색으로 변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48분, 저 앞에 단체로 온 순례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22분, 앞에 어떤 여성이 승용차에 액세서리 등을 싣고 와 간이 탁자를 세워놓고 팔고 있다. 여성 순례자 두 명이 목걸이와 팔찌 등을 구경한다. 오전 10시 26분, 어느 집 입구에 ‘SANTIAGO 33km’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무에 붙어 있다. 승용차로 간다면 30분 내외면 도착하는 거리다. 필자는 산티아고까지 두 번 나누어 걷는다. 오늘은 19.2km인 ‘오 페드로우소(O Pedrouzo)’까지 걸을 예정이다. 걸음이 아주 빠른 사람이라면 하루 만에 걷는다.
오전 10시 22분, 한 여성이 승용차에 액세서리를 싣고와 간이 테이블에 펴놓고 순례자들에게 팔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35분, 소들이 앞에서 걸어온다. 필자는 놀라 길가에 멈춰 섰다. 소들은 모두 순하여 천천히 필자를 지나갔다. 아침에 비가 내려서인지 길가 풀과 초지의 풀들이 더 초록색을 띤다. 오전 10시 38분, 저 앞 멀리에 또 다른 순례자 두 명이 걸어간다. 하늘은 점점 잉크색으로 변하고 있다.
오전 10시 35분, 필자가 걸어가는 순례길 앞에서 소들이 걸어오고 있다. 사진 = 조해훈
어느 집 입구에 'SANTIAGO 33km'라고 적힌 표지판이 붙어 있다. 사진= 조해훈
오늘 길은 아주 아름답다. 좌우 경작지 옆으로 난 길을 걷지만 마치 숲속 길을 걷는 것 같이 나무가 많은가 하면, 경작지와 숲길이 언덕처럼 형성된 길을 걷기도 한다. 하늘은 점점 진한 잉크색으로 변했다. 그만큼 날씨가 맑고 쾌청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길바닥에 단풍잎이 잔뜩 깔린 숲길을 걷기도 하였다. 특히 숲길을 걷는 동안은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였다. 다 같은 자연이지만 그때그때 주변 환경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어떠한 처지와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변이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의 마음이 희로애락을 느낀다. 흔히 유교에서는 ‘칠정(七情)’이라고 해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의 일곱 가지 감정을 논하기도 하였다. 물론 사람마다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객관적이고 평균적인 감정을 벗어날 경우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타인들보다 예민한 편이어서 표현을 잘 하지는 않으나 상황에 더 잘 반응한다. 힘들기는 하여도 오래된 길과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길을 걷는 내내 세상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전 11시 20분, 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지나치는 길가 마을이었지만 집들이 멋스러웠다. 바(Bar)도 있다. 바는 문을 열지 않았다. 거기를 지나 우회전을 해 마을의 끄트머리를 지날 무렵 한 집에 벽에 멋진 장식물들이 있다. 집의 바깥벽에 각종 화분과 신발들을 마치 상품 진열하듯 장식해 놓은 것이다. 신발들을 올려놓은 건 실제로 산티아고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신발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순례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장식해 놓은 집주인의 배려에 감사해했다. 또한 납작한 돌을 쌓아 만든 이 집의 벽체도 고풍스러워 한참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혹여 주인이 집에서 나온다면 감사의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집에서는 아무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전 11시 32분, 어느 집 건물벽에 화분과 신발들이 장식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조해훈
그렇게 그 마을을 벗어날 무렵 한 집의 마당에 초록색의 트랙터가 한 대 세워져 있다. 트랙터의 형태가 마치 우리나라의 이전 코란도 지프차처럼 생겼다. 낮 12시 3분, 마을을 벗어나 숲속 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산티아고까지 29. 381km 남았다고 적힌 표석이 있다. 표석이든 표지판이든, 주민이 글씨를 써 붙여놓은 나무판이든 만나면 반갑다. 길의 상황을 알려주는 이정표(里程標)인 것이다. 대략 남은 거리나 방향, 또는 어디쯤이라는 걸 길을 가는 나그네가 상황판단과 분별을 하도록 해준다.
오전 11시 57분, 어느 집 마당에 초록색 트랙터가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순례길의 목적지인 콤포스텔라까지의 마지막 길을 기분 좋게 해주려는 것인가? 다시 길은 단풍 든 길바닥과 숲길이 이어진다. 파릇한 나뭇잎이 남은 숲길에 햇빛이 비쳐 모든 사물이 반짝인다. 나무들 사이로 햇살을 받는 길은 더욱 아름답다. 초록의 이끼 낀 나무들 역시 햇살을 받아 색이 더 돋보인다. ‘이제 곧 겨울인데 봄이면 더 아름다울 테지.’라는 생각이 들어 ‘언젠가 봄에 한 번 더 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낮 12시 16분,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쳐 길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28분, 또 집이 몇 채 나타났다. 집이 끝나고 5분가량 걸으니 단체 순례자 10여 명이 앞에 간다. 아마 어디 머물다 걷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인근에 승합차가 주차해 이들을 내려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순례자들을 만나니 배가 고프고 지친 마음이 밝아지면서 가볍다.
단체 순례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15분가량 가니 바가 있다. 메뉴에 문어 요리가 있어 주문하였다. 필자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문어 요리를 두 번 먹어봤는데 맛이 있었다. 특히 양념이 독특하게 맛이 있었다. 순례길 너머가 남프랑스와 경계를 두고 바다를 끼고 있는 데다 콤포스텔라에서 대서양이 멀지 않아 바다 요리가 있는 것이다. 1시간 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커피와 문어 요리 등을 먹으며 앉아 있다 일어섰다. 오늘은 걷는 거리가 20km가 채 되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다.
낮 12시 50분, 한 바에 들어가 점심으로 밀크커피와 맛있는 문오 요리를 먹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48분, 바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큰 야자수 같은 나무가 정원에 있고, 그 아래에 딱정벌레 자동차 비틀스처럼 생긴 차가 주차돼 있다. 레스토랑 연락처가 차 표면에 적혀 있다. 이 자동차와 나무 위로는 잉크색 하늘과 구름이 멋있게 배경 화면이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숲속 길이다.
오후 2시 48분, 어느 집 정원에 비틀스 딱정벌레 승용차와 나무, 그리고 하늘이 조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6분, 이제 순례길은 도로 옆으로 나 있다. 하늘은 회색빛을 조금 띤다. 오후 4시 15분, 바가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이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맥주 등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바에 와이파이가 돼 밀크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노트북을 꺼내 글을 좀 썼다. 바에 한 시간가량 있었다.
길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15분께 바에서 나왔다. 이제 순례길은 오늘 걸어왔던 길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왼편에는 동백나무일까, 길게 늘어선 군락지가 있고 오른편은 누렇게 물이 든 이파리가 싱싱하게 달린 나무들이 즐비해 있다. 세상이란 참으로 신비롭고 묘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길의 모양새도 같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사람의 일상 역시 그렇다. 이를테면 죽을 때까지 같은 상황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오후 6시 18분, 어둑한 가운데 도로에 가로등이 켜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6시 24분, 오늘의 종착 마을을 알리는 글자가 크게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28분, 숲길은 도로 옆으로 이어졌다. 직감적으로 오늘의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 5시 56분, 집이 몇 채 있다. 하늘이 집들 위로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오후 6시 18분, 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어둠 속에 빛나고 있다. 비가 내렸다. 여기서 6분 더 걸어가니 ‘O PINO’라는 마을임을 알리는 입간판이 흰 글자로 크게 세워져 있다. 점점 빗줄기가 세져 또 우의를 꺼내 덮어썼다. 거기서 5분가량 걸어가니 도로 아래쪽에 오늘의 목적지인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들어가 접수를 한 후 배낭을 풀어놓은 후 숙소 바깥으로 나와 도로 건너편에 있는 바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마침 저녁 메뉴가 있어 수프와 스테이크를 먹은 후 케이크를 후식으로 먹으면서 밤 9시까지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 알베르게 돌아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밤 10시에 잠을 청했다.
오후 6시 반쯤, 도로 아래에 자리한 오늘의 목적지인 '아르수아'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아르수아(Arzua)에서 오 페드로우소(O Pedrouzo)까지 19.2km를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757.7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